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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7.17 02:55
학교가 살아나려면
/윤일현
‘킬러 문항 배제 발표’ 이후 사람들이 자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많은 교사가 수능 출제 방식도 중요하지만, 교육 현장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여 긴급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최근 어느 교사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체육 시간에 뜀틀 수업을 했다. 한 학생이 스펀지로 만든 뜀틀을 넘다가 착지 과정에서 손을 삐끗했는지 팔이 부러졌다. 체육 교사는 신속히 보건교사와 학부모에게 알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게 했다. 학교안전공제회에 가입 되어있으니 치료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사실도 학부모에게 알렸다. 이틀 후 학부모는 학생의 외할머니까지 동반해 열 가지도 넘는 질문에 답변을 요구했다. 교육과정과 가르치는 시점에 맞는 수업내용이었는지, 뜀틀 넘는 방법 설명과 함께 교사가 적절한 시범을 보였는지, 준비운동은 충분히 했는지, 안전사고에 대한 내용을 분명하게 고지했는지, 넘는 순간 옆에서 지켜보며 잡아주었는지 등등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 모든 사항을 빠짐없이 지키기도 어렵고, 안전하게 지도했다 할지라도 범죄자 취조 같은 추궁에 어떤 교사가 마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을 겪고 나서 그 교사는 조금이라도 위험한 종목은 교육과정에 있어도 동영상 등을 통한 간접 경험 방식의 수업을 한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두 학생이 싸우고 있었다. 교사는 싸움을 말리고 아이들을 좀 꾸짖으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생활지도를 했다. 그다음 날 한 학생의 엄마가 교무실로 찾아와 격렬하게 항의했다. 꾸중한 교사는 1반 담임인데 지도받은 학생 중 한 명은 2반이었다. 자기 반 학생이 아닌데 왜 꾸중했느냐고 거세게 따졌다. 그 학생이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싸움도 못 본척하고 자기 반 학생들만 생활지도를 한다고 했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는 ‘학부모 항의 없는 학교, 민원 없는 학교’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잘 가르치는 일보다 항의성 전화나 방문이 없도록 하는 데 힘을 소진한다는 것이다. 교직원들은 쉴 새 없는 민원으로 다른 일을 할 시간도 의욕도 없다고 말한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수업 방해만 하지 않으면 그냥 두는 교사가 많다. 꾸중하다 보면 아동학대로 오해받아 학부모로부터 얼토당토않은 항의를 받는 일이 잦고, 심한 경우 경찰에 신고당하거나 소송에 연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교육활동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좀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학교와 교실에서 행하는 모든 교육 행위가 감시의 대상이 된다면, 교육 현장은 활기 없는 지식 전달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제때 상담을 못 해준다는 것이다. 어느 교사는 금요일 오후 한 주를 마칠 때면 늘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내 근무의 유일한 목표는 연금 수령에 필요한 연한을 채우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삶의 질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정한 거리 유지와 무관심이 나를 지켜준다. 아, 이번 주도 별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서 정말 다행이다.”
어린 시절 문밖을 나설 때 대부분 부모님은 “오늘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실천 덕목이다. 내 아이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상하거나,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좀 더 큰 개념의 자녀 사랑으로 바꾸어야 한다. ‘교육은 교사의 자질과 사기를 능가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과 같은 풍토에서 교직에 대한 자부심과 사기는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신명이 나고 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교실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학생과 교사가 따로 놀게 될수록 사교육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교육 당국은 현장의 고충과 어려움에 대해 실태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교육감은 교육자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깝다. 교권보다는 학부모 표를 더 의식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교육감은 부당한 교권 침해에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세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장은 학부모의 견해를 경청하면서도 교사 사기를 북돋우는 현장 지휘관이 돼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자주 머리를 맞대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