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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수프/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1- 5. 하이퍼그라피아 글쓰기

작성일 : 2023.05.26 07:40

5. 하이퍼그라피아 글쓰기

 

하이퍼그라피아(글쓰기 중독증)라는 말이 있다. 신경학자들은 그것을 신경학적인 비정상 상태, 즉 측두엽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에너지 과잉, 발작으로 이해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같은 사람 역시 당연히 하이퍼그라피아이다. 하루에도 몇 장씩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페이스북 글쓰기 중독이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에 눈에 띠는 악영향을 미친다면(도통 바깥출입도 하지 않고, 그저 방과 부엌만 오고 가며 이것저것 주전부리만 하는 통에 복부 비만이 날로 심각해지는 상태라면) 당연히 고도의 질병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경학자들은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발작, 비관과 환희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감정의 변화,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기질, 성 취향의 갑작스런 변화, 글을 쓰고자하는 주체 못할 욕구 등 도스토예프스키가 청년기 한 시점에서부터 보여준 여러 가지 복잡한 성향들이 대부분 측두엽 간질 증상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측두엽 간질이란 대뇌피질에 있는 측두엽에서 일어나는 발작이다. 뇌의 다른 부분에서 일어나는 발작은 이런 특성을 수반하지 않는다. 다음의 인용문이 바로 그런 설명을 가능케 한 한 천재적인 작가의 생애에 있었던 사건과 이력이다.

 

스물다섯 살 된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는 어느 날 의식이 변할 정도로 위험한 발작을 일으켰다. 두려움과 황홀경이 겹쳤다.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머리를 흔들며 울기도 했고, 마구 몸부림치며 상처입기도 했다. 이후 그는 혼란의 와중에서 말과 글을 사용하는데 곤란을 겪었다. 일종의 가족 병력이었다. 그는 얼굴이 비대칭적으로 현저히 일그러지기도 했는데 이것은 뇌가 비정상적일 때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또한 심한 감정의 변화, 강박적인 도박, 순간적인 격분 등을 일으켰다고 전해지며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죄의식과 초자연적인 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성욕도 특이해서 30대 중반까지는 성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나 나중에는 결혼을 두 번이나 했고 혼외정사를 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재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업 작가로 나서기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글쓰기로 인해 자신의 건강이 더 악화된다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아플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글이 더 잘 써진다고 믿었다. 평생 동안 19편의 장편소설과 중편소설을 썼고 그 외에도 아주 무서운 속도로 수많은 노트와 일기,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다시 생각해 보지만,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글을 씀으로써 나는 위안을 얻는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먼 과거의 추억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 추억은 며칠 전 생생한 기억으로 되돌아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짜증나는 선율처럼 내 안에 계속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없애긴 없애야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글로 적으면 없애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왜 글을 쓰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측두엽 간질을 앓고 있었고 그러한 병적 상태에서 작가로 활동했다는 말씀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의학적 소견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측두엽 간질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비로소 전업 작가가 되고 세계적인 명작을 남긴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생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색다른 의견들이 제출되어 있는 형편이다. 스물여덟 살 때 모반(혁명)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려는 순간 황제에 의해서 극적으로 사면을 받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뛰어난 작가가 되었다는 설, 그가 목숨을 건져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간질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이는 형벌이 그의 죄의식(살부충동)을 충분히 다독일 수 있었던 결과라는 설, 도스토예프스키는 천재도 하이퍼그라피아도 아니었고 그가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혁명을 포기하고 도박꾼으로 살아가면서 졌던 엄청난 도박빚을 갚기 위한 마지막 수단에 불과했다는 설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어쨌든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으로 나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인간이 자신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이 그로부터 일층 깊어지고 새로워졌다는 말이다. 그만큼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작가다. 그런데 그가 병자란다. 그만이 아니다. 고흐가 보여준 발작 상태는 유명하다. 보들레르도 사창가를 전전했다. 도대체 정상인은 예술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신경학자들은 애써 표 나게 외치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단호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인간이란 모두 그렇게 병들어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밥만 열심히 축내는 자가 가장 건강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1970년대의 신경학자인 스티븐 왁스먼과 노만 게슈빈트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게슈빈트 증후군이야말로 성공적인 작가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정적인 작가를 만드는 필수 조건이다.

