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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
작성일 : 2020.04.27 12:27 수정일 : 2020.07.22 01:40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
- 서양화가 예 유 근 -
세한도(歲寒圖).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 1844작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정신적 공황장애 발작 상태이다. 신체의 경보체계가 불안하여 오작동을 일으켜 위협을 느낄 때 사람과 거리를 두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는 혼자 놀기의 고수답게 작업실에서 책을 보거나, 또 영화나 연극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이런 시간을 자주 가져보는 건 불안감 해소에 좋고 내 그림 그리기에도 아주 도움이 된다.
장르마다 특유의 감상법이 있겠지만, 특히 나는 도록을 보거나 전시장에 가서 남의 작품을 볼때마다 병처럼 혹시 내가 놓쳐서 읽지 못하는 '깊이와 폭'이 있을까 싶어 자세히 보는 습관이 배여 있다. 서양화가로서 살아오면서 그림 만큼은 잘 해석되어 지지 않는 작품을 별로 만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유독 한 작품 <세한도>만 보면 '도대체 원근법도 무시하고, 공간배치도 맞지 않고, 횡한 뒷 여백에 별로 솜씨도 없이 잘 그린 것 같지도 않은 저 그림이 어디가 좋아서 모두 열광이지?' 라는 솔직한 생각을 오랫동안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가로 69.2㎝, 세로 23㎝의 크기이다. 세한도(歲寒圖)를 대충 보면 참 황량한 작품이다. 휑한 화폭에 적당히 그린 듯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마주보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고 물기 없는 먹으로 거칠고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서양화의 관점에서 보면, 원근법도 맞지 않으며, 구도도 별로이며, 기법도, 여백도, 솜씨도, 잘 그렸다고 볼 수는 없는 그림이다. 게다가 추사가 한자로 쓴 발문의 내용도 왜 이리 해독이 어려운지 읽어 볼때마다 어렵다.
그래! 아는 방법은 단 한가지다.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발문을 읽고 또 읽고. 찬문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유홍준의 <완당평전>을 사서 읽었다. 첫 시작 글에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했다.
맞아.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완당평전2>에서는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로 맺었다. 그렇지! 작품 뜻의 깊이와 폭은 가늠하기 어렵지. 도종환의 시 <세한도>도 읽었다.
소한이 가까워지자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져 / 그대 말대로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은 더욱 빛난다 / 중략- 견디며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겹게 아름답다-중략 / 그대 이름을 불러 보리라 / 이 싸늘한 세월 천지를 덮은 눈 속에서 / 녹다가 얼어붙어 빙판이 되어버린 숲길에서
역시 그림과 시는 어울릴 수는 있어도 다른 느낌이다. 알면 알수록 세상에는 참으로 세한도에 얽힌 시와 논문, 저서, 비밀의 연구서적도 너무 많다.
‘시린 한 겨울 그린 그림’세한도의 작품 내력은 이러하다.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위리안치형을 받고 있을 때 그렸다. 그림에 쓴 글에서는 유배 중임에도 사제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천만리 타국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주며 성의를 다하는 제자 이상적의 인품에 감동하여 松柏과 같은 사람이라며, 논어의 한 구절(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솔과 잣이 나중에 시름을 안다)과 이를 표현한 세한도를 선물했다. 이상적은 이듬 해 정월 중국인 친구 오찬이 베푼 재회 축하연에서 청나라 명사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16명으로부터 제문과 발문을 받았다. 이것을 현지에서 한 축의 두루마리로 표구하여 가져왔다.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두루마리는 제자 김병선에게 넘어갔고 그의 아들 김준학이 물려받아 감상기를 적어 놓았다. 이후 민영휘 집안이 소유했다가 일본인 추사 연구가 후지쓰카 지카시에게 팔아넘긴 것을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1944년 거금을 싸들고 현해탄을 건너가 3개월 동안 병석에 누운 후지쓰카를 아침저녁으로 문안한 끝에 받아들 수 있었다.
손재형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위창 오세창과 초대부통령 이시영, 국학자 위당 정인보의 감상문을 받아 이어 붙였다. 하지만 소전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하는 바람에 저당 잡힌 <세한도>를 개성갑부 손세기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두루마리에 한국과 중국인사 20명이 직접 쓴 찬문이 줄줄이 붙어 있어 그림 자체 길이는 108.3cm에 불과 한대도 제대로 전시하기 위해서는 10m가 훨씬 넘는 공간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소전은 두루마리 90cm 정도의 공백을 남겼다.
