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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 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 1-7. 이누야샤와 삽살개

작성일 : 2023.06.10 01:54

 

1-7. 이누야샤와 삽살개

/양선규

 

일생 동안 딱 한 번 개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시골무사, 삽살개에 관한 명상(지식공작소, 1999)이라는 짧은 장편소설인데, 한국 삽살개 보존회 관계자의 부탁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 공부를 좀 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하는 개에 관한 이야기들이 꽤나 흥미진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개와 인간의 심리(정서) 구조가 95% 이상 동일하다는 사실과 발굴된 뼈(유골)만 봐서는 개와 늑대를 전혀 구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소설가적 입장에서 볼 때 개는 인간(영혼)과 늑대(육체)를 한데 섞어놓은 존재였다. 알고 보니,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충분히 소설의 주인공이 될 만한 존재였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논할 때 개가 자주 부족한 인성을 비유하는 보조관념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러므로 전혀 온당치 못한 일이었다. “개 같은 놈!”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개를 보면 인간을 보는 것보다 인간을 더 자세히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이 오직 자신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사는 짐승에게 자신을 어떻게 투사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자기 안에서 자기를 봐야 하는 한계를 넘어서 보다 객관적으로 자기를 관찰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뇌피셜이다. 그렇게 개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전에도 개에 대한 관념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본 경우가 한 번 있기는 했었다. 공부가 아니라 곁눈질 경험으로였다. 아이들 클 때 오며가며 아이가 보는 일본산 애니메이션을 곁눈질로 함께 볼 기회가 있었다. 자의반 타의반, 아이들 보는 걸 따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본 것들이다. <은하철도 999>, <짱구는 못말려>, <드래곤볼>, <이누야사> 같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 <이누야샤>는 아이들보다 되려 내가 더 좋아한 작품이다. 주인공 이름이 내가 좋아하는 개(이누, いぬ)였기 때문이다. <이누야샤>(犬夜叉)는 우리말로 옮기자면 개 도깨비가 된다. '야차(야샤)'는 낯익은 이름이다. 국문학도들에게는 다 그럴 것이다. ‘이수일과 심순애로 널리 알려진 <장한몽>의 원작이 <곤지키야샤(金色夜叉)>라는 일본 명치 시대의 소설인데, 이 경우는 우리말로 옮기면 돈 귀신(금색야차)’이 적절할 것이다. 둘 다 물론 충분한 번역은 아니다. 일본 이야기문화와 우리 이야기문화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이야기에는 요괴(妖怪) 개념이 없다. 고작해야 도깨비고(우리 도깨비는 일정하게 정해진 형체마저도 없다) 귀신이다(요즘 등장하는 좀비들은 너무 흉측하다). 귀신들도 그저 소복(나중에는 교복)에 산발한 원귀(寃鬼)로 나타나서(성별은 거의 여자다), “내 다리 내놔라~”내가 아직도 친구로 보이니?”, 아니면 “(거꾸로 매달려서)우리집이다~”라고 겁을 주는 정도다. 그게 우리한테는, 일반적으로 영계(靈界)의 메신저들이 우리세계에 나타나서 하는 일반적 행태다. 성격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아마 유교주의 국가로 오래 자리 잡고 살아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된 모양이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요괴들이 한몫 단단히 한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인신(人神) 동일체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까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래 전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일본 서적을 본 적이 있다(번역본이 나오기 전이다). 우리나라에서 8년간 유학을 공부하고 간 일본인 학자의 저술인데(요즘은 모모한 대학의 교수가 되어 꽤나 유명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은 아직도 공자(주자)의 나라.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유별나게 생각하는 것은 이기철학의 영향이다. 이기철학은 명징한 이성의 세계다. 요괴 따위가 서식(棲息), 혹은 잠식할 만한 어두운 구석이 없다. 합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비합리와 감성이 스며들 여지가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어떤 식인지, 직접 그가 한 말을 한 번 들어보자.

 

<>의 민중과 <>의 대중 : 그런데 이 민중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것으로 대중이 있다. 민중은 주체이든 객체이든 어쨌든 무구한 존재였다. 농민노동자도시 영세민 등, 권력에 억압수탈소외된 선량한 백성이었다. 그것에 반해 대중이란 <욕망=> 쪽의 존재이며 <기가 탁한 객체>로 인식된다. 민중은 이념에 따라 지배통제하기 쉽고 대중은 이념에 따라 지배통제하기 어렵다. 민중은 이념을 믿지만 대중은 이념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운동체에게 있어서 민중은 바람직한 존재이고 대중은 멀리해야 할 존재였다. 또 대중은 욕망으로 지배통제하기 쉽고 민중은 욕망으로 지배통제하기 어렵다. 대중은 욕망에 살지만 민중은 욕망에 살지 않기 때문에. 그 때문에 경제적 헤게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에게 있어서 대중은 바람직한 존재이며 민중은 멀리해야 할 존재이다. 이처럼 민중과 대중을 둘러싸고 정치 운동체와 경제 활동체 사이에는 날카로운 대립이 전개되고 있다.

