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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3.31 12:05
확신의 감옥, 질문을 잃은 사회
/윤일현
2400여 년 전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패배 후 깊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전쟁의 상처로 질서가 흔들리고 독재와 민주정이 교차하는 불안 속에서 사회는 표류했다. 이런 시대에는 늘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이 필요하다. 권력자들은 그 화살을 소크라테스에게 돌렸고, ‘청년 타락’을 죄목으로 독배를 강요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의 태도는 집단의 광기에 맞선 이성의 위대한 저항이었다. 그는 타협보다 사유를 포기한 삶의 공허를 자신의 생으로 증명했다. 깨달음은 단절이 아니라 양심을 향한 대화였으며, 자신을 묻는 치열한 내면의 응시였다. 타인의 확신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으로 머무는 용기, 그것이 그가 남긴 유산이다.
사유의 출발점은 ‘무지’의 자각이었다. 그는 지혜롭다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는 오만을 목격했다. 그 속에서 ‘무지의 자각’이라는 겸손의 원형을 세웠다. 오늘의 정치 풍경은 어떤가. 설득보다 공격이 앞서고 정책보다 진영이 우선된다. 공론장은 경박하고 요란하다. 목소리는 크지만, 의미는 가볍다. 상대의 말은 검토가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된다. 확신은 동력이지만, 성찰 없는 독단으로 변하는 순간 독이 된다. ‘나도 틀릴 수 있다’라는 인식이 없다면 정치는 대화가 아니라 전쟁으로 전락한다. 경청을 잃은 사회는 타협 대신 분열을 반복하며, 그 상처는 공동체 전체의 깊은 불신으로 번져 간다.
오늘의 사회도 다르지 않다. SNS의 에코 체임버 속에서 사람들은 확신을 강화하는 정보만 소비하며 신념의 요새를 쌓는다. 한국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입장은 정체성이 되었고, 다른 의견은 ‘차이’가 아니라 ‘적대’의 대상이 되었다. 짧은 문장은 깊은 생각을 밀어내고, 현실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된다. 경청은 패배로, 단정은 승리로 오해된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란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 정답이 아니라 ‘지적 수용성’이다. 확신이 배타로 굳어질 때 사회는 복원력을 잃고, 소통의 자리는 분노의 메아리로 채워진다.
그가 강조한 ‘사유의 근육’은 문답, 즉 산파술에서 길러진다. 기성세대는 이를 체제 위협으로 보았지만, 그것은 비판 없는 수용을 경계하는 실천이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질문을 잃어버린 사회로 가고 있다. 정해진 답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만 반복하고, 자신을 흔드는 근원적 질문은 회피한다. 성찰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문제다. 그 출발점은 질문이며, 질문은 곧 자유의 시작이다. 알고리즘의 벽을 깨고 낯선 목소리에 접속하는 용기가 바로 질문의 실천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말과 삶을 일치시킨 최후의 증명이었다. 그는 탈옥 대신 죽음을 택하며 지식과 행동의 합일을 보여주었다. 그의 확신은 타인을 누르는 흉기가 아니라 진리를 지키는 방패였다. 오늘의 사회에서 원칙은 이해관계 앞에 무너지고 신념은 손쉽게 소비된다. 단정적 확신이 커질수록 공동체의 자정 능력은 약해진다. 비판적 사고를 잃은 사회는 ‘확신의 동굴’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오직 자기 목소리의 메아리만 듣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청과 질문의 문화’다. 주장하기 전에 의심하고 단정하기 전에 귀 기울여야 한다. 상대를 이기는 토론이 아니라 서로의 무지를 확인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것은 하나의 태도다. 모른다고 말할 용기, 끝까지 듣는 인내, 말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의지다. 이 태도가 회복될 때 확신의 소음은 잦아든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다시 확신의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비판하는 그 확신의 얼굴이 혹시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나는 과연 알고 있는가.”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