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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5.21 11:30 수정일 : 2023.05.21 11:34
4. 남자는 얼굴 여자는 옷
/양선규
앞 장에 이어 무협영화 이야기를 한 편 더 했으면 한다. <와호장룡>과 <검우강호>를 이야기하고 <소오강호(笑傲江湖)>(호금전, 1990)와 <동방불패>(서극, 1992)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무협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 두 영화는 워낙 유명하고 마니아층도 두텁다.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는 서사구조상 전편과 속편의 관계다. 그러나 <소오강호>는 기본적으로 자체 완결구조를 가진 영화다. 처음부터 속편을 계획하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강호에 궁중에 보관되어 있던 무림기보(규화보전)가 유출이 되고, 그것을 둘러싼 기상천외의 암투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 강호인간들의 적나라한 욕망이 드러나면서 스승의 인면수심을 확인한 주인공이 강호를 떠날 마음을 굳히는 것이 <소오강호>의 줄거리다. 죽을 사람은 죽고, 떠날 사람은 떠나고,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 무공이 비약적으로 증진되고, 주인공에 의해 악이 토벌되고 강호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무협영화의 기본적인 정석이 충실히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동방불패>는 좀 다른 영화다. 속편이 되는 것도 일방적인 자기 의지에 따른 것이다. 주인공 캐릭터도 좀 변화한다. ‘동방불패’라는 양성공유, 선악병행의 복잡한 성격에 보조를 맞추려면 주인공이 전편에서처럼 고지식한 강호 모범생이 되기보다는 인생의 허무를 깊이 느끼면서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진 유협(遊俠)이 되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한 일이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고 서로 썸을 타려면 그런 식의 인물 구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속편이 만들어지는 형식적 패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피카레스크식 구성인데 피카레스크 소설 자체가 악한(악동) 주인공이 시간과 공간을 바꾸어 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 사건을 일으키는 내용을 가지는 것이라 주인공 영호충이 시종 진지하지 못하고 바람둥이 반건달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도 낯선 장면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퓨전 무협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정립을 위한 실험정신과 피카레스크식 연작 구성의 전통을 존중하는 감독의 제작의지가 돋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은 영호충으로 같지만 <소오강호>가 정통 무협지의 계보를 잇는다면 <동방불패>는 퓨전 무협지의 신기원을 보여준 영화라 할 것이다. 이 두 영화를 ‘줄거리들, 영화 제목들, 여자들, 남자들’이라는 화제로 나누어 각각의 관점에서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한 번 찾아보기로 하자.
줄거리들 : <소오강호>의 스토리는 명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황궁 도서관에 보관된 '규화보전'이라는 절세의 무공 비급이 분실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절대 무공을 가능케 해주는 이 규화보전의 행방을 두고 조정의 무사들과 강호의 협객들이 뒤엉켜서 혼전을 벌인다. 최근 사직을 한 황제의 호위무사 임진남은 이 비급을 가지고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으려고 하지만, 조정의 한 실세인 서창(西廠)의 총관 내시(유순 분)는 이 사실이 동창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 해 심복 황보천호(장학우 분)와 강남 맹주 좌냉선(원화 분)을 불러들여 '규화보전'을 되찾으려고 한다. 여기에 화산파의 야심가인 영호충의 사부 악불군(유조명 분)이 가세를 한다. 사부의 명을 받고 군사들에 포위된 임진남의 저택에 도착한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허관걸 분)과 그의 사매 악영산(엽동 분)은 사부 악불군의 편지를 전하려다 분실하고 그들의 분란에 말려들게 된다. 이후의 사건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좌충우돌, 영화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내는 온갖 갈등과 배신의 파노라마를 펼쳐낸다. ‘소오강호’는 그런 헛된 욕망들을 비웃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강호’는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동방불패>의 스토리는 화산파 수제자 영호충(이연걸 분)이 절세의 무공비급을 얻기 위해 제자들을 배신한 사부 악불군을 떠나 사부의 딸인 사매 악영산(이가흔 분)과 몇몇 사제들과 함께 강호를 유랑하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전설의 유토피아 우배산으로 가기 직전에 동방불패와의 분란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연전 강호 여행 때 맺은 일월신교 교주 임아행(임세관 분)의 딸인 임영영(관지림 분)과의 재회 약속을 지키러 가던 영호충은 도중에 정체불명의 여인 동방불패(임청하 분)를 만나고 그 미모에 매혹된다. 