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박하의 건설기행
작성일 : 2026.04.27 11:59
건설 기행 2
압록강 유람선에서 위화도 주택단지를 바라보다
*2025년 12월 말, 압록강 하구 단둥 여행기
박원호 시인/하우eng 부사장
압록강 하구 도시, 단둥과 신의주
신의주와 단둥, 뒤바뀐 운명(?)
지난해 12월 말, 이틀간 중국 단둥에 머물렀다. 5박 6일 랴오닝성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이곳은 내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는데, 이유인즉 압록강 유람선 위에서 강 건너편 신의주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1>은 그 유람선 갑판 위에서 찍은 압록강 양안의 풍경이다. 먼저 좌측 사진은 단둥인데, 건물과 건물 사이가 숨쉴 틈도 없이 빼곡하다. 갑갑하기 그지없다. 반면 우측 사진은 신의주인데 한결 여유롭다. 건물들 사이 간격은 넉넉하고, 그 틈새마다 한가롭게 나무가 서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높다란 굴뚝이다. 위풍당당하긴 한데, 연기는 나지 않는다. 발전소의 굴뚝인지 공장의 그것인지 모르지만,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이쯤 되면 단둥은 ‘우후죽순 드라마’의 주인공 같고, 신의주는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은퇴한 배우 같다. 신의주를 바라보다 보니, 문득 한 시구가 떠올랐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백석 시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의 앞부분이다. 물론 지금의 신의주가 1930년대 시인의 유랑과 그대로 겹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시 속의 ‘바람 세인 거리’를 연상시킨다. 정작 삶의 온기가 사그라져버린 스산한 풍경 말이다.
이 글은 오랫동안 내 눈으로 보고 싶던 곳, 비록 압록강 유람선 선상에서나마 눈에 불을 켜고 보았던 도시, 신의주에 관한 인상기이다. 같은 강, 양측 제방 위에 마주 보고 서있는 두 도시, 불과 50년 만에 운명이 역전된 상황, 또한 2024년 7월 말의 대홍수 이후 어떻게 변신했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
비교 항목 |
단둥시(丹東) |
신의주시 |
|
도시 인구 |
240만 명 (도심;94.7만명) |
33만 명(2008) |
|
주요 인프라 |
단둥-다롄고속도로 무역항(동강시) |
경의선 철도 평양(서울)-신의주 |
|
주요 산업 |
항만, 물류, 관광 |
유통, 경공업 (가공, 봉제) |
|
특징 |
동북 진흥·연해벨트 북중합작 특구 |
북중 교역의 관문, 대북 제재 민감 |
70년대 이전까지 단둥은 중국의 변방 도시로써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 이와 달리, 건너편 신의주는 1906년 경의선(서울-신의주) 개통과 함께 소위 역세권 도시였던 데다 수출입항의 배후 도시로 번영을 구가했다. 그랬던 두 도시가 지금은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위 사진에서 보듯, 2000년대 이후, 단둥은 즐비한 고층 건물이 숲을 이루었지만, 신의주는 둥그런 와플처럼 아니 우뚝 솟은 태양처럼 솟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별 특징이 없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표 1>에 의하면. 도시 규모가 완전히 역전된 것을 알 수 있다.
2025년 압록강 하구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건설 인프라 변화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왔다. 그 결과가 북한 관련 책, 『북한의 도시를 미리 가봅니다』 , 『평양의 변신, 평등의 도시에서 욕망의 도시로』을 포함한 5권을 발간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2025년 12월 현재, 계간지 「통일 코리아」에 ‘북한의 강과 도시’를 연재 중이다. 첫 회 주제인 ‘압록강 편‘에 이어 두만강, 대동강, 보통강, 합장강, 예성강까지 6편까지 연재한 바 있다.
첫 회인 ’압록강 편을 쓴 이후, 2024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대홍수가 발생했다. 피해 상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RFA 코리아 보도의 위성사진에는 신의주 비행장이 활주로에까지 흙탕물로 얼룩져 있었다. 비행장의 입지는 주변 지대보다 비교적 높은데도 불구하고, 활주로까지 잠겼으니 신의주 시내는 완전히 침수되었다는 뜻이다. 압록강 본류에만 수풍댐을 비롯하여 댐이 6개가 들어섰다는데 대홍수라니? 홍수 원인을 두고,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기에 직접 현장을 찾아가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압록강 단교와 유람선
‘단동에 어서오세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 앞에 나타난 글귀가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한글 간판은 도심 곳곳에 보였는데, 이곳이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일행은 랴오닝성의 성도, 선양에서 오전 8시 반에 전세버스로 출발하여 장장 네 시간 만에 이곳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한국계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단둥에는 그만큼 조선족들이 많고, 한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고 한다.
