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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7.24 12:19 수정일 : 2023.07.24 12:22
1-12. 수박 콤플렉스
/양선규
내가 언필칭 콤플렉스 덩어리라는 것을 안 것은 20대 중반으로 막 접어들 때였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공부를 같이 할 땐데(지도교수님이 학구열이 높으셔서 시작하는 공부가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문학연구에 유용한 심리학책을 하나 얻었으니 자네가 한 번 번역해 보게”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영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라 걱정이 태산 같았다. 더군다나 심리학책이라니, 아마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인 듯싶었는데 그쪽 공부가 전무한 상태에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칼 융의 제자인 욜란 야코비 여사가 지은 것을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서 번역한 책이었다. 《칼 융의 심리학에 나타난 콤플렉스, 아키타이프, 심볼》이라는 책이었다.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앞부분 몇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그렇게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님이 안색 하나 안 고치시고 이렇게 말했다. “6.25 동란 통에 슈산보이 영어밖에 모르는 우리 세대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상당한 결례라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만 한 번 추려서 적어보게. 자네는 명문고 출신이고 내 알기로 영어도 꽤 잘 한다고 알고 있네만.” 아마 대학원 들어올 때 영어 성적이 좀 잘 나왔던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았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떠안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내가 겪은 여러 고초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나중에 그 원고를 들고 사관학교 교관실까지 들고 다녔는데 친하게 지내던 영어과 교관 동기가 융의 서문을 번역해 놓은 첫 장을 보더니 “야 이 돌짱구야, free association(자유연상)도 모르는 게 무슨 심리학책을 번역한다고 나대냐? 어이구, 이 대책 없는 작자야. 내가 다 부끄럽다”라고 면박을 주어서 하릴없이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융이 자신과 프로이트가 자유연상 기법을 발견하고 나서 무의식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지게 되었다고 말한 것을 “프로이트와 함께 자유로운 집회를 가지면서 운운”으로 번역했던 것이다. 그 뒤로 책 속의 단어 하나하나를 다 사전에서 검색했다. 혹시라도 심리학 용어라면 그 용례를 찾아서 책 속의 맥락과 견주어보았다. 그러나 한계는 여전했다. 그 책이 ‘심리학책 중에는 가장 문학연구에 핵심적인 가르침을 주는 책’이라는 세간의 평을 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걸 안 것은 그로부터 20여년 뒤의 일이다. 내 나이가 그 책의 저자와 비슷해진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다. 《제 한 몸으로 감싸는 상징》(소소담담, 2021)이라는 책 제목은 그때의 발견을 기념하여 지은 것이다.
그 책을 엉터리로 번역하면서 겪은 고통도 만만치가 않았다. 책만 열면 두통이 몰려왔다. 그 책 속에서 열거되고 있는 여러 강박증, 신경증들이 모두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누구나 자기의 약점이나 흠집을 지적당하면 강한 심리적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당연히 큰 반발심이 들었다. 하나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 결과는 번역 지체로 나타났다. 한 페이지 번역하는데 일주일씩 걸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1년여를 책과 씨름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그래,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야!”라고 자인하고 말았다.
그렇게 만난(초인지 된) 내 콤플렉스 중에 ‘수박 트라우마’라는 게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시장통에서 노상 수박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잘 팔리면 좋았지만(생물장사라 이문이 컸다) 안 팔리는 날에는 남은 수박들을 식구들이 다 먹어치워야 했다. 창고가 있어서 보관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하루하루 그렇게 즉시즉시 처리해야 했다. 입에서는 신물이 나고 배는 터질 것 같았는데 돌아서면 또 금방 배가 꺼졌다. 먹는 고통과 배고픈 고통, 이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토할 정도로 억지로 먹었는데 이내 또 배가 고프니 수박이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지금도 수박은 거의 먹지 않는다. 잘게 썰어서 쟁반에 받쳐 갖다 주기 전에는 절대로 입에 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나중에는 수박처럼 생긴 것들은 다 싫어하게 되었다. 겉은 퍼런데 속은 시뻘건 것들이 미웠고, 속은 푸석푸석하면서 겉은 돌처럼 단단한(자기방어로 둘러싸인) 인성(人性)들을 볼 때면 증오심까지 일었다. 처음에는 그게 내 수박 콤플렉스인 것을 몰랐다. 오히려 저의 ‘강직한 성품’,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것으로 오인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수박이 나를 감쪽같이 속였다.
수박의 농락질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분수에 넘치는 지적질을 하고 다니게 하고, 조금이라도 못난 행색을 보이는 ‘관계자’들(식구나 직장 동료)이 눈에 띄면 엄한 질책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학교일을 도와주러 온 한 후배 교수에게 “공동체의 일을 맡아 하려면 먼저 자기를 죽여야 한다”라고 면박을 주었다가(그가 자신의 학과에 유리한 약간의 양념을 타려고 했다가 직원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고 책임자인 내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나중에 큰 앙갚음을 당했다. 그런 일이 누적되니 나중에는 거의 ‘공공의 왕따’ 신세가 되기도 했다. 자기 자신이 대형 수박인 주제에 고작 참외밖에 안 되는 이들을 혹독하게 몰아세운 죄과가 컸던 것이다. 그게 다 나의 수박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제 잇속만 챙기는 것들, 자기애가 너무 단단한 것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들만 보면 꼭 찌르거나 짜개고 싶은 욕동이 솟구치는 것이 바로 나의 신경증이었던 것이다. 그게 모두 내 안의 수박콤플렉스가 시켜서 하는 짓거리였다.
어릴 적 수박 트라우마가 심술이 되어 타자에 대한 공연한 억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투사라는 심리현상이라는 것, 십중팔구는 인간관계의 파탄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며 알게 되었다. 그러자 책 속의 애매한 것들이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 ‘버려지는 자의 슬픔’이라는 세상 쓴맛을 보니 절로 각성이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정신 건강은 늘 위태위태했다. 수박 콤플렉스(투사와 공격성)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감 결여와 타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강박성 불안증세도 만만치 않았다. 대인기피증, 광장공포증 같은 증세도 우심했다. 지금도 사람 많은 곳에는 잘 안 간다. 그런 것들에게 휘둘리는 게 너무 싫어서 검도도 배우고, 술 담배도 끊고, 글도 좀 쓰고(한 신문의 칼럼은 9년째 쓰고 있다), 신앙생활도 이어나갔다(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 번 들어온 수박은 내가 죽기 전에는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다. 수박과 함께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꾸준한 자기 성찰을 통해서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밖에 없다. 자신감의 회복, 신체 에너지의 활성화,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탈자아 노력,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 등을 통하여 불안과 미움과 공격성의 근원을 희석시켜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