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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근무 일본인이 기록한 등대이야기> 3.제3화 태평양 전쟁 종전 즈음에

작성일 : 2026.05.13 10:59

 

3화 태평양 전쟁 종전 즈음에

 

전 조선 총독부 송신국 해사과 근무 미우라 굉()(196210)

 

1941(소화 16) 조선 총독부 해사과에 봉임해서 현재 무학의 해상 보안학교 등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판본 씨 아래에서 종전까지 근무하고 그만둘 때는 해사과 직원 수명과 같이 판본씨 댁에 집결해 거기서부터 내지(일본)로 향했다.

 

815일 이후 저는(당시 총각이었음) 매일 출근해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먹고 뒹굴뒹굴하면서 하루를 불안하게 지내고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의 송신국 해사과가 1943년에는 철도국에 합병되어 용산으로 옮겨 종전이 된 것이다.

 

종전 후 한때 인근의 소학교에 해사과를 설치하고 거기에서 다시 종로의 빌딩으로 옮겼다.

 

그즈음에는 일본인의 수도 적어지고 전차를 타는 일본인은 거의 없고 경성역 앞 삼판 거리에서 하숙하고 있던 저는 종로로 매일 터벅터벅 걸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선미도 등대장(이름은 잊어버렸으나 조선인 이었음)이 계신다.

 

선미도 출장 시 연말까지는 귀환 예정의 출장이었다. 바다의 파도가 높아서 인천을 향하는 배가 오지 못하고 선미도에서 정월을 맞이하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병에 걸려 아직 바다가 위험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데리러 와 주셨던 선미도 등대장, 그리고 해사과의 여러분에게 많은 신세를 당시 신세를 진 분들께 감사드린다.

 

선미도 등대장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필시 조선 해사계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겠죠 ? (편집자: 한승철씨 1924년 옹도등대 보원 임용, 대한민국 교통부 초대 표지과장 역임),

 

종로에는 그 후 여러 번 가보았으나 그사이 철수 명령이 있어 경성을 떠났다. 히라이씨와는 본국에서 만나 뵌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미숙했던 저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

 

선광회에서 여러 선배가 활약하시는 것을 알고 대단히 기쁘다. 시모노세키의 이토씨, 모리오카의 와타나베씨에게 연락해 보려고 생각한다.

 

성진 등대와 운명을 같이한 등대장과 기무라씨, 여도 등대장 부인과 자녀분들의 외로운 사실을 알았다. 알지는 못하는 분들이지만 마음속으로 애도를 표한다. .

 

원본출처 일본 선광회보 / 발굴 및 번역 정세모(전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편집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 김민철(등대전공 공학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