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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 23. 오정환

작성일 : 2026.03.05 06:37

부산의 시인들

23. 오정환

의외로 문인 중에는 바둑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글쓰는 일과 바둑을 두는 건 서로 닮은 듯 아니면 보상관계라도 되는 것 같다. 지금도 매주 정해진 날 서면 어느 기원에서는 문인들 대여섯 명이 모여 한 판 5천 원 바둑에 목숨을 건다. 필자에게 목숨을 건다는 건 지나친 장고 바둑을 일러 말하는 농담이다. 한 판에 5천 원은 호주머니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날 비용이다. 그렇게 몇만 원이 모이면 기료를 제하고 나머지는 저녁과 술값이다. 그런데 대개 술값이 모자라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그날 성적이 제일 좋았던 사람이 슬쩍 내놓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도 직장 없는 룸펜들에게는 정말 즐거운 일이다. 필자도 가끔 참석해 1,2만 원을 보태기도 한다.

1995년인가 96년인가 남포동의 어느 기원에서 문인 바둑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에 십수 명의 문인들이 참가했는데 필자도 한자리 끼었다. 1차전은 일단 통과하고 2차전을 기다리며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을 봤는데 모두들 실력이 대단했다. 운 좋게 또 2차전을 통과하고 드디어 필자가 준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아마 5단 실력이라는 오정환 시인(1947-2018)이었다. 오정환 시인은 필자의 고등학교 선배로 필자가 아주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성정이 곱고 여린 분이기도 했다. 바둑 실력으로는 필자가 두 점을 접어야 하는 수준이지만 대회인지라 호선으로 둘 수밖에 없었다. 바둑이 중간을 넘어서자 필자가 많이 불리하다는 것을 느꼈다. 방법은 하나, 판을 흔들어 보는 수밖에. 그것이 필자의 주특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엉뚱한 수의 속기로 판을 뒤집어 보았는데 그게 먹혀들었다. 얼떨결에 대마가 잡히자 당황하던 오시인이 결국 돌을 거두고 말았다. 속기에 능한 필자가 한 번씩 쓰는 방법이 통했던 것이다. 필자는 통쾌한 미소를 짓고, 오시인은 씩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질 줄 몰랐는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결승에서는 누군가에게 필자가 패하고 준우승 상품으로 고급 정수기를 하나 받은 기억이 있다.

오정환 시인은 실력을 갖춘 과묵한 신사로 문단에서 존경받는 분이었다. 그래서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작가회의나 민예총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마침 오시인이 근무하던 동성고등학교에 필자의 대학 동기가 같이 근무했는데 그 동기의 이야기로는 오선생님은 워낙 과묵하셔서 주변 선생님들이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는데 특별하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오선생님께 먼저 자문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오정환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한 분이다. 오시인이 어느 주례를 선 자리에서 시인인 신랑에게 시인으로서의 긍지를 당부하는 간곡한 주례사를 듣고 감동한 적도 있었다. 시인은 모든 것을 제쳐놓고 우선 시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보다 앞서는 일이 그에게 있다면 그는 옳은 시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오정환 시인은 참시인의 길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정환 시인은 부산 출신으로 중앙대 문창과와 동아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81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시인으로서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자리를 지켜온 분이다. AI에게 오정환 시인의 인물평에 대해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민예총 회장을 맡았음에도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부산 문인들 사이에서의 오정환은 ·온건하지만 단단한 시인 ·문단 정치보다 작품 중심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배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부산 시단에서 오정환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오래 남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역시 AI답게 정확했다. 작품집으로는 맹아학교(1986), 물방울 노래(2004), 노자의 마을(2011), 푸른 눈(2013), 그리고 시 평론집 봄비, 겨울밤 그리고 시(2016)가 있다. 오정환의 시들은 대개 부산과 낙동강변을 배경으로 한 이미지, 마음의 풍경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특징들이 있다고 평가하는데 지역적 정서와 일상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낸 서정시들이란 평가도 아울러 받는다.

필자가 신윤복 교수가 쓴 강의노자편을 꼼꼼하게 읽고 있는데 마침 오정환 시인에게서 시집이 왔다. 시집 제목은 노자의 마을, 우리 둘은 정말 통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고맙기도 했다. ‘사는 일에 힘을 빼면 바람도 길을 묻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노자의 무위사상과 직결되는 것으로 체념이 아니라 과잉에서 물러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삶이란 흐름에 맡길 때 비로소 길이 생긴다는 노자의 사상을 말하기도 한다. 노자를 빌리되 시인의 일상 언어로 풀어낸 것, 그런 것들이 또한 이 시들의 특징이다.

그렇게 멋진 그리고 말씀이 어눌했던 선배 시인이 췌장암으로 가신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지금 필자 주변에 그런 시인이 없나 둘러보지만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시대가 각박해진 탓인가. 上善若水, 물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칼로 빚은 듯/목공예 手品같은 줄기/아직 선명한 칼자국 그대로 남아있다./서늘한 칼바람에/잎이란 잎 죄다 날려 보내고/마침내 칼날 삼킨 듯 비장하게 서 있다./차마 다시 잎 피울 것 같지 않은/속살마저 모두 드러낸 빈 몸통 위에/어언 주먹보다 튼실한 열매/거짓말처럼 매단다./뼈만 남은 내 가슴 한 켠에/노랗게 무르익어 가는/덩어리 하나 자라고 있다.> (오정환, 모과전문)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