압록강 유람선을 타기 전에 40여 분 여유가 있었다. 지인 셋과 함께 서둘러 압록강 단교로 갔다. 압록강 단교는 한국전쟁 동안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지만, 2025년 12월 현재, 중국 측에서 관광 명소로 개발하여 입장료(30위안=한화 6,000원)를 받고 있다.
이 다리는 1905년경 경의선 개통 전에 준공되었기에 나이로 치면 무려 70세! 그런데도, 유지관리를 잘해서 튼튼해 보였다. <사진 3>에서 보듯이, 다리 상판은 본래 철도용 레일이 깔려 있었지만,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을 해놓았고, 양측에 난간이 붙어 있다. 단교 상류 쪽으로 나란히 조중우의교가 지나고 있는데, 이 교량을 통해 베이징(단둥)-평양행 열차가 운행 중이다.

▶태양아파트의 정체
건너편 신의주에 둥그런 ‘태양 아파트’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사진 3-1). 중앙에 둥그런 건물, 양쪽으로 상자형 건물이 호위하듯 대칭으로 서 있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둥그런 건물의 꼭대기에 ‘일심단결’이란 글자가 보인다. 층수를 헤아려보니 얼추 25층이다.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단에서 4분에 1지점의 세로축에 창이 없이 벽체가 들어간 걸 알 수 있다. 추측하건대, 양측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을 테고, 층마다 중간 복도가 나 있을 것이다. 그 근거로는 좌측 끝의 건물 벽체 두께가 있기 때문이다.
‘태양아파트’는 5년 전, 2020년 8월에 준공되었다. 당시 보도로는, ‘신의주시 관문동에 새로 일떠선 25층 고층 살림집에 새 집들이를 하는 날 온 도시가 명절처럼 흥성이었다. 과학자, 교육자들을 위한 새 집들이가 있었다.”-2020. 8. 4, 노동신문, 「시사주간」 재인용.
태양아파트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을 상징한다고 한다. 본래 한 도시의 건설 경기는 장기 경기 전망의 선행지표라고 한다. 즉, 5년 전, 신의주의 경제 전망은 상당히 희망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5년이 지난 지금, 태양아파트 외관은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꼭대기의 글씨 ’일심단결‘도 희미하기 짝이 없어, 밤에도 불이 켜진 세대가 거의 없었다. 그 이유가 뭘까? 추측하건대, 대홍수 때에 전기 시설이 침수된 이후 지금까지 보수를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유람선 선상에서
곧 이어 압록강 유람선을 탔다. <사진 4>에는 압록강 2호 관광 부두라고 적혀 있다. 이곳 말고 상류에 1호 관광 부두에 또 다른 유람선이 운항하고 있다. 1인당 60위안(한화 12,000원)으로 1시간 운항 노선은 상류 위화도까지 갔다가 제 자리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승객은 우리 일행이 전부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갑판에 못 올라가게 하는 게 아쉽기 그지없었다. 일행은 단지 1층 선실 뒤쪽으로 나와 선 채로 건너편 신의주 쪽을 바라보면서 사진 찍은 게 다였다.
오늘 이전에 유람선을 타고 북녘땅을 바라본 적은 두 번 있었다. 2015년 10월과 2025년 5월 말, 두만강 중류 투먼(도문)에 갔을 때 건너편 북한의 남양을 바라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점은 북녘땅은 영화 세트장처럼 조용하다. 단지 강변도로 위에는 경비병만 오갈 뿐이라는 점이다.

▶위화도 신축 주택단지 분석
유람선을 타고 십 분 남짓 상류로 거슬러 올가가면 하구의 조중우의교 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강둑을 따라 마치 열병식 하듯 3층~15층 규모의 주택들이 서 있다. 공식 명칭은 ’위화도 농촌문화주택단지(이하 주택단지)‘이고, 위화도에만 총 1만 5천 세대를 신축하여 2024년 12월 21일 준공했다고 한다.
