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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7.02 02:46 수정일 : 2023.07.02 02:49
기본에 충실하면 걱정할 필요 없다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1994학년도에 처음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력고사’ 체제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주입식 수업과 암기 위주의 학습을 개선하고 ‘통합적인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 평가를 위해 도입됐다. 학력고사 시절엔 내신 성적과 학력고사 성적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수능이 도입된 이후에는 내신 좋은 학생이 반드시 수능에서 고득점 하는 것은 아니다. 수능에서는 ‘고차원적인 통합적 사고 능력’을 강조하다 보니 교과서의 기본 개념을 교과 내용 밖으로 확대·적용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고난도 ‘킬러 문항’이 그 극단적인 형태다. ‘고교 교과 과정 안 출제와 킬러 문항 배제’라는 정부 발표는 수능 출제 방향을 어느 정도까지는 과거 학력고사 시절로 되돌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교과서와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수능 고득점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고난도 킬러 문항 배제는 대다수 국민과 교육 종사자들이 바람직한 조치라고 환영한다. 다만 수능을 몇 달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나왔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변별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올해 수능은 쉬운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예측한다. 다른 한편으론 과목당 문항 수와 풀이 시간은 그대로 둔 채, 변별력 확보를 위해 준 킬러 문항을 늘인다면 시간이 부족할 수 있고, 중상위권은 오히려 더 어려운 수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9월 모의평가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수능시험을 자격고사로 바꾸지 않는 한 적절한 변별력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시험 문제가 어려우면 사교육이 성행하고 가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입시 변천사는 문제가 어렵게 출제될 때는 과외를 받아도 점수를 올리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체 과외 수요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고사보다 쉬운 학력고사가 도입되면서 사교육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부모가 나서서 관리하고 돈을 투자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능 체제 도입 이후 주기적으로 물수능, 불수능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쉬운 시험은 실력 테스트가 아닌 실수 줄이기 테스트가 될 위험이 있다. 수학 등급을 예로 들어보자. 원점수 100점 만점에 98점이 1등급이면 두 문제만 틀려도 한 등급이 내려가 수시 최저학력 기준 충족이 어렵고, 정시에서도 상위권엔 변별력이 없어 대학과 학과 결정에 치열한 눈치작전이 전개된다. 한두 문제 실수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입시 결과에 승복하기가 어렵다. 그런 해는 최상위권 재수생이 늘어난다. 반면 85점이 1등급이면 서너 문제가 틀려도 1등급을 받을 수 있고, 정시에서도 억울한 수험생이 줄어든다.
“자(尺)질 자주 하는 며느리는 써도 가위질 잘하는 며느리는 못 쓴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가위’, ‘칼’, ‘빗자루’ 등과 같이 무엇을 자르거나 쓸어내는 데 쓰이는 도구를 다룰 때는 늘 조심하라고 자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무속에서도 꿈에 가위질하면 자기 몸에 해로운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자식이 새로 살림을 날 때도 부모가 가위는 물려주지 않았다. 어떤 제도가 예측하기가 어려울 때는 요령과 편법, 불법과 탈법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어느 작가가 “엿장수의 가위는 자르는 기능보다는 음향 효과를 노리고 있다. 순박한 모양의 무딘 쇳조각은 십자가처럼 교차하여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는 융합의 상징물이다.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마을 아이들을 꾀게 하는 풍경을 만들어 냈다.”라고 했다. 모든 분야에서 가위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음미해 볼 만한 말이다. 정치에서든 교육에서든 어떤 제도를 고치고 바꿀 때는 정겨운 가위소리를 내며 이해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내 한바탕 서로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
수험생은 수능 난이도에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다. 난이도 논란이 있는 올해야말로 교과서적인 기본 개념과 내용 정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수험생은 ‘기본에 충실하고 실력을 갖추면 어떤 제도, 어떤 시험에서도 손해 보는 일이 없다’고 믿어야 한다. 언론과 사교육 기관은 괴담 수준의 미확인 정보로 수험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육 당국은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안정된 수능 출제 방향을 제시하여 수험생, 학부모가 본질 밖의 문제로 고통받지 않게 해야 한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