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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25. 정대영 2

작성일 : 2026.03.23 08:13

부산의 시인들

 

25. 정대영 2

 

정대영 시인(1948-2006)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통영에서 지내고 다시 부산으로 와 학창 시절을 보낸다.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 국문과에 입학하는데 재학 중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정영태 시인 등과 교분을 쌓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밀양 밀성중학교를 시작으로 중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데 시에 대한 열정은 그칠 줄 몰라 78현대시학초회 추천으로 시인의 길로 접어든다. 그 이후의 삶은 전 장에서 밝힌 대로 시를 포기하고 장애인으로서 어려운 삶을 살게 되는데 다시 1994심상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의 길로 들어선다. 필자가 정시인의 시를 들고 심상의 박동교 교수를 만났을 때 박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활동하지 않았나요? 요즈음 본 시 중에서 드물게 좋은 시입니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시인이 되고 난 뒤부터 그의 생활은 좀 더 활력이 생겼다. 나들이도 자주 다니고 시인들 만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가 동행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아무튼 보람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한번은 시인들 몇 명이 모인다기에 한림에 있는 박병출 시인 집에 가게 되었다. 가보니 정일근, 최영철 등 아는 시인들도 많았다. 집 마당에서는 고기 판에 고기를 굽고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그때 정시인은 호주머니에 넣어둔 자신의 시 몇 편을 꺼내 대전에서 온 김백겸 시인에게 보여주었다. 김백겸 시인이 당시 잘나가는 시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시를 평가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정시인의 사정을 잘 모르던 김백겸 시인은 시를 대충 훑어보고는 쉬운 말로 요즈음 시 이렇게 안 씁니다. 시를 풀어서 쓰지, 이런 압축적인 시는 옛날식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 정시인은 고주망태가 되었고 다시는 시 안 쓴다고 절필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정시인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시는 압축적이어야 한다. 풀어 쓰면 산문이지 어떻게 시일 수 있느냐는 말로 달래고 다른 좋은 시인들의 시로 설명도 덧붙여 가며 그런대로 없던 일로 마무리되었다.

정대영 시인은 부산 시단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인들과의 만남도 잦아졌는데 대학 시절에 함께 동인 활동을 했던 시인부터 영도 남여상 교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 시인 등이 정시인의 집을 자주 방문하면서 늘 적막했던 정시인 집은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아마 가장 자주 방문했던 시인은 의사 정영태 시인이었을 것이다. 정영태 시인이 정대영 시인의 집에 가는 날은 필자도 거의 불려 가는 날이었다. 그런 와중에 정대영 시인은 꾸준히 시를 써서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하고 시집까지 연이어 출간하게 된다. 95황색 일기장에 이어 99목탄지그리고 2005년에는 不二門을 펴내는데 모두 그간 숨은 노력들의 결실을 보여준 대단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어느 평론가가 쓴 글에서는 이제 부산에서 시라면 정대영 시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고 말해 정시인을 고무시켰다. 어느 시집인가는 영광도서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뽑히면서 그 기념으로 몇 명이서 동해안 횟집 이벤트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우고 지운다/지우고 지운다/그려 내기 위해서/지우고 지운다/햇살의 이동이 차단된 방에서/손날을 세워 지운다/찹쌀 지우개로 지운다/지워지면서/지워지면서 살아나는/목탄지 위의 사람/그를 지운다>(목탄지전문)

이 시에 대해 황량미 시인은 햇살의 이동이 차단된 그의 방은, 그러나 계속 지우고 계속 그리는 손날이 존재하므로, 자신에의 혐오와 연민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흔들림 없는 자화상을 획득한 윤동주의 파아란 우물과도 같다.’고 평하면서 이런 편지를 남긴다. “형극의 산고를 겪어 내셨으니 시인에게 이 겨울은 충만한 휴식의 계절이 되겠지요. 이 시집의 깊은 목소리가 고뇌하는 영혼들의 하아프를 튕기어 아름다운 탄주로 울려 퍼지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햇살 차단된 방에서 정시인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와 바둑이다. 바둑은 필자와 두기도 하지만 혼자서 두기도 한다. 한 번은 출장비를 지불하고 프로 기사를 불러 대국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바둑 두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마지막 시집인 不二門에는 이런 제목의 바둑 연시를 쓰기도 했다. ‘바둑이 뭣고?, 만방, 만패불청, 맞수, 빈삼각, 패망선, 귀살이, 노림수, , 버림돌 등’, 바둑에서 흔히 쓰는 용어들이다. 그렇게 시를 쓰고 바둑을 두다가 이제 그의 건강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마침 필자가 오후 시간 내내 정시인과 바둑을 두다 집으로 갔는데 다음 날 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어제 너무 오래 바둑을 두었나, 필자의 책임 같았다. 병원에 갔더니 의식불명이었다. 그렇게 정대영 시인은 파란 많은 한 세상을 접었다. 세상을 불청하고 싶다던 그가 그립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잔인한 사람/불청이면 불청이라 말이나 해 주지/두 번 두라니/쟤도 참 많이 당해 본 말솜씨다/하늘에 구름 한 장 떠 있다/한가로워 보인다/패 한 번 잘못받아/오늘은 바둑이 박살났구나/세상을 불청하고 싶다/소주를 마신다> (정대영, 만패불청전문)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