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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3.23 07:58
Ep 12 여자 흉년의 어룡도 등대
야모토 세이치시(山本 淸一)(전 목포신보 주간), 번역 정순종(전 등대장)
편집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김민철(등대 전공 공학박사)
어룡도(魚龍島)
어룡도 등대는 전남 해남 모퉁이에서 남서쪽으로 2마일 반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여 연안 항로의 방위 결정 등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부근의 조류는 1시간에 약 5마일, 또 바다의 안개 발생이 빈번하고 수도가 협소하기 때문에 이 등대가 없으면 캄캄한 밤에는 절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항해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 등대에서는 최근에 라듸오를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라듸오를 통하여 큰 도시에서 연주되거나 방송되는 화려한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직원들의 적막한 일상을 달래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 또 그에 대하여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육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실무 면에서 보면 이전에는 원시적인 방법, 즉 일출과 일몰을 참고로 시간을 수정하는 방법으로 점 소등에 정확성을 기하도록 힘썼었으나, 라디오를 비치하고 나서는 그런 번거로운 수순은 필요 없이 쉽고 정확하게 시간을 엄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폭풍 경보기의 도입으로 신속하게 등대 구내의 악천후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경보신호기를 깃대에 높이 게양하여 인근 해역을 항해하는 어선이나 범선에게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라듸오 시설의 은혜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섬사람들의 심정을 육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이것은 다른 등대의 일로 통신국 담당자가 알려준 이야기이다.
1919년 8월 중순의 일. 전신(電信)을 전달하는 전기종(전령 電鈴)이 요란하게 울렸다. 즉시 전신기로 받으니, 발신국은 부산, 수신인은 시하도 등대원 모씨, 본문 내용은 ’ 급병 때문에 돈이 필요함, 시급히 송금 바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침 그 날은 집배일 이였는데, 우편물은 이미 5∼6시간 전에 발송을 마친 상태로 다음날 다시 같은 전보가 두통이나 전달되었으나, 하릴없이 다음 집배일까지 보관해야 했다.
그 후 2∼3일 지나서 전기(前記) 수신인에게 배달되어 본인이 찾아왔다. ’부산까지 전신환을 급히 부탁합니다. ‘실은 저의 아들이 일본 본토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중 급병에 걸려 부산에 머무르고 있으므로 급히 송금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라는 말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얼마나 안타까웟을까.
며칠 지나서 관할 군수로부터 ‘귀하의 아드님이 여행중 발병하여 ’행로 병자‘로서 부산 부청 병원에 입원 운운 …’ 이라는 통지가 왔다. 이것을 받아 본 아버지는 지난번 송금한 것이 아들에게 전달되었는 지 확인할 수가 없어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살기 때문에 전보가 늦어졌으나 즉시 송금 했다는 것, 또 자신은 관직에 있는 몸이라 데리러 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 등을 상세히 편지에 적어 보내고서 아들이 완치되어 무사히 귀성하기를 해야겠지요. 하루가 천추(千秋) 같은 심정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불행히도 며칠 지난 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수치인 사망에 따라 반송함’이라는 부 전지가 붙어 되돌아 왔다. 정말 청천벽력이었다. 아버지는 놀라움과 슬픔으로 오랫동안 풀이 죽어 있다가 긴 탄식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겨우 입을 열었다.
겨우 22살까지 키워 대성할 것을 기대했던 것도 수포로 돌아갔고, 정말 아쉽지만 이것도 천명이라면, 단념해야겠지요. 하지만 체념할 수 없는 것은 교통이 불편한 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보가 늦게 도착했다는 것과 좀 늦었지만 송금 했다는 것을, 아들이 눈을 감기 전에 단 한마디라도 알리고 싶었다는 것…
실로 불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등대 생활자의 애화 중 하나이다.
8시 반 마지막 위문 등대가 있는 어룡도 앞 바다에서 정박하여 차례로 상륙. 등대 직원 4명에 가족이 6명으로 합계 10명이었으나. 부인들이 모두 귀향 혹은 여행 중 이어서 여자는 용무원의 아내 단 1명이었다. 직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수석 : 다카기 겐조(高木 原三) 처 1인
간수 : 시오즈 지로(鹽津 次郞) 처 1인
이데 조겐(井手 掙顯) 처 1인
용무원 : 김 명윤(金明潤) 처 1인
’백의 의 부인‘ ’군대 행진곡‘을 연주한 관현악단도 목포 위문단도, 여자 손이 부족한 곳에서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은 오히려 폐가 된다는 생각에서 서둘러 광성호로 돌아왔다.
그런데 제1진의 전마선은 무사히 광성호에 도착했지만 제2진은 풍파와 조류에 밀려 몇 차례나 파도에 뒤집어쓰는 등 조류의 세례로 인한 위험을 격은 뒤에야 겨우 본선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해변에서 이런 광경을 바라보던 가토 소장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4⁓50명이 탈 수 있는 어선을 빌리기도 했었다. 무사히 위기를 벗어나자, 일행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