한편 임영영은 행방불명된 아버지 임아행을 찾고 있었다. 누가 아버지를 납치했는가? 현재의 일월신교 교주인 의(義)삼촌, 동방불패가 유력한 용의자다. 그녀는 영호충의 도움을 얻어 동방불패의 거처를 습격한다. 이미 동방불패는 규화보전을 손에 넣은 후 신의 경지에 가까운 무공을 습득한 상태, 다만 거세(去勢)를 전제로 한 무공의 영향으로 급격히 여성화하여 양성공유의 심리상태를 보이는 이상 상황이라는 게 그(그녀)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임아행은 영호충의 도움을 받아 풀려나지만 그 역시 음험하고 잔인한 강호의 인물로 영호충은 그의 야심을 알고 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영호충이 시시(동방불패의 애첩, 위안안 분)와 동침하던 중 영호충의 사제들이 이상심리에 사로잡힌(시시와 영호충의 정사를 보고 복잡한 심사에 젖는다) 동방불패에게 떼죽임을 당하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영호충은 임아행과 함께 동방불패를 토벌하러 나선다. 그때까지 영호충은 동방불패가 시시인 줄 알고 있다. 중원 출진을 앞둔 동방불패를 찾아간 영호충은 비로소 동방불패의 정체를 알게 되고 정분보다는 의리와 명분을 중히 여기는 강호인의 자세로 돌아가 동방불패를 응징한다.
영화 제목들 : 이 영화들의 영어 제목은 <swordsman>이다. <소오강호>는 <swordsman>이고 <동방불패>는 <swordsman2>다. 어쨌든 둘 다 ‘검객’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동방불패’라는 제목을 ‘검객’으로밖에 옮기지 못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 영어 제목을 놓고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영호충이다. 그는 강호 9대문파 중의 하나인 화산파의 수제자로서 실제적인 화산검법의 제1인자다. 정의도 알고 도(道)의 의미도 깨친 전형적인 백도(白道) 무림의 엘리트 검객이다. 당연히 그가 주인공이다. 1편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2편이 제작되면서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주인공역을 맡은 이연걸은 2편의 영호충의 캐릭터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썰)이 있다). 그래서 제목이 바뀌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제목이 ‘동방불패’다. 이를테면, 동방불패를 주인공으로 봐 달라는 이야기다. 동방불패가 주인공이 되면, 모든 애매한 것들이 승인될 수 있다. 이른바 무협지의 관행인 윤리적 서사가 빚어내는 ‘선형적 스토리’가 무력해진다. 선과 악의 대립, 불의를 징벌하는 정의, 영원한 사랑 등의 정통 무협 스토리텔링이 알게 모르게 힘을 잃는다. 이제, 보다 복합적인 상황과 인간의 양면성이 부각된다. 동방불패는 시쳇말로 트랜스젠더다. 성정체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악이 혼재하는 비선형적인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그(그녀)가 주인공이 되면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한다. 사랑도 영원한 해로(偕老)를 전제하는 구태(舊態)에서 벗어나 찰라적인 불꽃으로, 순간적이면서 영원한 생의 중심의미로 진보한다. 그(그녀)가 빚어내는 몽환적인 캐릭터는 도저한 변태(變態)로 에로티즘의 밑바닥까지 다 훑어낸다. 에로티즘이 육체적 차원을 떠나 심정적이고 신성한 것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몸(신체)은 어디까지나 타자의 것으로 대신(代身)할 수 있는 것, 육체는 소멸하고 오로지 환상만이 삶의 가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불패의 부재'로 자리매김 된다. 동방불패는 결정적인 순간, 몸을 빌려 자신의 부재성을 넘어선다. 애첩 시시의 몸을 영호충에게 제공한다. 이 시시라는 여성은 영호충을 동방불패로 여기고(그렇게 생각하라고 동방불패가 강요한다), 영호충은 시시를 동방불패로 여기며(영호충에게는 그렇게 속인다) 서로 몸을 섞는다. 두 사람 다 부재하는 동방불패와 몸을 섞는다. 그렇게 ‘몸’이 부재화된다. 동시에 동방불패는 유비쿼터스가 된다. 부재이면서 도처에 편재(遍在)하는 불패의 환이 된다. 영호충과 동방불패는 환상 속에서, 그들만의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식으로 무한(無限)의 애정행각을 펼친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죽음까지 파고드는 에로티즘이 그들 사이에서 출렁인다. 무의식의 향연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동방불패’는 다른 말로 무의식이다. ‘소오강호’가 강호를 버리는 도(道)를 추구하며 인간 의식의 한 극대치를 지향한다면, ‘동방불패’는 인간 무의식으로의 침잠을 요구한다. 그녀가 죽고 영화는 가도, 의식이 지배하지 못하는, 그러나 우리 안에 실재하는, 그곳에서 동방불패는 여전히 불패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특히 중년 초입에 이 영화를 본 남자들에게 더 그렇다. 동방불패는 그들의 아니마를 대표한다.
