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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 30. 한창국

작성일 : 2026.04.27 11:33

부산의 시인들

 

30. 한창국

 

필자가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부산 시내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은 그해 동아대 국문과 야간에 2학년으로 편입을 했다. 야간이라 조금은 생소한 분위기였는데 동기들 몇몇과 선배들이 모여 시 동아리를 만드는데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아무튼 국문과라서 그런 동아리가 필요하겠다 싶어 참여하게 되고 이후로는 누구보다 자주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때 회장이 한 학년 선배인 한창국 시인(1950-2003)이었다. 한시인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는데 고등학교는 서울서 다니기도 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걸걸했다. 말빨도 있고, 술도 잘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복싱대회도 나갔다면서 온갖 폼을 잡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창국 시인과의 인연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한참 후까지 이어졌다. 특히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두 가족이 함께 자녀들과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간혹 간수치가 많이 높아 고생한다는 것을 알고 늘 술조심하라고 말했던 것 같다. 간 때문에 학교를 몇 번 휴직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조금만 몸이 회복되면 또 술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별난 성격인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늘 불안한 한창국 시인이었다.

한창국 시인은 의리 있고 자기 희생적이고 화통한 사람이다. 남의 일을 돕는 데는 늘 앞장선다. 자기가 가진 거 아끼지 않고 남에게 내어주는 성격이다. 그런데 좀 별나다. 그 별난 성격 중 대표적인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비판하거나 무시할 경우 절대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늘 다툼이 일어난다. 필자도 몇 번 당했는데 이전 박철석 교수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괜히 말 한 번 잘못 전해 입장 곤란해진 사건 등이다. 박교수가 필자에게 요즈음 한창국 사람 많이 되었더라. 결혼 전에는 개망나니였는데.”라는 말을 한시인에게 좀 순화시켜 전했더니 사고가 나 버린 것이다. 박철석 교수가 한시인에게 된통 당하고 그 불똥은 필자에게 튀기도 했다. 앞에서 소개한 이야기이기에 여기서는 접어두자. 이후로는 한시인과 별로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서면 박정애 시인이 운영하는 주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가 부산에 온 일이 있었는데, 필자에게 전화가 와서 술 한잔하자는 거였다. 이전부터 좀 친한 사이라 1차로 저녁 겸 소주를 한잔하고 2차로 노래를 좋아하는 한 소설가가 노래방으로 가자기에 서면 그 주점으로 갔다. 재미있게 한잔하고 있는데 한승원 소설가가 왔다는 박정애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방에 있던 정형남 소설가와 한창국 시인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 그렇게 친절하게 대하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러자 한창국 시인이 한승원 소설가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다. 같은 성씨를 들먹이며 당신은 얼마나 유명하냐는 등 서로 거친 말을 하다 박정애 시인의 만류로 겨우 시비는 끝나고 우리는 바로 그곳을 나와 다른 술집으로 다시 갔다. 아무튼 한시인과의 사건은 그 외에도 몇 건 더 있었는데 주로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한시인의 작고 뒤 문인들이 모여 한시인 이야기를 하면 시비 걸고 싸운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의 거친 모습은 시에서도 드러난다.

<빈 창틀에 그림자마저 피칠한 바람이 덮쳐온다. 사라호로 씻겨진 갈매기 울음이 엊저녁부터 칼라비젼에 녹아 내리고, 바다는 등대를 기다리며 울고 있었다.>(칼라시대)

<내가 아는 나의 밤은 독주를 들이킨 살무사로 시인의 허기진 맥박에 자주 목매달고 질퍽이는 목소리로 서리처럼 죽어갔다.>(絶頂)

이 시에 대해 남송우 교수는 뒤틀리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전복적 자세를 보이며 그에 대응하는 몸짓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만큼 현실 부정적 이미지가 시에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상은 항상 멀리 있었고 현실은 제걸음을 치고 있었기에 시인이 하는 모든 행위들은 그런 부적응과 연관되어 진다. 한창국 시인은 전봉건 시인으로부터 부활,칼라시대등이 현대시학에 초회 추천되고 해운대 (1),(2)가 구상 시인으로부터 추천 완료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등단 이후 칼라시대, 꽃은 죽어도 꽃이다, 예수 목욕탕에 계시다, 멸치의 바다등의 시집을 펴내었는데 한편으로는 그의 시들이 앞의 지적과 달리 현실과 지역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이면서 호방한 언어가 특징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리고 카톨릭 교인으로서 한창국 시의 종교적 색체를 지적하는 평가도 있다.

대학 재학 시절 한창국 시인은 동아대 가정과 어느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다. 우리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고 종종 술자리에도 어울렸다. 그래서 졸업 후 둘은 결혼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어느 초등학교에 발령이 나서 갔더니 그 학교에 한시인의 부인이 교사로 있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한시인 집에서 가끔 만나곤 했다. 그러나 한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이후에는 그 부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 해운대에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그 아파트 엘리베이트에서 한시인 부인을 만났다. 아파트 한 라인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참 인연이 깊다 생각했다. 두 집이 벌써 20년 가까이 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오늘도 필자의 부인과 한시인 부인이 같이 운동을 하고 한시인 집에서 미나리 무침을 얻어 왔다. “형님, 형수님과 아이들은 잘 있으니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