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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평전> 2.<꽃>의 시인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

작성일 : 2023.04.16 03:31 수정일 : 2023.04.17 09:46

<김춘수 평전> (2)

 

<>의 시인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

 

영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기념되지 못하고 있는 동호동 61번지 생가 말고는 김춘수 시인을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여럿 있다. 그것을 건립 혹은 제정된 순서대로 나열하면 김 시인의 생가 근처 동호동의 <> 김춘수 육필시비(20071129일 건립), 봉평동 <대여 김춘수 시인 유품 전시관>(2008328일 개관), 항남동 오거리 김춘수 전신 조각상(2010614일 건립) 등과 그리고 김춘수시문학상 시상(2010101일 제정)이 그것들이다.

김춘수 시인은 청마문학회(청마4주기 1971년에 발족, 초대회장 박종우,<1971-1976> 2대회장 이석<1976-2000> 3대 회장<2000-문덕수)와 통영시(당시 시장 고동주)가 제정한 청마문학상 제1회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며, 2000214일에는 청마의 생가복원 및 청마문학관 개관식에 맞추어 통영시민문회회관 대강당에서 그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그 뒤 2(2001,수상자;김윤성 시인,) 3(2002,조영서 시인), 4(2003,서우승 극작가), 5(2004.허만하 시인) 등의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고향 통영 나들이를 자주 하였다.

그러다가 200484일 분당 자택에서 가슴이 결린다면서 병원에 다녀온 후 미음 한 숟갈을 드시다가 기도폐색으로 분당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여 무의식 상태에서 투병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과가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자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자들과 시인들, 그리고 고향 통영 사람들과 의 시인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쾌유를 기원하며 가슴을 애태웠지만 1129일 영면하게 된다. 그 때부터 121일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 사모님 곁으로 떠나기까지 서울 삼성병원 영안실에 가서 문상 못하는 통영 시민들과 통영문인들을 위하여 통영시민문화회관 남망갤러리에 분양소가 차려졌다. 이렇게 김춘수 시인은 만년에 통영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통영예술의 향기><통영문인협회> 회원들은 해마다 김 시인의 서거일 1129일에는 추모제도 가진다.

김춘수 시인이 작고한 2004년은 어업도시 통영을 문화도시 특히 유명예술가의 유적과 기념관과 문학상과 축제 등이 많은 도시로 변모시킨 별칭 문화시장이라는 진의장 통영시장(1945- ,민선3<5> 2003.11.1.- 민선4<6>2010.6.25.)의 초기였다. 그래서 관 주도의 문화 프로젝트들이 많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렇지만 김춘수 시인의 추모 열기는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대표작이자 국민 애송시 <> 시비를 김 시인의 3주기인 20071129일 세우자는 시민운동이 발의된 것이다. 이러한 시민운동은 그 당시 문화담당 공무원이던 김순철 수필가의 발의로 시작되었다. ‘시비라는 점에서 꽃집 경영자들과 문인단체를 찾았으나 뜻을 한데 모으는 게 어려워지자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약칭 꽃과 의미)>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

20078월 첫 발기인의 명단과 나이 그리고 담당 영역을 가나다 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김명순(당시 나이 40, 꽃집운영, 재무), 김순철(48,시청 문화담당 공무원, 수필가. 기획 및 행정사무), 김영대(52,건축공무원, 음악애호가), 박우권(48,공간 디자이너, 한산대첩제 디자인 감독, 시비 디자인, 홍보, 총무), 유용문(44,통영오강대 전수자, 문화운동가), 이주익(48,둥원중 국어교사, 교내 섹스폰 합주단 지도교사, 야외공연담당), 이지연(47, 뒷날 시의원 지냄, 회장), 최원식(30, 한산대첩 기획과장, 간사), 허도한(48, 문화운동가, 섭외) 등이다. 이들은 200798일 지역신문인<한산신문><우리는 김춘수의 시비를 세우고 싶습니다>라는 홍보성 취지문을 게재하고, 매주 토,일요일 통영항(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야외음악회를 열면서 꽃 한송이(일금1만원) 모금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음악회는 지역 뮤지선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고 <한산신문>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간혹 진의장 시장이 지나다가 시 한 수, 노래 한 곡을 열창하기도 하였다. 한 번은 시장실에 관계자가 불려가니 봉투에 꽃 30 송이 액수가 들어 있어 너무 많아 열 송이만 받아 왔다고 한다.

