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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에 보는 등대 역사

<광복80주년에 보는 일본이 기록한 등대역사>27. 소청도등대

작성일 : 2026.03.23 08:02

 

27. 소청도등대

 

김민철 (공학박사, 등대전공),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신설의 이유

 

본 등대의 위치는 한국 서안 황해도에 속한 본도의 남방에 돌출된 소공등각 부근 대청군도 중의 한 소도로서, 인천항로 이북에서 대동강 및 압록강과 같이 북청(청나라 북측)지방에 항행하는 선박의 주요항로에 당면하며, 본도 부근의 연안에는 수많은 암초와 도서가 산제하고 나아가서 조류가 급격하며 동시에 하기에는 해무가 많고 평시에도 항해자가 곤란을 감지하는 지점이므로 여기에 등대 및 무신호를 설치하고 이 연해를 통과하는 함선의 항로를 시도하기 위하여 본 등대는 메이지 39(1906)도부터 40년도(1907)에 걸쳐 2개년의 계속 사업으로서 시행하기로 결정되었으며, 전년(1906)에 부지의 개간 공사에 착수하고 준공하고, 다시 본년에서 등대 및 무경호, 기타 부속사를 건설하고저 하여 본년 329일부터 공사에 착수하고, 동년 1217일을 기하여 준공을 전부 함.

 

설계의 개요.

 

본 등대는 섬의 남서각에 위치하며 해발 235(71m)의 지점에 정지공사를 시공하고 176평의 면적을 구획하고 등대 및 무경호사의 부지에 충당하였다. 그 후방 약 40(72m) 위치에 222평의 면적을 확보하여 부속 관사 및 창고를 건설하였다. 두 곳 모두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표면에는 약간의 잡초를 가지고 덮힘 것에 불과하며 그래서 이 개간에는 다소의 곤란을 감지함.

또 부지의 주위에는 토방제로 모두 둘러놓아 바람막이로 하고 토파는 높이는 4(1.2m), 윗부분의 폭은 2(60cm)이다. 기초의 폭은 35(1m)이며 네 곳에 콘크리트조 문을 설치하였다. 구내의 공터는 전부 자갈을 깔았다. 또한 해안 제방의 폭은 8(2.4m), 뒷 폭은 2(0.6m), 기초의 폭은 35(1m) 4개소에는 콘크리트조의 문을 설치하고 구내 공지에는 모두 사리를 깔고 또 해안 부처 이 지점에 달하기 위해서는 폭 6(1.8m) 길이 217(394m)의 도로를 설치하고 해안에는 조석적돌제방 8척 길이 27(12m)을 축조 화물의 양륙에 편리하게 하였다.

 

이 돌제방은 누누이 파도 때문에 그 일부가 파손되었다고하나 그때마다 이것을 수선한 결과 오늘 날 아직 다대한 용도가 되어있으며 또한 음료에 공급하기 위하여 산 허리에 지름 3.5(1m) 깊이 15(4.5m)으로 움돌을 설치 주위에 조적식으로 하고 수심 10(3m)을 유지하고 또한 예비용으로 돌 제방에서 300(535m)의 위치에 지름 3(90cm)의 수조를 설치하고, 이 수조와 도로를 접촉하기 해안에 연하여 폭 2(60cm)의 작은 길을 통하게 하였다.

 

등탑(燈塔)은 콘크리트 조로서 원형으로 하고 외면은 세석회를 가지고 백색으로 도장하고 높이 22(6.6m). 내경 9(2.7m)이다. 외경 기초부에 있어서는 15, 두부에 있었서는 13.5척이며, 내부에는 2층으로 되어있고 각 창을 설치하고 올림식의 유리창문을 박아넣고 또 철제 나선장식 계단을 가설하여 승강에 편리하게 탑 들보 및 판자부침은 모두 목재를 사용하고 제1층에 입구를 설치하고 제2층에는 벽장을 비치하고 탑 머리의 중앙에는 등기를 거치 하였다.

 

동벽(지름은 810촌이며 높이는 76)은 주철재로서 내부는 판목판을 붙이고 2개의 문짝이 있고 등실 외에 출입하게 되어 있고 이것을 탑 머리에 거치하는데 기초 볼트 지름 1인치 12본을 쓰고 등롱 (지름 88, 높이 6)은 놋쇄골주에 유리를 붙이고 동벽상에 취부하고 그 일부에 등화를 폐쇄한 차단판에는 백색 페인트를 가지고 도장하고 지붕은 철판으로 붙이고 등화에서 생기는 매연이 잘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등실의 옥상에는 피뢰침을 비치하고 또 등롱의 외부에는 철사다리를 가설하고 옥상의 승강용으로 공여함

 

등기는 제3등 백색 4연섬 만의 절사파리(프레넬렌즈)를 장치하고 석유등으로서 만조 평균 수면 위에서 등불까지의 높이는 268(81m)이며, 광달거리는 23해리로서 명호는 남 7825분에서 서북 및 동을 거쳐 3920분에 이르는 24215분 사이를 조사(照射)한다.

