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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4.03 04:38 수정일 : 2020.05.17 08:08
공적인 언어와 사적 언어
문성수/소설가
고통과 슬픔, 환희와 경탄, 참혹과 분노, 절망과 비탄의 상황에서 육체가 반응하는 공통적 현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눈물을 흘리는 행위’라고 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극도로 팽창한 감정이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맬 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과 눈물은 인간 본성에 가장 정직한 반응일지 모른다. 그래서 아들을 잃은 슬픔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시인 김현승의 ‘눈물’에 공감하게 되고, 우한 폐렴에 걸린 부부가 격리 수용되기 위해 아홉 살 난 아이와 생이별하는 장면에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눈물은 전염성이 강한 보편적 정서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말들 경계 잃고 이전투구
공적 언어가 대중 좇는 ‘감상 팔이’
사적 욕망 위해 공공의 공간조차 왜곡
철저한 자기부정 ‘금시조’는 어디에
이런 경우는 어떨까. 무자비한 ‘피의 숙청자’로 알려진 스탈린이 정적들의 처형 서류에 사인한 후 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프라우다의 보도나, 평양 아파트 건설 현장의 붕괴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조선중앙방송 여자 아나운서가 ‘오늘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사고 현장과 병원을 방문하시어 유가족과 부상자의 손을 일일이 잡으시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시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공화국 건설에 매진했던 일꾼들의 희생적 노고를 생각하시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라고 울먹일 때 그들이 흘렸다는 눈물의 보도는 과연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물론 오페라 여주인공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보면서 연민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사고로 죽거나 다친 이의 가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의 눈물을 보일 수 있다. 다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저런 보도의 의도가 불순한 동기에 기대고 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도자의 지극한 인간적 면모와 자칫 불거질지 모를 사회적 책임과 원망을 감상적으로 희석하려는 선전술임을 말이다. 우리 사회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렇게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상 팔이’ 선전술이 사적 공간의 일을 공적 공간에 끌어들임으로써 대중의 인식에 혼란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객관성·보편성·항구성을 지녀야 하는 공적 언어가 의견에 가까운 사적 언어와 뒤엉키는 바람에 우리 시대의 말들도 경계를 잃고 이전투구 중이다.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믿지 않는 말들의 전쟁은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는 식의 어설픈 도인 흉내나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서민 코스프레’는 계절을 모른다. 사적 욕망을 위해 공적 공간을 이용하는 기만적 술책이 자유·민주·공정·평등이라는 추상명사로 포장되어 폐허 위의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
이 시기에 제1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이문열의 단편 ‘금시조’를 다시 펴 든다. 예술의 완성을 놓고 벌이는 스승 석담과 제자 고죽의 갈등이 인간다운 삶을 사유하는 방법을 놓고 양극단으로 다투는 두 진영의 현재 모습 위로 자꾸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석담은 문자에서 향기가 나고 서책에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려면, 우선 학문과 예(藝) 그리고 고결한 품성을 길러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의 도(道)를 강조했다. 반면 고죽은 가르치지 않아도 깨닫고 흉내 낼 줄 아는 비범한 재기를 바탕으로 예만 앞세워 스승과 갈등한다.
엄격한 통제와 자기 절제 속에 살던 석담이 죽고 난 뒤, 고죽은 예를 무기로 세상의 명성과 부를 누리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으나 노년에 들수록 뭔가 자꾸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완성된 예술의 경지에 들었을 때 보인다는 환상의 새 금시조는 꿈속에만 가끔 나타날 뿐이다. 임종이 가까워진 그는 지난 시절 치기 어린 자만과 금전으로 맞바꿨던 자신의 작품들을 다시 거둬들인다. 아무리 다시 살펴보아도 제대로 건질 만한 것이 하나도 없자 그는 탄식과 함께 모두 불사르기를 명한다. ‘나는 저것들로 일평생 나를 속이고 세상 사람들을 속여 왔다. 스스로 값진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당연한 듯 그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아들였다…. 이것들을 남겨 두면 뒷사람까지 속이게 된다.’
결국 고죽은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불길 속에 날아오르는 금시조를 보았지만 비단 이것은 예술 문화에만 국한할 이야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