이렇게 <>의 시인 김춘수를 사랑하는 많은 통영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2개월 만에 450여명의 1,504여 송이 즉 15,046,000원 액수가 모금되어 시비 제작경비가 충분하게 모였다. 이러한 통영시민들의 아름다운 운동에 동참하는 뜻에서 김 시인의 3남이자 5남매의 막내인 김용삼(1952-2016, 조각가, 이태리 유학)씨가 투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유족을 대표해서 꽃 200 송이 즉 2,000,000원을 보태기도 하였다. 20071129일 항남동 네거리 현장에서 유족들과 전국의 문인들과 동참한 시민들이 모여 제막식을 올렸다. <> 시비 전면에는 시 의 전문이 김춘수 시인의 자필로 새겨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김 시인의 고향 후배(통영시 욕지도 출신)이자 한국일보 주필을 지낸 김성우(1934-) 원로 언론인이 김 시인으로부터 선물 받아 보관하고 있던 김 시인 친필 액자를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진 뜻깊은 일이었다.

김성우 씨는 시낭송의 대가이다. 1987111일 시의 날 행사에서 한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가 공동 추대한 대한민국 명예시인 1호이며 시낭송교실(재능교육, 2016)이라는 저서도 발간하였다. 한국일보 재직할 때에 <시인만세>라는 전국적으로 순회하는 시운동을 주재하기도 하였으며 고향 욕지도에는 그의 기념물이 조성되어 있다. 시비 뒷면에는 기금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시비는 지금은 김 시인의 생가 근처 남망산 입구 쌈지공원(‘시비 쌈지공원으로 불림)으로 이설되어 있는데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시비가 세워진 항남동 네거리는 초정 김상옥 시인의 생가 초입이었는데 2009년 경 이 일대가 <초정거리>로 제정되면서 항남동 오거리 자투리 공원에 김춘수 시인 전신 동상이 건립(2010.6.14.)되고 시비 자리에는 김상옥 시인의 좌상이 세워지는 등 기념물 재배치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로 2011527일 통영시청 관계자가 이설하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 이 시비를 세운 주체인 민간단체(당시의 명칭은 통영예술의 향기’)측과 소통이 없이 행정당국의 일방적 결행으로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양측이 서로 양보하여 이설 장소가 남망산 공원 입구이고, 김 시인의 생가와 가까워 앞으로 생가 자리에 문학관이 건립될 경우 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201171<통영문학제> 개막일에 이설 행사를 하였다.

<‘시비 제막>은 통영의 순수한 민간 주도 행사로는 처음이자 전국에서 드문 일이라 40여 언론에 화제가 되었고, 아직까지 전국의 관심 있는 지자체들이 민간주도 문화운동의 모범으로 문의해 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비를 세운 주체인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2006211일 그 당시 친일 시비에 휘말려 있던 청마 유치환 시인을 지키기 위하여 발족한 <청마를 지키는 사람들>2009213일 전격적으로 통합하여 <통영문화예술인기념사업회-통영예술의 향기>로 발전적으로 전환하게 된다. 지금은 디자인 전문가 박우권 씨가 회장을 맡고 있고 그들이 기념하는 예술인은 김춘수 시인 외에 청마 유치환 시인, 음악가 윤이상, 정윤주, 시조시인 김상옥, 소설가 김용익, 극작가 주평 등이다. 발기인 가운데 허도환 씨는 2017년 별세하여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나게 한다.