 

회전 기계의 운전은 중추의 수하에 따라 중추는 탑의 내부에 뚫어놓은 반원형의 중공을 승강함.

 

이원퇴식소(3세대 거주)는 목조 평가 기둥 사이 거리는 7, 들보사이는 42분으로서 기초는 암반 상에 콘크리트로 포석에 대응하고 파 묻힌 '볼트'를 가지고 토대를 조여 붙이고 지붕은 서양식 소가 조립방식형으로 만들고 뒤판에는 삼나무 8분 판자를 달아 붙이고 그 위에 아연 평판을 이용하여 기와 막대기를 부착하고 물받이통을 가설하고 외부에는 갑옷미들 판자를 붙이고 백색 페인트 도장으로서 기와를 얹었으며 서양 소가옥 형태이다.

 

천장판은 삼나무 판자를 박았으며 그 위에 아연 평판을 덮고 진흙을 발랐다. 외부는 판자를 대고 백색 페인트칠로 3호 주거로 구획하고 각 주방에는 연와조 아궁이 및 연통, 설거지대 선반 등을 붙이고 전면 후면에는 남하를 설치하고 바닥은 콘크리트로 하고 흡수 홈을 붙이고 전면 밑 한쪽에는 양변소를 설치하고 도기제 변기함 및 콘크리트로 유수대를 부설, 각 거실 양측 2호는 6첩과 2첩 방으로 구분되고 중앙에는 6첩과 4첩반 방으로서 모두 각 실에는 미닫이 다락을 설치하고, 가운데 선반을 달고 외부장 및 출입구에는 유리창문, 비창문 내부에는 창호지 바른 미닫이 및 판자 창문을 박아 넣고 방 내벽은 목습으로 하고 백색 옻나무 칠하고 각 거실에는 붉은 다색으로 마무리하며 마루, 부엌 및 변소 등은 높이 3척의 판목판을 세로로 붙이고, 윗 부분은 목습벽으로서 구조는 모두 화풍으로서 정면에 출입구 및 현관을 갖추고 기타 뒤쪽 및 창등은 비막이 덮기 등을 설치함.

 

퇴식소(2인용)는 목조 평가건 시령 7칸 반, 들보간은 2칸 반 건물로서 구조는 3인근무이원퇴식소와 같으며 단거실은 2가구 주거로 구획되고 각 6, 3첩 방으로 전면 마루를 설치하고 양 변소는 중앙 후면에 부속 시키고 도기제변기 및 물 내릴 말두를 붙임

 

물치 겸 소사실도 역시 목조 평가옥 건물로서 도리행 6칸 반, 들보 사이는 3칸 사양서 3인 근무인원 퇴식소와 동일하다. , 욕실, 부엌, 변소, 물품창고 등은 세운 허리까지는 판목판을 세워 붙이고 전기 외에는 목습벽으로 함.

 

바닥은 콘크리트로 다지고 적류조를 설치. 물품 보관으로서 바닥은 판자를 붙이고 미닫이 다락을 붙임, 각 출입구에는 판자문 혹은 허리 붙임 유리창에 미닫이 유리창을 박아 넣고 중요 부분에는 문단속 금속물 및 정첩을 부착함

또 욕실에는 목욕통 및 연통을 소사실 부엌에는 연화조 부엌과 연통을 설비함.

 

깃대는 등대 및 무경호 사이의 공터에 철재를 사용하여 설치하고, 기초 근은 콘크리트로서 다져 굳게하고 상단에는 3, 하단에는 4줄의 철조망을 치고 옆도리를 붙이고 4줄의 기끈을 부속시킴.

 

백엽상은 사방갑옷 붙이고 깃대 부근 북향의 한 쪽에는 열린 문에 정첩을 달아 붙이고 잔디를 붙이고 너비 4척의 장소에 설치함

 

일구의(해시계)는 콘크리트조 팔각형으로 사복을 붙이고 깃대 부근에 거치하고 침판은 추가로 설치함.

 

저수지는 무경호사의 우수를 인용하기 위하여 무경호사에 접하여 콘크리트를 가지고 대강 20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으며 적합한 목조의 뚜껑을 설치함.

 

등탑 피뢰선의 말조(접지극)는 등대 구내 한 구석에 암반을 굴착하고 파서 목제 뚜껑을 설치하고 분탄(가루 숯)을 채워 동선(구리선)의 끝을 매입시킴..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217400010.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49pixel, 세로 584pixel

() 소청도등대 모습 (옹진군청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