 

견강부회가 좀 있기는 했으나 비유교국가의 시민이 유교국가의 문화적 특성을 잘 요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중과 대중을 리와 기로 설명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기가 탁한 객체'로 대중을 파악해서 그들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뼈만 보면 개와 늑대는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라는 개 전공학자의 말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민중이 대중도 되고 대중이 민중도 되는 다이너미즘에 대한 이해(직관적 통찰)가 좀 부실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유교주의적 국가인 우리나라는 현세주의적인 풍조가 강하다. 그래서 소설이든 영화든 판타지가 잘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성향은 무협영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터무니없이 과장된 무술이 나오면 관객들의 호응을 잘 받지 못했다(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었던 왕우, 이소룡, 성룡, 이연걸, 견자단 등이 츨연하는 무협영화는 무협적 과장이 지나치게 튀는 것을 절제한다. 가능하면 배우들의 실기가 어느 정도 받쳐준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과장에도 반드시 리얼리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나라의 대중적 의식이다. 물론 무협 대중인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누야샤>가 그 빗장 걸린 문을 따고 불쑥 내게 들어왔다. 어째서 그게 가능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터무니없는 과장이 용납되기 시작했다. 고작 칼 한 번 내려치는 동작에도 수 만 가지 변화가 있는 것처럼 빛과 색과 소리가 요란한 합주(合奏)를 연출해 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접수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언제부턴가는 "저 정도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과장 추수주의'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빛이 좀 더 하늘을 덮어야지, 땅도 좀 더 깊이 갈라지고, 소리는 왜 저리 일찍 그치고 마나, 저게 뭐야 요괴 치고는 너무 시시하게 죽는구만, 더 강하게, 더 자극적으로, 스토리든 장면이든 갈 때까지 양껏 밀어붙여주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 본격적인 신체 노화(老化)가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이누야샤>를 모르시는 독자분도 계실 것 같다. 간단히 소개한다. <이누야샤>는 다카하시 루미코가 창작한 만화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1996년부터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되었고, 2008년에 558화로 완결되었다. 47회 소학관 만화상을 수상했다. 일반적인 탐색영웅신화의 서사구조(숨겨진 보물찾기)에 현대 동화의 전형적 판타지 포맷 중 하나인 시간여행(시간의 문을 통과한 과거로의 여행)과 윤회적 인물설정을 가미하고, 무협적 요소인 각종 요괴 퇴치 서사(무자수행)를 나열한 전형적인 야마토식 무협-멜로 서사물이다. 이누야샤의 기본 캐릭터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누야샤는 서국의 대요괴 투아왕과 인간 이자요이 사이에 태어난 반요(半妖)이다. 체력이 강하고 맷집도 좋다. 아버지로부터 토토사이가 만든 명검인 철쇄아를 물려받았다. 초하루 때에는 인간이 되지만 철쇄아와 떨어진 채 위기에 처하면 흉폭한 요괴가 된다. 말투는 험악하고 성격은 급하지만 요괴가 가질 수 없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 산혼철조, 비인혈조, 바람의 상처, 폭류파, 금강창파, 금강폭류파, 명도잔월파등의 기술을 쓸 수 있다. 금강과 유가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으며 금강을 선택해도 가영이를 버리지 못하는 어장관리(?)를 하고 있다. 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지키는 떳떳한 남자이다. [위키백과]

 

이누야샤의 캐릭터를 요약해 보면, 그는 요괴와 인간 사이의 혼혈(인간계에서는 초월적 존재)이며, ‘나쁜 남자의 캐릭터를 일부 가지고 있으면서, 기본적으로는 훈남(꽃미남)’이고, 능력 있는(불패의 무기 철쇄아의 소지자) ‘의리의 사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다. 거기다가, 일본인들의 무의식, 혹은 신화적 심성이 좋아하는 와의 혈연성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숭배 대상이 적지 않게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코마이누’(こまいぬ, 狛犬). 사자 모양으로 된 개의 석상인데, 주로 신사(神社) 앞에 벽사(辟邪)를 위해 쌍으로 마주 보게 세워 놓는다. 말하자면, 이누야샤는 코마이누의 현대적 부활인 셈이다. 사실, 나의 개 이야기 시골무사, 삽살개에 관한 명상은 한국의 삽살개가 일본의 코마이누의 원형(原型)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작성된 것이다. 한국 삽살개 보존회가 그 방면의 자료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일본 천황(현재는 상황)이 자신의 가계가 한반도(백제)의 혈통(모계)을 잇고 있다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한 적도 있는 형편이니 코마이누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개라고 해서 하등 이상하게 여길 사람도 없다. 코마라는 말이 고려(高麗, 고구려)를 뜻하는 말인 것도 모르는 이가 없다. 신라 김씨의 조상이 중앙아시아에서 말을 타고 동쪽 끝으로 온 스키타이족일 것이라는 주장도 공공연히 방송을 타고 있다.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를 개척한 우리 조상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여러 민족(족속)들로 분화되었지만 그 조상들과 함께 했던 개들은 여전히 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삽살개나 이누야샤나 코마이누 같은 장모종(長毛種) 개들이 특히 그러하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