연립주택 단지를 130일 만에 속도전으로 건설한 뒤, 주택단지 뒤쪽으로 온실 남새 기지를 건설했다고 한다. (단시간에 ’보여주기 쇼(?)‘로는 비닐하우스 설치만 한 게 없다). 자료 사진들을 통해 궁금한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첫째, 이들 7층 높이의 공동주택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을까?
<사진 5>의 주택단지 정면상으로 볼 때, 대칭의 박공지붕 아래 수직의 연속 창들은 계단실로 보인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면, 수직 창을 설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계 도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장담할 순 없다. 그런데 결정적인 게 바로 <사진 8>로써, 김정은 위원장이 연립주택의 실내를 구경하고, 이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둘째, 향후 홍수에 어떤 대비를 해 놓았을까?
2024년 7월 말, 압록강에는 지난 60년 만에 닥친 최악의 홍수였다. 당시 신의주 시내가 완전히 잠겼다고 한다. <사진 8>에 의하면, 평상시 신의주 강변의 건물들이 29일 사진에는 자치도 없이 사라진 걸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고무보트를 타고 침수 지역을 순시하는 장면도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았던 신의주 비행장까지 침수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진 5, 6>에 의하면, 위화도 외곽으로 제방을 쌓은 다음, 연립주택의 지층은 모두 필로티 구조를 함으로써 홍수위를 충분히 고려한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단둥은 왜 홍수 피해가 적었을까?
2024년 60년 만에 최대 홍수가 닥친 압록강변의 단둥과 신의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신의주는 도시 전역이 침수되었지만, 단둥은 홍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가 뭘까?
두 도시의 방재 인프라가 달랐다는 점이다. 단둥은 압록강의 제방도 높았을 뿐 아니라, 주택단지마다 수방벽을 설치해 놓았다. 즉, 건물 1층에 주차 공간인 필로티를 높인 다음, 외부에는 3m 높이의 수방벽이나 조립식 차수벽을 설치했다(사진 9).
넷째, 위화도 주택단지는 왜 인적이 없을까?
건물 외관의 세대별 베란다를 확대해 보면, 몇몇 세대에 살림살이 흔적이 보인다. 아마도 일부 세대만 입주한 것 같다. 또한 외부 간판들을 보면, ’도서관‘, ’정보기술 보급실‘(컴퓨터 교육장?), ’진료소‘ 등도 보인다. 이런 건물들을 보면, 위화도 주택단지가 일개 기숙사 규모가 아니라, 문화, 교육 시설까지 완비된 종합 단지라는 걸 알 수 있다.
준공 이후, 1년이 지난 2025년 12월인데도 입주민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 전기 및 상수도 시설 등이 완비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압록강 댐들과 홍수의 상관관계
2025년 12월 기준, 압록강 본류에는 수풍댐을 포함하여 모두 6개의 댐이 있다(사진 11 참조). 상류에서부터 운봉댐(1974년 준공), 림토댐(2019), 문악댐(2020), 위원댐(11990), 수풍댐(1944), 태평만댐이다. 본류가 아닌 지류에도 댐들이 여럿 있단다.
이렇게 댐들이 많은데도 왜 60년 만의 최대 홍수가 발생한 걸까? 첫째는 댐들끼리 정보 공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압록강 수계에 있는 모든 댐끼리 방류 정보를 공유한다면, 홍수는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국 측 댐 수역에 대규모 양어장 시설들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운봉댐, 수풍댐의 위성지도를 살펴보면, 양어장 시설들이 너무 많다. 이들 양어장의 물고기는 갑작스럽게 물을 방류하면 죽는다고 한다. 그러다 한계 시점에 이르러 갑자기 방류할 경우, 하류 댐들도 연쇄적으로 방류하게 마련이다. 때마침 만조 때와 겹칠 경우, 엄청난 홍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압록강 하구, 경제특구에 대한 상상
긴 호흡으로 보면, 역사는 돌고 돈다. 한때 계획했다가 돌발변수에 의해 중단된 것들은 되살아나기도 한다. 바라건대, ‘위화도와 황금평 개발 프로젝트’가 조만간 다시 소환될 날을 상상해 본다.
압록강 유람선 선상에서 열병식 하는 듯이 줄지어 늘어선 위화도 주택단지를 보면서 위화도의 운명을 다시 생각했다.
그 옛날의 조선 개국의 전기를 만든 ’위화도 회군(回軍)‘처럼 어쩌면 이번 위화도의 놀라운 변신이 북한의 운명을 바꾸고, 나아가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는 역사적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