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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 근무 일본인 등대원들의 이야기> Ep 13 등대 위문단의 귀환

작성일 : 2026.04.08 10:46

 

Ep 13 등대 위문단의 귀환

 

 

야모토 세이치시(山本 淸一)(전 목포신보 주간), 번역 정순종(전 등대장)

편집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김민철(등대 전공 공학박사)

 

 

중대한 사명을 완수하고 위문단 귀환

유달포(儒達浦 )에서 무사태평

섬에서 두 세번 버라이어터 쇼

 

하늘은 점차 험악해지고 있었지만 목포까지는 28마일로 약 4시간 거리이고 내해이므로 배가 흔들릴 걱정도 없어 일행은 매우 건강한 몸으로 목포 귀항을 기다렸다. 시하도 등대를 통과할 무렵, 목포 위문단의 희망에 따라 전체가 화려하게 장식된 광성호는 관현악단의 연주에 낯이 간지로운 듯 오후 4시 유달포 해수욕장 앞 바다에 닻을 내렸다.

 

마침 목포소학고 아동들이 수영하고 있었는데 일행의 도착을 알고서 만세, 만세바다를 뒤덮을 듯한 환호성을 울렸다. 또 목포 해사 출장소 소속의 운남호는 후나구시(船串) 기사 이하 다수의 직원을 태우고 마중을 나왔다. 목포에 상륙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판단, 운남호를 광성호에 바싹 붙이도록하여 운남호로 옮겨 타고 해수욕장으로 건너가, 어떤 사람은 헤엄을 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찻집에서 쉬기도 했다.

 

광성호는 긴 위문을 마치고 5시 목포에 귀항했다. 선상에서 바라보니 부두의 선창에는 아부라야 상공회의 이사, 아사미 조선 기선 지점장, 그리고 선항회(鮮航會) 간부들, 야마모토 주간 등 다수의 인사가 마중 나와 있었다. 일행은 하선하기 아쉬운 듯 모두 뒤쪽 갑판에 집합, 다케이 교수의 인사말과 기자의 답사가 있은후, 경성대 관현악단 단원들의 만세삼창과 이에 화답하듯 다케이 교수의 선창으로 목포 유지 및 목포 신보사 직원 만세삼창이 있었다.

 

경성대 일행이 하선하고 나서 목포 위문단은 2등 객실에 모여 가토 소장으로부터 정중한 인사를 받고 해산했다. 12일 목포를 출발, 5일 동안 일곱 군데의 등대를 방문, 많은 성과를 올린 위문단 일행의 여기서 순조롭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상으로 뜻깊은 등대 위문단의 활동을 대략 기술했다고 생각되므로 여기에서는 각 등대의 버라니어티 쇼를 총괄하는 뜻에서 두세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일행이 방문한 등대 대부분은 절해의 외딴섬에 위치하여 빗물을 음료수로 활용하고 있었지만, 등대 직원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음료수는 부족하지 않았다. 육지에 가뭄이 들 때에도 바다에는 소나기가 자주 내려 음료수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다고 한다.

 

또한 크게는 60만 촉광에서 작게는 4만 촉광까지의 등광(燈光)에 많은 철새들이 돌진하여 폐사하고 있는데 이렇게 폐사한 새의 숫자는 매년 수백, 수천 마리에 이르며, 등대 직원들의 밥상을 풍성하게 해준다고 한다.

 

칠발도에는 56월경에 무수한 칼새가 날아와서 둥지를 틀고 산란한다. 칼새라는 새는 제비와 비슷한 새는 아니며, 작은 비둘기 정도의 크기에 등과 날개에 짙은 회색, 배는 흰색의 털을 가진, 비교적 조그마한 새로 알은 먹을 수가 있어 등대에서는 주로 제과(製菓) 재료로 많이 쓴다고 한다.

 

칠발도는 섬 전체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흙을 거의 볼 수 없지만 다른 등대에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야채류를 재배하는 등 자급자족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료품은 광성호나 운남호가 매월 세 번 순회하면서 공급하고 있다.

 

기타 홍도, 소흑산도 등에는 참회 양목, 떡갈나무 등의 분재로 만들 멋진 나무들이 많다고 하는데 해마다 채취되어 목포 지역으로 반출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엽풍란은 거의 다 채집되어 버린 것이다.

 

또 그로테스크 100%인 살무사를 빼놓을 수 없다. 소흑산도, 어룡도 등에서는 5060마리의 살무사가 우글우글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이따금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오락 시설 면에서는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등대에도 라디오, 축음기는 비치되어 귀를 통하여 사회문화 분야 방송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으므로 큰 지장은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다만 등대지기의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인가!‘하고 질문하면 곧바로 통신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외부와의 연락이 얼마나 절실한가 엿볼 수 있다.

 

아무리 등대지기라 해도 악천후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특히 폭풍 등으로 바다가 거칠어져서 표지선인 광성호나 운남호가 등대에서 가까운 해역에 있으면서도 거센 파도 때문에 전마선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등대를 떠나야 할 때의 등대원은 낙심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악천후가 계속되어 표지선은 물론 인근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어지거나 하면, 등대원들은 신경쇠약이 되어 버린다. 심한 경우에 등대원끼리는 물론이고 부부간에도 아무런 말도 없이 망연자실, 살아 있는 유령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한다.

 

등대원의 자녀들이 취학연령에 이르면 대부분 본토의 고향으로 보내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또 평소 돈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축재한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불행하게도 병에 걸리면 치료비 때문에 순식간에 적금이 날아간다고 어느 등대원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많은 위문단이 들이닥쳐 비축해둔 식료품을 먹어 치운 폐를 끼친데 대하여 깊이 사과드리며, 등대 직원과 그 가족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하며, 이 원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