여자들 : 김용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는 결국 한 편의 영화를 둘로 나누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출연진들과 감독이 달라짐으로써 전후편이 전혀 다른 ‘빛깔과 향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속편인 <동방불패>에 와서다. 이연걸(영호충)과 임청하(동방불패)가 거의 독보적인,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 두 배우가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방불패>에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악영산(이가흔), 임영영(관지림), 동방불패(임청하)다. 모두 일세의 미인들이다. 영호충은 이 세 여자 중 동방불패를 가장 좋아한다. 그녀에게 그냥 빠진다. 그녀는 신비스럽고, 말을 아끼고(사실은 말을 꺼낼 수 없다. 아직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오니까), 그를 쳐다보기만 하고(신비주의 전략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최근의 여자다. 나중에 그녀가 남자였다는 것이 밝혀져도 맹목의 영호충은 끝까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동방불패는 죽는 순간에서도 “그날 밤 나와 몸을 섞은 여자가 당신이 아니었는가?”라는 영호충의 질문에 결코 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랑했던 여자를 죽게 만든, 그 절절한 후회로, 당신의 삶이 후회로 가득차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죽는다. 그래서 영원하겠단다. 영호충을 현실에서 실제로 차지하는 것은 악영산이다. 그녀는 사부의 딸이고, 어릴 때부터 한솥밥을 먹고 자란 사이고, 천방지축이고, 일편단심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오래된 여자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가장 어중간한 것이 임영영이다. 그녀는 미모도 중간이고, 같이 보낸 시간도 중간이고, 남자를 매혹하는 힘도 중간이다. 타고난 배경과 능력은 있으니 자립은 가능하다. 딱 노처녀로 늙을 팔자다.
이 세 여자는 여성미의 세 본령(本領)을 대표한다. 악영산은 장신에 시원한 외모를 지녔다. 늘씬한 몸매에 성격도 쾌활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임영영은 체구도 아담하고 얼굴도 좀 고전적이다. 일테면 좀더 여성적이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귀염상이다. 성격도 톡 쏘는 면도 있으면서 남자 앞에서는 약간 내숭을 떠는, 전형적인 고전적 이중주 스타일이다. 전통적인 여성 미인상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 비하면, 동방불패는 중성미가 가미된 원숙한 여성상이다. 남성임을 전제로 구축된 그녀의 얼굴과 자태는 완벽한 양성공유의 남녀추니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반가사유상을 연상하면 된다), 인간의 신체로 표현된 것 중에서는 가장 완벽한 이미지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불패는 남성들의 아니마 중 가장 밝고 큰 것에 속한다.
