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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 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 1-11. 소설의 유전자

작성일 : 2023.07.10 03:29

1-11. 소설의 유전자

/양선규

 

우리가 무엇을 쓰든 그것을 조정하는 것은 언제나 글 뒤에 있다. 앞에 있는 것은 그저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보이는 것들뿐이다. 그런 입장에서 소나기를 한 번 살펴보자. 황순원의 소나기는 많은 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첫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소나기를 만들고 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모성(母性) 콤플렉스다. 황순원은 소나기를 위시한 여러 소년 주인공 소설로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있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 특히 남자들에게는 평생 강하게 작용하는 것, 어떤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 그 모성 콤플렉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모성콤플렉스가 소나기의 소설 유전자다.

먼저, ‘콤플렉스(complex)’라는 말에 대해 의견 조절을 좀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말이 질병과 관련되어 있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콤플렉스는 마음 상태가 좀 복합적이라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 안에서 어떤 에너지가 흐를 때(심리라고 총칭할 수도 있지만 그 표현으로 포괄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것이 한 부분에 가서 좀 복잡한 반응을 야기하는 경우 우리는 그곳(공간적인 비유다)을 심리 에너지의 복합적인 결절점(매듭),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반도체와 흡사한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에너지 흐름의 왜곡이 일어나고 강도에도 특별한 변화가 오는 부분이다.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듯이, 황순원에게도 그것이 창작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 지점이 어디냐는 것은 물론 추측이다. 소설을 보고 유추한다. 소설은 전해 내려오는 콤플렉스의 보고다. 그것을 읽고, 그것을 쓰면서, 우리는 우리 안의 콤플렉스와 경쟁도 하고 화해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그런 것이 필요 없으면 물론 해탈의 경지다).

소나기가 모성 콤플렉스의 소산, 내 안의 작은 인간, 아들 연인(son-lover)의 사모곡이었다는 것은 소녀높은 물에서 스스로 내려온 존재라는 것(선녀), 소년이 수동적인 성() 파트너라는 것(어린 연인, 아들 연인), 소녀가 죽는다는 것(희생의 연인), 소녀가 죽으면서 소년의 체취가 묻어있는 스웨터를 같이 묻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불멸의 연인),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무시간성 위에서 전개된다는 것(비역사적인 심리소설),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소녀는 소년에게 스스로 와서, 그에게 삶의 지극한 즐거움을 주고, 죽어서 불멸의 연인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다 아는 일이지만, 그런 줄거리, 그런 사랑은 당연히 지상(地上)의 연애에서는 없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연애담(연애스토리텔링)이다. 그런데 모두 언젠가 있었던 일인 양 받아들인다. 어떤 이는 작가의 실제 소년 경험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렇게 공동환상의 영역에 편입시킨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나기의 사랑은 지상에는 없다. 다만 우리의 숨겨둔 욕망 안에서나 있을 뿐이다. 있다면, 오직 아들 연인의 사모곡, 그런 연인(어머니 같은)을 만나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의 예술적 표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황순원 소설은 언제나 에로티즘을 그 한 가운데에 둔다. 그가 다루는 사랑 이야기는 다종다양하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격동기의 사랑, 육체적 사랑, 심정의 사랑, 신성의 사랑, 소년기 사랑, 청춘의 사랑, 파멸의 사랑, 구원의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름 붙이기 힘들 정도의 사랑, 정말이지 모든 사랑의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그 중에서도 소년기 사랑에 대한 선생의 특별한 관심은 유별나다. 인간에게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아마 선생은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 꼭꼭 감춰둘 수도 있었던 아들 연인을 기꺼이 무대 위로 올려 보내신 것 같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