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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3.01 02:04
부산의 시인들
22. 김성식
<배를 타다 싫증나면/까짓것/청진항 도선사가 되는거야//오오츠크해에서 밀려나온/아침 해류와/동지나에서 기어온/저녁 해류를/손끝으로 만져가며/회색의 새벽이/밀물에 씻겨 가기 전/큰 배를 몰고 들어갈 때// … //청진만의 물이 차고 곱단다/겨울날/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싱싱한 바다 냄새/더불어/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엄마 가슴에 한아름 안기지만/이따금 들어오는 쇠배를 보느라고/추운 줄 모르고 서 있었단다//잘 익은 능금 한 덩이/기폭에 던져 놓고/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별을/기폭에 따다 넣고/햇살로 머리 빗긴/무지개를 꺾어 달고//오고 가는 배들이/저마다 메인 마스트에/태극기 태극기를//올 엔진 스텐바이/훠 샷클 인 워터/렛고우 스타보드 엥커//방파제 넘어/닻을 떨어뜨려/나를 기다리면//얼른 찾아가/나는/굿 모닝! 캡틴// … //주모가 따라주는 텁텁한 막걸리/한 사발을 건네면서/여기 청진항이 어떠냐고/은근히 묻노라면//내 지나온 뱃길을 더듬는 맛/또한/희한하겠지//까짓것/배를 타다 싫증나면/청진항 파이롯 되는 거야> (김성식, 「淸津港」 중)
필자에게 중앙동 시인들은 좀 특별한 사람들로 인식된다. 경제관념 등 손익을 따지는 데는 젬병이며 성인으로서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에 열중일 때가 많다. 사람 좋은 룸펜, 할 일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중앙동 시인들, 필자의 머리 속 그들의 이미지다. 그런데 그중에도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고 시를 쓰는 부류가 있기도 하다. 그중 선장시인 김성식(1942-2002)이 있다. 빛남출판사 고시회 판에 김성식 시인이 나타나면 고스톱 치던 시인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마 전날쯤 배에서 내렸을 것이다. 그러면 모두 서둘러 백 원짜리 고스톱 판을 걷어치우고 술집으로 향한다. 평소의 포장마차 수준이 아니라 그날은 고기집이나 횟집에도 갈 수 있다. 외항선 선장의 수입은 당시 대기업 임원의 월급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김성식 시인은 중앙동의 우상이었다. 그렇게 며칠 들러다가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모두들 그가 언제 오나 기다리곤 했던 김성식 시인이다.
해양도시 부산에 걸맞게 선장 출신 김성식 시인과 천금성 소설가가 있었다. 두 분 모두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걸출한 문인이다. 1996년, 문협 사무국장이던 필자의 제안에 의해 부산시에서는 한국 최초로 ‘한국해양문학상’이라는 상을 제정했다. 그런데 제1회 수상자는 공모보다는 지금까지 해양문학을 해온 공로에 중점을 두고 수상자를 정하자는 게 부산시나 문협 집행부의 의견이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김성식 시인이 적격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필자도 김시인과 많은 술자리를 가지면서 그분의 해양문학에 대한 공과 헌신을 알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천금성 소설가는 전두환 대통령 관련 구설수로 인해 아예 배제된 상태였다. 심사는 김원일, 강은교, 구모룡 그리고 필자가 간사로 참여했다. 강은교, 구모룡은 김성식 시인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러나 당시 위원장을 맡았던 김원일 소설가가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제1회 수상자는 전국 문단에 잘 알려진 작가여야 하는데 김성식은 지방 시인에 한정된다는 논리였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심사 자리를 뛰쳐나오는 등 우여곡절 끝에 해양문학과 크게 관계가 없는 한승원 소설가가 『포구』라는 시집으로 제1회 ‘한국해양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수상자가 결정되자 중앙동 시인들로부터 필자에게 불만의 화살이 쏟아졌다. 당시로는 거금인 천오백만 원의 상금에다 제1회라는 의미 때문에 김성식 시인이 받아야 된다는 분위기가 중앙동에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시상식이 있기까지 필자는 그저 김시인에게 미안한 마음만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며칠 뒤 양정에 있는 최영철 시인의 집에서 너댓 명의 문인들이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김성식 시인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김시인에게 그때의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자 본인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신경 쓰지 말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1971년 「淸津港」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후 김성식 시인은 일관되게 그의 시로써 바다를 지켜왔다. 첫시집 『淸津港』(1977)부터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1986), 『누이야 청진의 누이야』(1991), 항해기 『시인 선장 세계를 누비다』(1977) 등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바다 위의 일상을 묘사했거나 하선해서 느꼈던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다. 1967년 선원수첩을 발급받고 2000년까지 배를 탔으니 33년 배를 탄 셈이다. 60년 인생의 절반 넘게 배를 탔고, 그 기간 동안 함께 시도 썼다. 한국해양문학사에서 길이 추억해야 할 시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아가 김시인은 본인이 북한 청진 출신으로서 남북통일에 대한 의지, 그러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시를 쓴 분이기도 하다. 김준오 교수도 “초기작 「淸津港」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시를 관류하는 것은 역사의식이다. 그리고 그의 시를 볼 때 뱃사람으로서 가지게 되는 귀소본능이 민족이나 역사와 쉽게 친화될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우리의 영원한 선장 시인 김성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여기서는 특히 그분과 가까웠던 최영철 시인의 헌사로서 이 글을 맺는다. “그는 바다 위에서 살았고, 바다 위에서 시를 썼다. 그는 바다 자체였다. 1년에 한두 번 땅에 내리면 어질어질 땅멀미가 난다고 했다. 캡틴의 모든 감각은 태생적으로 출렁이는 바다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는 운명 직전까지 시를 써서 잡지사에 보냈다. … 그에게 바다는 삶이었고 뭍은 속박이요 죽음이었다.”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