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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벚꽃 필 무렵

작성일 : 2020.04.06 07:40 수정일 : 2020.05.17 08:10

벚꽃 필 무렵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꽃집이라 불렀다. 넓은 마당엔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꽃이 철따라 피고 졌다. 매년 봄마다 동네 아낙들은 우리 집에 꽃모종을 얻으러 왔다. 어머니는 모종을 나누어 주기 전에 반드시 잎이나 줄기를 한 번씩 어루만져 주며 시집가서 호강하며 잘 커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도 틈틈이 꽃가꾸기와 텃밭 농사를 가르쳤다.

부모님은 일흔을 넘기면서 기력이 떨어졌다. 두 분은 맞벌이를 하는 막내를 따라 함께 시내 아파트로 이주했다. 처음 얼마간은 아파트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는 고심 끝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고향 경로당에 다녀오시게 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당신이 좋아하는 꽃과 선인장을 심은 화분 여러 개를 들여 놓았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께 선언했다. “두 분이 상의하셔서 가장 드시고 싶은 음식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십시오. 적어도 매달 한 번 이상 그러셔야 합니다. 저승이 있다면 여기와는 다를 것이니,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려도 아무 소용없을 겁니다. 살아계실 동안 제사상을 차려 드리겠습니다.” 두 분은 매주 토요일 저녁 식사와 매달 가족 나들이를 손꼽아 기다리곤 하셨다.

부모님은 바쁜 우리를 대신하여 손자 손녀를 정성껏 건사하셨다. 아버지는 큰아이가 고2 , 여든다섯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막내 손녀가 대학 갈 때까지 한 방을 쓰며 아이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서울로 진학한 손녀는 할머니와의 식사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집으로 오곤 했다.

벚꽃 만개한 봄날 아침, 어머니는 아흔넷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순간 손녀의 손을 꼭 잡으셨다. 갓 병원 인턴으로 들어간 손자가 올 수 있는 날에 맞추어 입관을 하루 늦추었다. 손자가 첫 월급으로 사온 속옷은 관을 채우는 보공(補空)이 되었다. 누나들은 우리 엄마 태어나고 가장 고운 속옷 입어보겠네라며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택에 가시는 날은 화사한 꽃비가 내렸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평안해 보였다. 나는 어머니를 유택에 모신 후 조문 오신 분들께 감사의 글을 보냈다.

철보다 빨리 만개한 벚꽃이/하얀 꽃비를 뿌리던 봄날 아침/어머니께서는 꽃잎처럼 가볍게/이승의 무거운 짐을 다 벗었습니다.//어머니께서는 손녀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 숨을 쉬셨으며/손자가 첫 월급으로 사온 속옷을 품에 안고/편안한 모습으로 천년 유택에 드셨습니다.//미운 정 고운 정을 함께 나누며 같이 살아왔기에/남은 빈자리가 너무 크고 허전하게 느껴집니다./더 잘 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이별의 아픔은/남은 자의 성숙한 삶을 위해/어머니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두서없는 몇 줄 글로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새봄을 맞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해마다 벚꽃 필 무렵 어머니 기일이 다가오면,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축하며 꽃구경하고,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던 기억들이 아름답고도 슬픈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대구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