남성들의 아니마는 대체로 몇 가지 등급을 형성하면서, 특히 중년 이후의 주체의 기호나 취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동방불패'는 그 중에서 1등급이라 할 만한 화려한 아니마 이미지다. 토니 볼프 같은 여성 심리학자는 남성들의 아니마가 ①어머니와 아내의 정신적 형태, ②반려자, 여자친구인 헤타이라(Hetaira : 고대 그리스의 고급 기생), ③아마존(Amazone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호전적 여인족), ④메디알레(Mediale : 영매의 힘을 지닌 자, 중개자)의 정신적 형태 등으로 나누어진다고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니마가 그런 식으로 세부적으로 범주화되기보다는 상호 교류(혼융)적으로, 때에 따라 등급 수준을 달리 하면서, 화려한 것으로나 아니면 불쌍한 것으로, 주체의 삶에 어느 정도의(사람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어머니도 볼만할 때와 가엾을 때가 공존한다). 이를테면, 성공한 중년들이 늦바람을 피울 때, 주로 동정적인 이미지를 보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3등급 정도의, 자신 안에 있는 ‘불쌍한 아니마’에 영향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남자가 화려한 중년 싱글 여성에게 끌린다면 이는 주체가 동방불패와 같은, 1등급 아니마의 영향권 아래 들어있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누차 강조하자면, 인생을 양분논리나 4분법, 8분법, 16분법으로 풀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남자들에게 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대략 그런 범주로 형성된다는 것은 인정할 만하다. 어쨌든, 동방불패는 남성들의 내면에서 그동안 박대당하며 쪼그라들어있던 아니마를 화려한 모습으로 밖에서 대면하는, 의식계에서 잘 볼 수 없었던, 통쾌한 쾌를 선사한다(그녀의 무공이 그렇다).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어, 귀엽게 노는, 강적(强敵)이면서도 호감을 주는 연하의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역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변태’가 주는 쾌도 만만치 않다. 동방불패역의 임청하가 그 영화에서 보여준 몇몇 양성공유 장면은 앞으로도 영영 볼 수 없을 만큼의 ‘불패적 이미지’로 남는다.
남자들 : 무협영화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는 남자들의 영화다. 남자들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악(惡)이 전경화된다. 서부극도 그렇고 무협도 그렇다. 남자들은 악의 전도사들이다. 그들은 권력에 목매고,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다. 서극 영화에서 악을 전담하는 남자들은 주로 내시다. 불구의 남성이기에 그들이 추구하는 남자적 가치는 항상 악의 한 축으로 극단을 지향한다. 그게 서극의 관점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동창(東廠)’이다. <신용문객잔>에서 보여준 그들의 활약은 단연 독보적이다. <소오강호>에서는 동창의 맞수인 서창이 등장한다. 동창과 서창은 황제가 조정 대신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비밀 정보기관이다. 중국과 같이 큰 나라는 제후나 대신들의 힘이 강해지면 황제의 자리가 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천명(天命)을 받는 자가 어디서든 발호할 수 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동창이나 서창과 같은 사찰기구다. 원래는 하나였는데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두 개를 만들어 상호 견제케 했다. 영화에서는 그들 내시들이 분별없이 악행을 자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힘 있는 자들’의 입장에서고, 힘 없는 백성들이나 황제의 입장에서는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 추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이들이 이들 환관이다. 힘을 지키려는 자나, 힘이 아주 없는 자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나빠도 ‘필요악’ 정도 이하로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가 문제다. 어디서든 소수자들이 악역을 맡는 것은 낯설지 않다. 마법사나 내시가 대표적이다. 영화 속 내시들은 항상 억울하다. 그들은 환관이었기 때문에 혈족이나 가문이라는 이름으로 대를 물려가며 욕망을 팽창시킬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었다. 욕망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역으로, 후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다. 당하는 쪽 입장에서 보면 그래서 그들이 진정한 악의 화신들로 묘사될 수 있었다.
