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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기

노창재의 우포일기

작성일 : 2020.04.02 02:17 수정일 : 2020.05.17 08:01

우포늪 - 아름다운 것들

노창재 시인

 

이월의 비가 내린 후 우포늪의 풍경은 산모가 된다. 신성을 받든 제사장이 기진하여 몰골을 감춘 듯 폐허 한 풍경은 철없는 움직임들이 주인인 냥 사방에 매달렸던 빗방울들이 주르륵 땅으로 곤두박하고 후두둑 깃을 터는 텃새들이 털갈이 연습을 한다. 나무와 마른 풀들이 애써 태연한 이유를 물어 무엇 하겠는가?

삼월의 하늘이 되면 우포늪은 월동의 새들이 사라진다.
기러기 편대가 자취를 감추고 우아한 자태의 고니도 떠난다.
창공을 가르는 거기에 갸륵한 무엇이 있어 애틋한 사랑이 가서 기대이고 때로는 슬픔이 수묵처럼 번지기도 하는지. 아쉬움만으로 어찌 설명을 하랴.
삼월의 우포늪은 또한 곳곳의 버들 군락에서 연두의 실루엣이 아기처럼 아장대며 울음을 터뜨린다. 산고를 격고 난 생명의 움틈이다.
우포늪은 이렇게 사라지고 움틈을 반복하면서 사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라짐과 움틈의 경계, 이것이 우포의 맨 처음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사라진 것 중에 보이지 않거나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예전, 우포늪 곳곳에는 인근 주민들이 경작하던 밭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 밭에는 주로 보리농사를 했는데 4월에서 오월로 넘어 오는 중천하늘에는 노고지리가 정오 방향에서 정지비행을 하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노고지리를 볼 수 없음은 못내 아쉬울 뿐이다.
또 하나 아쉬움은 부엉이 울음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겨울밤 늪가의 참나무에서 울던 그 소리는 묘하게도 가족의 결속을 지탱하는 힘이 있었던 듯하다. 대가족 중심의 농경사회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부엉이 울음소리와 함께 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부자리 밑으로 파고들어 자장가처럼 그 소리에 잠을 청하고 했었으니. 이렇게 사라진 것들은 무엇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작년 5, 우포늪에서는 2008년 중국 섬서성에서 들여온 따오기 한 쌍을 300개체이상 복원, 이중 야생 적응 훈련과정을 통해 40마리를 자연방사 했다. 겨울을 나는 것이 야생의 적응을 가늠하는 척도라 예상하고 노심초사 개체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다행스럽게도 30개체가 살아남아 자연 적응 중이라 한다. 지속적인 방사가 이루어진다면 우포늪 주변에서 아름다운 따오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날도 머잖다.
따오기가 이렇게 방사되기까지 수백억의 돈이 들었다.
그럼에도 우포늪가가 고향마을인 나는 어쩐지 걱정스럽다. 그래서인지 게리쿠퍼와 그레이스 캘리 주연의 고전영화 하이 눈이 오버랩 되는지도 모른다. ‘노고지리가 보리밭 한가운데 정오의 시침처럼 정지할 때가 사라진 것처럼. 정오의 열차가 도착하면 무언가 사라져 버릴 듯한,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세상의 다른 가치들이 우포가 안고 있는 고스란한 자연의 풍경을 다투어 점령 해 버릴 것 같은,
주인공이 보안관 뱃지를 내던지고 마을을 떠나는 장면처럼 우포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잠재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