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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4.16 06:59 수정일 : 2020.05.17 08:14
문화 과잉의 시대, 침묵의 문학
강춘진(국제신문 논설위원)
이른바 ‘새 천년 시대’가 도래한 지 벌써 20년째다.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속도는 ‘지난 천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빠르다. 젊은 세대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가파른 세상 흐름을 20세기 후반 세대는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다. 현상 유지만 해도 좋다는 그들에게도 한때를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건만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이 야속하다. 그냥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다 부질없는 노릇이다.
21세기 들어 문화 분야는 풍요의 시대를 맞이한 느낌이다.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 전통적으로 통용되던 문화 장르라는 개념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화가 어제 생겼다 싶으면, 오늘 또 새로운 게 나타난다. 오랜 기간 상당수를 끌어당기던 ‘지배 문화’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면 지나친 진단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따져보면 과거처럼 적지 않은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때론 열병을 앓게까지 했던 ‘킬러 장르’를 기대하는 시대가 아니다. 풍요로운 시대, 짦은 생명의 문화 콘텐츠가 난무한다. 아쉽다. 좀 더디게 갔으면 하는데, 시대 분위기는 딴 판이다.
디지털 시대가 안긴 특색을 적극 활용하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요소를 잘 짚어내는 문화 콘텐츠라도 생명력은 그다지 길지 않다. 이 시대 사람들은 보고 즐기고 느끼고 열광할 콘텐츠가 지천에 깔렸는데도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 극장가에는 스케일 큰 영화가 시즌마다 내용과 형식의 옷을 달리 입고 등장한다. 안방극장에서는 보는 재미의 폭이 무척 넓은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골라보는 세상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이런 새 세상에 전통의 문화 장르 중 문학이 왜 변방으로 밀려났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끄트머리에 자리한 것 같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영화와 드라마는 죄다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본 줄기를 만드는데도 이야기가 근간을 이루는 문학의 효용가치가 떨어진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지난 세기에는 ‘시의 시대’가 있었고, ‘소설의 시대’도 있었다. 이제 ‘문학의 전성시대’라는 용어가 역사 속에서 박제될지 모른다. 문학 작품을 해부해 문인들의 기를 꺾었던 평론가 집단의 위상도 덩달아 추락했다.
정말 안타깝지만, 미래 세상의 주도세력이 될 젊은 층 대다수는 변방의 문학이라도 관심이 극히 적다. 나이는 숫자가 불과하고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문학판 모임에서 50대 중후반의 문인이 식당 말석에서 여전히 깍두기나 날라야 할 군번이라면 속된 말로 ‘모양 빠진다’. 비단 문단만 아니라 일부 전통 문화 장르 모임에서도 젊은 층 기근 현상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호소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위축된 문학이 침묵의 장르로까지 전락한다면 더 문제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문학 전파의 플랫폼 역할을 했던 책과 신문 등 종이 매체에 대한 독자 외면으로 작품을 담을 그릇이 쪼그라든 데다 ‘문학을 하겠다’는 인재마저 줄어드는 현상을 걱정해야 한다.
이런 시절도 있었다. “시를 쓰는 누굽니다”. ‘소설 쓰는 아무개입니다“ 등으로 자기 소개하는 문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 하나만은 대단했다. 다 추억의 장면이다.
문학이 시절을 잘못 만난 건지, 시대를 못 따라간 건지 지금 따질 상황은 아니다.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 문화 전파의 플랫폼이 변했다면 그에 적응해야 한다. 전통 매체에만 매달리다간 부인이나 남편, 문우, 진짜 친한 술친구 중심의 극히 일부 독자만 거느린 것에 만족해야 한다. 이는 침묵의 문학이나 다름없다. 독자가 없는 자기 만족의 문학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문화 과잉 시대는 저절로 온 것이 아니다. 공급자의 발 빠른 적응력이 큰 작용을 했다. “훗날 누군가가 내 작품을 발견하고 제대로 평가할 때가 올 것”이라는 식의 작품 활동은 낭만적이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독자는 어디든 있다. 작품이 플랫폼을 잘 찾으면 양질의 독자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일단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작품과 독자가 한데 어우러지면 인터넷 매체와 영상 매체는 물론 전통의 종이 매체까지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과잉 시대에 설 자리가 어렵게 됐다고 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침묵보다 낮다. 형식과 담아내는 내용 선택은 ‘문학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것이 문학 공급자의 자세다. 판단은 독자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