측두엽 간질을 지닌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과 구별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이른바 게슈빈트 증후군이라 불리는 특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게슈빈트 증후군은 모두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 하이퍼그라피아, 철학과 종교에 대한 심취, 분노 조절 장애 등의 감정의 격변, 성징의 급격한 변화, 제어되지 않는 발화 등이 그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게슈빈트 증후군의 다섯 가지 특질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는 다산 작가로 섬세한 글을 썼으며 도덕적인 면에서도 집착이 강했다. 또 갑자기 화를 내기도 했으며, 그의 유별난 성 취향은 사람들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했다. 또한 간질 발작을 일으켰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벌어지는 일상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편, 하이퍼그라피아를 겪는 이들의 글쓰기는 외관상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일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거울형 글쓰기(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글자를 반대로 쓰는 방식)처럼 매우 정교하거나 특정한 필기체로 글을 적는다. 또한 이들은 강조를 위해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적거나 혹은 색깔 있는 잉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본문에만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주석을 달아놓기도 하고 여백에 그림을 그리거나 화려한 이니셜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전두엽에 손상을 입었을 때는 단일 철자를 반복해서 쓰는 것처럼 단지 정서(正書) 강박의 초기 형태만 보여줄 뿐이다. 이런 행위는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도구를 자꾸 만지려는 행위인 이른바 도구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전두엽에 손상을 입어 도구 행위를 보여주는 환자들은 단지 연필과 망치가 거기 있다는 이유로 그 도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측두엽 발작은 환각도 부르는데 물체가 줄거나 확대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사물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상이라고도 불린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음식을 먹으면 몸의 크기가 줄어들거나 커지는데 따른 것이다. 이 소설은 저자인 루이스 캐럴의 발작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토끼를 따라 가다 구멍에 빠져 추락할 때 앨리스가 받았던 느낌은 발작 시 경험하게 되는 급작스런 공간 이동의 느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신경학자가 꼽는 측두엽 간질 작가로는 플로베르를 위시해 테니슨, 리어, , 스윈번, 바이런, 모파상, 몰리에르, 파스칼, 페트라르카, 단테,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성 바올로 등을 들 수 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발작에 관한 묘사는 측두엽 발작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발작은 최후의 날이라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어 곧 자신과 외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내 가난한 뇌에 아이디어와 이미지들이 마치 소용돌이치듯이 들어왔다. 내 의식, 아니 내 전부가 폭풍으로 침몰하는 배처럼 느껴진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다 그는 구슬프게 울부짖었고, 기억들이 몰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불타는 환영을 보았고, 입에는 거품이 일기 시작했고, 오른쪽 팔을 계속 움직이면서 약 10분간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리곤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은 모두 뇌파기록장치가 나오기 전에 태어나고 활동했던 사람들이므로 학자들의 진단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로 그들의 경련 증세를 묘사한 것들을 보고 판단한 경우다. 다만, 측두엽 간질로 인한 게슈빈트 증후군은 브로카 실어증(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 전보식 문장을 사용)이나 베르니케 실어증(언어 중추의 파괴로 인해 스스로 말은 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말은 소리만 들을 뿐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 문법도 규칙에 맞게 사용하지만 의미가 통하지 않으며 몸짓 등 행동을 사용한 의사소통은 잘하나 청각적인 처리가 필요한 말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과는 달리,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라는 점에서 예술의 창조에 크게 기여했다고 그들은 보는 것이다.

인간은 이야기의 동물이다. 이야기 없이는 못 산다. 페이스북을 봐도 그렇다. 페이스북에는 날마다 새 소식이 올라온다. 각자의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그게 다 재미있다. 왜 남들의 인생이 그렇게 궁금한가? 아마 인간이 본디 그렇게 타고난 존재인 모양이다.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내가 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남이 하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야기라면, 솔직한 인간의 이야기라면 다 재미있다. 기교는 양념일 뿐이다. 원래 이야기라는 요리는 재료가 신선하고 재료 자체의 풍미가 있어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어쨌든 인간은 이야기의 동물이다.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다. 오고 가는 이야기를 보면 또 그 시대의 공통 관심을 알 수도 있다. 그건 부수입이다.

글쓰기는 인간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림이든 영상이든 그 무엇이든, 인간 사이의 교량(橋梁)이 되려면 이야기의 품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게슈빈트 증후군도, 하이퍼그라피아도, 신경의학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야기 전략(방책)’ 중의 하나다. 인간이 서로를 품을 수 있으려면 이야기로 서로를 묶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인간으로 인정된다. 그것이 질병이든, 창의성이든, 괴물이든, 천재든, 이야기 안에서 인간은 서로를 인간으로 여긴다.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 안에 들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이야기 없는, 설명도 이해도 경멸도 존중도 없는 그런 진공 상태에서는 인간은 인간의 호흡을 영위할 수 없다. 어떤 이야기 속에서는 병자의 역할을 맡고, 다른 어떤 이야기 속에서는 천재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통째로 이야기 자체를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세월은 흐르고,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코드와 맥락도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가 다르고 내일의 이야기가 다르다. 오늘의 코드와 맥락이 내일의 오해와 편견이 되는 것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 왔다. 그래서 인간은 이야기로서의 인간이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