다시 보자.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화제를 적었다. ‘우선시상’이란 글은 ‘우선(이상적)은 보시게’라는 의미다. ‘완당’이라는 호를 적고 ‘장무상망’이란 붉은 도장을 찍어 놓았다. 장무상망! 오랜 세월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는 있을까? 갑자기 인생 잘못 살아온 듯한 감정이 확 솟구 친다. 기교를 거부하여 극도로 절제되면서 생략된 거친 붓질로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를 나타 내었다. 횡하니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지조 높은 내면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먹의 사용은 건필에 담묵을, 적묵에서 초묵으로 그렸다.
이미 그는 실학자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하였으며, 뛰어난 예술가로 추사체를 만들었고 문인화의 대가였다. 문인화적인 화풍으로 형상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작가의 마음을 나타내는데 초점을 두었다. 사물의 형상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의 인품과 학식, 사상과 감정, 사의(寫意)를 나타낼 수 있었다. 평생을 원대한 문인화와 서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다.
유홍준은 ‘그림에 서려있는 격조와 문기(文氣)가 생명이다’며 ‘서화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보다는 제작과정에 서린 추사의 처연한 심경이 생생히 살아 있으며 추사의 예술세계가 소략한 그림과 정제된 글씨속에 흥건히 배어있다는 것이 이 그림의 본질이다’고 했다.(유홍준 지음 추사 김정희 188p) 특히 세한도는 그림의 미술적 기교보다는 발문(발문과 해석은 따로 보기를 권한다.)을 통하여 그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나 과정, 제목, 화제, 부시 등 감정을 잘 나타냈다. 읽어보면 볼수록 값지게 느껴지고, 그림도 보면 볼수록 고귀하고 좋아 진다.
근래 현대화되어 갈수록 시서화(時書畵)에 능한 화가를 찾아보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그림 잘 그리는 문인도 찾아보기가 어려워져 간다. 시도 어렵고, 글은 서체뿐만 아니라 문학적 소양의 문자향이 필요하다. 화는 그림인데 이문열의 작품 <금시조>에 나오는 주인공 화가인 고죽의 고민처럼 그림 속에 어떻게 문자향(文子香)과 서권기(書卷氣)를 넣는다 말인가?
서양화가인 나는 학창시절부터 서양화위주로 배워온 미술교육을 버리는데 나름 오래 걸렸다. 특히 <세한도>는 서양화식의 해석 방법으로는 감상이 힘들지만, 색다른 현대미술제작 기법으로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긴 하다.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서양화로 그려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치졸한 풍경화가 되는 것 같다. 서체는 더욱 근처도 못간다. 문어대가리처럼 머리가 나빠서 일까? 그래도 문어는 도사나 큰 스님처럼 둥그렇게 머리도 벗겨 져서 멋있기도 하고 먹물깨나 먹어서 이름이라도 문어이지만... 더구나 나는 주로 물감만 사용해봤지 사실 그림을 먹물로 그려 본적은 별로 없다.
아. 아! 그래. 치열한 삶의 모습으로 군더더기처럼 붙어있는 사족과 기교를 버림으로써 문자향이 우러나오는 것이지 생각만으로는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세한도>를 볼 때마다 드는 내 삶과 생각의 꼭지는 내 그림의 부족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왜 좀더 진작 몰랐을까하는 회한이 든다. 어쩌면 시서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낼 수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림을 그릴때 마다 힘들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인 '내 인생의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는 말이 절실하다.
나의 작품에는 가끔 황량한 들판에 수선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돌 많은 제주도 땅에 수선화같이 발 디디고 살았던 추사가 살았던 모습을 상상해서 이다. 당시 수선화는 북경에서 들여온 귀하고 예쁜 꽃이지만, 제주도에서는 말이 뿌리를 좋아 해서 즐겨먹는 먹이 정도로 취급 받았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 같은 우리 인생. 그러나 내 삶의 터전위에 보물같이 소중하게 각인되어 있는 작품이다.

건축가 승호상이 설계한 제주추사관. 세한도의 건물을 본 따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