동방불패라는 인물이 남자일 때는 악을, 여자일 때는 선을 지향한다는 것도 재미있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방불패가 여자로 악인이 되는 것은 영호충의 다른 여자 파트너들(악영산, 임영영)에게 질투심을 느낄 때다. 임아행은 동방불패가 규화보전을 익히면서 여자가 된 것을 진즉에 간파하고(임아행은 규화보전의 서장에서 거세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그것의 연마를 단념한다. 그는 그것은 강호의 법칙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욕망을 위해 욕망을 포기하는 것은 이미 강호가 아니다), 영호충이 그녀를 설령 좋아한다고 해도 고작 세 번째 여자일 뿐이라고 대놓고 그녀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한다. 동방불패에게 영호충은 자신의 무의식이었다. 그(그녀)에게 영호충은 자신보다 더 소중한 '밖의 자아'였다(<양들의 침묵>에서 닥터 렉터가 스탈링 요원을 자신의 '이상적인 분신'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경우다). 그와의 방해받지 않는 완전한 한몸을 꿈꾸고 있는 마당인데 세 번째라니, 용서가 안 된다. 그 말에 동방불패는 평정심을 잃고 오버하다가 결국 자멸한다. 임아행은 그 장면에서 강호에서 잔뼈가 긁은 노회한 현자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는 유토피아인 우배산으로 떠나겠다는 영호충에게 “인간 자체가 강호인데 어디로 떠난 들 인간에게서 강호가 사라지겠느냐”고 비아냥거린다. 의동생 동방불패에게 배신을 당해 토굴 감옥에서 사경을 헤매기도 했지만, 임아행은 거기서 죽지 않고 부활한다. 꿋꿋하게 환상에 맞서 버티는 현실처럼 임아행은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간다(我行!). 세상의 모든 악은 필요악이다, 다시 권좌를 되찾은 임아행은 거침없이 복수를 한다. “다음 목을 칠 놈들을 대령해라!” 그는 그렇게 외친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진정한 남자는 오직 임아행 한 사람뿐이다(나머지는 모두 허수아비거나 환상이다).
추신 1 : 남자는 얼굴(몸매)을 보고, 여자는 옷을 본다. 임청하가 그녀를 찾아간 한국의 영화잡지 기자가 동방불패 역에 대한 소감을 묻자 “촬영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었다. 동방불패의 화려한 옷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옷이 참 멋있었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기자가 그렇게 썼다. 기자는 아마 위에서 내가 쓴 내용 비슷한 것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추신 2 : 규화보전에서는 거세정진(去勢精進)을 무공 수련의 전제로 설정했는데, 결국 절세무공을 얻기는 했지만 이상심리가 되어 그 때문에 몰락한다는 서사로 이어진다. 무공은, 심신 간을 막론하고, 상대를 반드시 제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상대를 땅바닥에 눕히지 못하는 무공은 진정한 무공이 아니다(양조위가 주연을 맡은 <일대종사>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거세정진이 무공 연마 시 심리적 동요를 잠재울 수 있는 한 방편이 되지 못하고 성전환증을 앓게 되어 도리어 ‘불균형의 내면’을 조장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장이다. 임아행의 흡성대법이 위력 면에서는 한 수 아래지만, 결국 동방불패의 규화보전을 극복해내는 것은 그런 불균형에 대한 뿌리 깊은 동아시아적 불신을 이 영화가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불패>는 그런 평면적인 서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성격)들의 복잡한 내면을 상세히 보여줌으로써 성공한 영화다. 동방불패(임청하), 영호충(이연걸), 임아행(임세관), 임영영(관지림)은 물론이고 동방불패의 충직한 수하인 일본 닌자무사대장 핫토리(이자웅) 역시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핫토리는 영호충이 자기들의 거소에 침입해 난동을 부린 것이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아는 인물이다. 영호충을 죽이지 않고 지하감옥에 가두라는 동방불패의 명령에 그는 “영호충은 선생(동방불패)을 (연모해서) 보러 온 것입니다(살려두면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라고 직언하는 인물이다. 그는 임아행과 함께 이 영화 속에서 동방불패와 영호충의 에로티즘적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특별한 인물이다.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임아행과 핫토리 같은 입체적 조연인물의 도움을 받아 비극을 뛰어넘는 ‘에로티즘의 빛나는 승리’까지 거머쥐는 보기 드문 성취를 이 영화는 이루고 있다. 서극 감독의 영화 욕심(캐릭터 욕심)을 영호충 역을 맡은 이연걸이 끝까지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결과적으로 <동방불패>의 주인공 역을 맡은 두 배우 모두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