이 모임의 결실은 물론 김춘수, 유치환 시인과 윤이상 작곡가의 통영 시민의 사랑과 전 국민의 인기와도 관계가 있다. 이들을 선양함으로써 통영을 문화도시로 탈바꿈 시켜 문학과 음악 등 예술을 사랑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통영을 찾아오게 하는 관광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영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품격 있는 사랑과 진의장 문화시장 재임 8년 동안의 열정적 문화행정도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봉평동 해변가에 마련되어 있는 <대여김춘수선생유품전시관>의 설립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시비 건립이 민간 주도로 시행된 데에 비해 유품기념관 설립은 통영시청 즉 관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이 20041129일 돌아가시자 통영 시민들과 문인들이 분양소를 통영에 설치하는 관심을 보이자 문화시장인 진의장 시장으로서도 김춘수 시인 기념관을 짓는데 열정을 보였고 그 장소는 동호동 61번지 그의 생가가 검토되면서, 그 당시의 생가 소유주들과 접촉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춘수 시인과 연고가 있는 마산이나 대구 등지에서 선점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통영시청 문화정책 담당자와 거주인들 사이에 여러 행정 절차를 거쳐 접촉하는 한편, 유족들과도 유품 인수절차를 의논하였다. 주로 삼남 김용삼 조각가가 의논 당사자였다. 유족들도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생가를 매입해 기념관을 짓는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데에 합의하게 되었다. 2006722일 김용삼 조각가와 통영 출신이며 김 조각가 윗 동서인 김호 전 국가대표축구감독이 유족 대표로 통영시와 통영문인협회 관계자가 만나 선친의 생전 뜻도 그렇고 유족인 우리도 아버지 유품이 당연히 고향 통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영시가 원하면 모든 유품을 기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2006818<한산신문>에 김영화 기자가 보도하고 있다.

그 당시 유품은 분당 김용삼 조각가 집과 큰 따님 김영희 여사가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가 매입은 거주자의 터무니없는 가격요구로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3주기인 20071129<꽃 시비 건립 운동>이 통영 시민들에 의하여 순조롭게 진행되자 가족들이 감동하여 통영시청에 유품을 가져가라고 연락을 하였다. 1113일 일차적으로 4톤 트럭 한 대분의 유품을 인수하였다. 생가 구입은 답보하였지만 통영시에서는 봉평동 현재의 유품전시관(구 한려해상국립공원동부 사무소, 3층에는 예비군 사무실이 있었음)을 생가를 구입해 기념관을 짓기 전까지 임시 전시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있었다. 20071213일 유족들이 기증한 유품이 통영에 모두 도착하였다.

중요 유품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육필 원고 126, 유명 서예가가 시인의 시 구절를 쓴 8폭 병풍, 10폭 산수화 병풍 2, , 문방사우, 통영 투석장과 침대를 포함한 가구류, 필기구, 안경, 도장, 훈장 등 330, 김 시인의 생전의 멋스러운 옷차림을 반영한 의류 76, 수필집과 사전류를 포함한 서적 550점 등이었다.

통영시는 서둘러 유품전시관 건물 4층을 2천여만원의 예산으로 리모델링해 마련하고 2008323일 개관하였다. 막상 서둘러 개관하고 보니 많은 유품에 비해 전시공간이 좁고 4층이라 오르내리기 불편하다는 통영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건물 1,2층을 예산 1억으로 리모델링하여 20095월 재개관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어디까지나 임시 전시관이다. 오랫동안 통영 문화행정에 종사한 김순철 수필가의 저서 통영 르네상스를 꿈꾸다(2014,도서출판 경남)의 글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이 책은 <2015년 세종문학나눔> 도서로 채택되어 전국의 도서관에 보급되었다.

 

말 그대로 이곳은 시인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임시 유품전시관일 뿐이다. 앞으로 시인이 나고 자란 옛집을 구입하여 기념관으로 꾸미겠다는 약속은 유효하다. 지금도 유족들은 통영시가 아버지의 생가를 구입하여 기념관으로 조성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건물주 또한 마음이 바뀌어 통영시에 매각할 의사가 있다하니 이 약속이 오래지 않아 이루어지라라 믿는다.(김순철 통영 르네상스를 꿈꾸다P.70)

 

그리고 김순철 수필가의 이 책 말고 통영의 문화도시로 다시 태어나 문화관광의 욕구를 채워줄 공간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학술적으로 접근한 진금주 박사의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학위 논문 장소마케팅을 위한 통영시 예술인 기념공간의 조성과정(201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역시 소중한 저작물이다. 필자의 통영 탐사는 이 두 사람의 저작물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김춘수 시인은 앞에서 살펴본 많은 통영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만년에 김춘수 시인을 고향 통영에 다시 집착하게 만든 사람은 그가 유치원 원아시절 결혼식 화동으로 만난 청마 유치환 시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 2000년 제1회 청마문학상 수상이라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김 시인은 고향 통영을 자주 찾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대여 김춘수 시인과 청마 유치환 시인의인연의 끈은 정말 질기기도 하다고 확신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탐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