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문학 수프

인문학 수프

<인문학 수프 /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1-1.형제여 오라

작성일 : 2023.04.30 01:36

1-1. 형제여 오라

/양선규

 

 

살다 보면 그동안 알고 있던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단어 같은 것이 갑자기 새로운 느낌이나 의미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작은 세상 하나를 새로 얻게 된다. 그런 작지만 확실한만남을 자주 겪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감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자가 진정한 현자(賢者)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다. 이웃나라의 한 유명한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것을 소확행(小確幸)’이라고 불렀다.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그렇게 불렀다(村上春樹, ‘ランゲルハンス午後’). 사전을 찾아보니 이와 유사한 뜻의 단어로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 같은 것들이 있다. 그만큼 널리 공유되고 있는 삶의 지혜다. 엉뚱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소확행은 중국 은나라의 시조인 성탕(成湯) 임금이 반명(盤銘, 세숫대야에 새겨놓은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로 새로워지기를 노력함)의 의미가 현대적으로 구현된 것이라 보고 싶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거창한 한 소식에 목을 매고 사는 것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새로운 느낌이나 의미들을 꾸준히 축적하는 것이 곧 내 삶을 날로 새롭게 향상시키는 첩경이 되고, 나아가서 내가 속한 공동체의 평안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 되면 저절로 준() 지상낙원이 되지 않겠나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고.

십여 년 전쯤 형제라는 단어에 꽂힌 적이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던 중이었다.

 

다시 물고기가 돌기 시작했고 노인은 거의 물고기를 잡을 뻔했다. 그러나 또 물고기는 자세를 바로잡고 유유히 헤엄쳐 나가 버렸다.

네가 나를 죽이는구나, 물고기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나는 일찍이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위엄이 있는 물고기를 본 적이 없어. 그래서 네가 나를 죽인다고 해도 조금도 서운할 것 같지가 않구나. 형제여, , 어서 와서 나를 죽여라, 이제 누가 누구를 죽이건 상관없다.

머릿속이 혼미해지고 있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머리를 좀 식혀야 해, 끝까지 남자답게 고통을 견디도록 온갖 지혜를 모으거나 저 물고기처럼 고통을 견뎌야 해.”

 

형제라는 단어가 누가 누구를 죽이건 상관없다에 연결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말이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위엄이 있는영혼에 수여하는 작위(爵位, 벼슬이나 지위)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중에 조폭영화 신세계를 보고 그 의미를 다시 확인했는데 장청(황정민)이 이자성(이정재)에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선택해라라고 당부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동료이자 의형제인 이자성이 언더커버인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거두지 않는 장청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고귀한 영혼의 혈통을 나눈 형제들끼리는 누가 누구를 죽이건 상관없다는 늙은 어부의 말이 오랜 동안 내 주변을 맴돌았다. 모르긴 해도 내 영혼의 세숫대야에 그 말이 담긴 이후로는 내 얼굴에 묻은 잡티 하나쯤은 더 씻겨나갔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한 평생 살아오면서 숱한 형제들을 만난다. 물론 대개는 진짜가 아니다. <노인과 바다> 식으로 말한다면 청새치 형제를 가장한 상어들도 많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망망대해에서 형제를 만난 늙은 어부처럼 인생길 어디서든 진짜 형제를 만날 것을 믿는다.

인생의 형제들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고등학교 시절은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현재까지의 내 인생은 이미 그 시절에 모두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정적인 방향전환이 되는 '거꾸로 가는 결정'을 다섯 번 했다. 첫째는 고등학교 진학이다. 모두가 가라는 학교에 안 가고 절대로 가면 안 된다는 학교로 갔다.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형의 심정을 이해해 다오. 너는 아버지 곁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기를 바란다라고 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형이 적극적으로 말렸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그 학교에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이런저런 이유로(나중에 따로 적을 작정이다) 결국 학교를 못갈 입장이 되어 거진 포기했다가 천재일우로 신설 종친회 장학금을 얻어 진학했다. 둘째는 잘 하던 공부를 집어치운 일이다. 1학년 때 반에서 일, 이등을 다투다가 2학년 올라가면서 갑자기 노는 일로 접어들었다(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그 결과로 일류대학을 포기하고 이류대학으로 가서 소설가가 되었다. 셋째는 생략한다(상대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종합대학에서 교육대학으로 옮긴 일이다. 그대만 해도 교육대학이 2년제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을 때였다. 무언가 견딜 수 없는 속사정이 있어서 학교를 옮기려고 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심을 많이 받았다. 남의 시선을 무시하고 무엇이 내게 편하고 이득인가만 생각했다. 그 결과 행동의 자유를 좀더 확보해서 학문과 검도를 병행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다섯째도 생략한다(역시 상대가 있는데 입에 올리기도 싫다). 무난한 길이 있었는데 무난하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몇 년간 어려움이 있었지만 버틸 자신이 있었다. 어쨌든 그 역선택의 결과로 많은 보상을 받고 있다. 특히 늘그막에 글쓰기 신이 강림해서 그 이후로 책을 열두 권씩이나 펴냈다. 지금도 이런 글을 심심찮게 쓰면서 용돈을 벌고 있다.

내가 역선택을 할 때는 항상 10~20년 뒤를 생각했다. 물론 첫째 기준은 나에게 맞는 길이 될 수 있는가였다. 돈도 벌 수 있고 재미도 있는 길인가를 가장 먼저 고려했다. 두 번째는 형제들의 시선이었다. 형제들이 보기에 내 신세가 형편없는 것이 되지 않기를 염원했다. 현재까지는 형제들의 시선이 우호적이다. 적어도 누구도 나에 관해 비루하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노력했다(유퀴즈에 나온 김성근 감독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40년 교직생활을 하면서 한 번씩 후배나 제자에게 장래의 선택에 대해서 조언을 할 때가 있다. 듣는 친구도 있고 안 듣는 친구도 있다. 안 듣는 친구들은 늘 목전의 이해관계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김성근 감독과 8살 때 광고 촬영을 같이 했던 어린 아이가("할아버지 야구 잘해요?"라고 묻던 아이다) 스무살에 프로야구에 투수로 입단을 하게 되었다고 해서 유재석의 유퀴즈에서 이런저런 스토리텔링과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 애는 야구 하면 되겠는데?”라는 김감독의 말 한 마디가 그 아이의 인생을 결정지었다고 한다. 계시는 그런 식으로 온다. 스스로 계시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자들의 한 마디는 그렇게 누구에게는 인생을 결정짓는 계시가 되기도 한다. 요즘 코로나로 접었던 검도교실을 수 년만에 다시 열게 되어 주위의 (검도를 같이 하던) 젊은 후배 제자들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네 사범님, 그렇지 않아도 연락 한 번 드릴려고 했습니다라고 답하는 친구도 있고 이것저것 정리할 게 좀 있어서 (지금은 곤란하고)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라는 친구도 있다. 정리는 검도를 하면서 같이 해도 될 터인데 그렇게 같이 할 시간을 뒤로 미루는 친구들에게는 약간의 섭섭한 감정이 인다. 내가 평생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철들고 검도에 매진한 일이다. 인생살이 그 어떤 국면에서도 모범이 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서 유일하게 배운 것이 검도다. 내겐 첫 계시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계시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기쁜 일인지, 자기에게 찾아온 '선택받은 계시'를 몰라보는 어린 후배나 제자들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공자님도 썩은 나무에는 글자를 새기지 못한다”(朽木 不可彫也, 논어공야장)라고 하셨다. 다 타고난 팔자대로 살 일이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