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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 33. 이충기 2

작성일 : 2026.05.17 02:35

부산의 시인들

 

33. 이충기 2

 

<장마끝의 눈부심을 주체하지 못해/바람마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조용히 누워있네//눈으로 가을의 희망을 말하기엔/결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자리/말없이 누워 있는/ 눈물로 도배한 나의 좁은 방//바람 한 줄기 깨어나서/햇빛을 거느리고 불어 와/둔중한 삶의 무게를 드러내면//-/찬란하게 봉우리 터뜨리는/희망의 꽃//감추어 두었던/주홍빛 기다림의 열매를/열정적으로 내보이는/생명의 나무>(이충기, 기다리는 나무전문)

이충기의 기다리는 나무는 많은 독자들을 울렸다. 시집을 읽은 많은 독자에게 이충기 시인이 준 것은 삶의 희망이었다. 너무 힘든 삶이지만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당위가 그 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10만여 권의 시집이 팔렸다. 많은 언론과 방송에서 이충기 시인을 찾았다. 그 언론과 방송을 본 사람들 중에는 출판사에 연락해 시집을 사 가는 독자도 있었고, 직접 집으로 찾아와 위로하고 격려금을 주고 가기도 했다. 어느 여성잡지에 이충기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를 본 경북 봉화의 어느 처녀는 자기가 이충기와 결혼해서 돌보아 주겠다고 편지를 했다. 이 여성은 그 여성지에서 수필 공모로 당선된 경력까지 있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한창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날 필자와 최원준 시인 그리고 이시인이 봉화를 방문했다. 그런데 그 여성도 폐에 심한 문제가 있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참 괜찮은 여성이었는데 여러 사정상 이충기 시인을 돌볼 수 없는 처지란 걸 알고 우리 모두는 안타까워했다. 둘은 한 방에서 같이 밤을 보냈는데 밤새도록 껴안고 울기만 했다는 이충기 말에 우리도 눈시울을 붉혔다.

경남 사천의 어느 여자에게서도 편지가 왔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는데 이충기를 자신의 집에서 돌보아 주겠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의 첫 말이 세상 살기가 싫었는데 이충기님의 시집을 읽고 삶의 희망이 생겼다. 이렇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과 평생을 함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천 그 여성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15년을 동생 집에 얹혀 살면서 느낀 부담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사 가던 날 필자의 차에 몸을 의지하고 가면서 이충기는 만감이 교차하는지 눈을 계속 감고만 있었다. 필자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쓴 시 하나로 세상이 달라지니 그게 참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변하는 것, 사천에서 오래 버티어 볼려고 서로가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근 5년 만에 그곳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돈 문제로 충기와 동생이 결별하는 일까지 있었다. 가진 돈 모두 없애고 서로 사랑한다던 둘은 원망하는 마음만 갖고서 헤어지게 되었다.

세기말이었던 1999년 필자는 해운대에 조그마한 아파트 하나를 전세로 구하고 이충기 시인을 데려왔다. 생활비는 대학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조달하기로 하고 돌보미는 필자의 과 학생 중에서 자치하는 학생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이 해운대 그리고 덕천동 임대아파트까지 1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생활비는 친구들 때문에 걱정할 게 없었고. 돌보미 학생은 2년에 한 번 늘 교체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사정을 알고 서로 올려고 해 면접으로 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충기 집은 예대 문창과 학생들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매일 저녁 학생들이 놀러 오는데, 재미있는 놀이나 술파티 등으로 늘 북적거려 한 번씩 필자가 통제를 해야만 했다. 그 생활이 이충기에게는 즐거운 일이었고 그때 거주하던 학생들은 충기가 사망할 때까지 아들 역할을 충실히 하기도 했다.

마음이 안정되자 이충기 시인은 다시 시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나무, 사랑하는 사람에게에 이어 내 아픈 사랑을 위하여그리고 벽에 그려진 허수아비로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았다. 이충기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일반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더 아프고 더 아름다운 사랑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떠나라고 떠나라고/몇 번씩 말을 하려고 하지만/차마 입밖에 건넬수 없는 이 지독한 아픔을/다스리는 날이면/내 몸에 고통의 꽃이 돋아나는 것 같다>고 이충기 시인은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다. 언젠가는 서울에서 출판한 내 아픈 사랑을 위하여에 나오는 이충기의 시를 가수 조성모가 낭송하면서 이충기 아파트에서는 난리가 났다. TV 어느 프로그램에 명사들의 애송시 낭송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서 조성모가 이충기 시를 낭송한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상술을 발휘해 시집에 광고문구가 달린 날개를 달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그래서 얼마 뒤에는 종로서적 베스트 셀러에 뽑히기도 했다.

이충기 시인의 생활 중 제일 힘든 것은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이다. 소변은 자동으로 처리되게끔 장치가 되어 있는데 대변은 다른 사람이 일일이 빼주어야 한다. 동생 집에서는 동생이나 어린 조카가 그 일을 했고, 사천에서는 같이 사는 여성 몫이었다. 부산으로 온 뒤로는 같이 지내는 학생들이 즐겁게 그 일을 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 일을 제때에 하기 힘들기에 늘 문제가 있었는데 결국 방광암이 오고 말았다. 그 병으로 겨우 동생과는 화해했는데 파란 많았던 세상과는 하직하고 말았다. 이충기가 가고 난 뒤 2016년 부산교대 14기 졸업 40주년 기념 모임에서는 동기회 이름으로 필자가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조그마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20257월에는 극작가이면서 배우인 최지은 씨가 이충기 시집 내 아픈 사랑을 위하여를 읽고 그것을 극본으로 각색해 동숭무대소극장에서 성황리에 연극 공연을 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방금 보았다. 고마운 일이다. 충기가 그립다.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