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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2.22 07:01
부산의 시인들
21. 이상개 2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오늘도/내 그대를 만나야 한다./만나서는 별이 되는/하나의 이름으로 반짝이면서/그대와 내가 만난/최초의 아픔과/최초의 굶주림을/뼈 속 깊이깊이 새기면서/이 세상/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아름다움 하나 이루리라/이루리라 다짐하면서,/쓰러지지 않기 위하여/오늘도,/내, 그대를 만나야 한다./만나야 한다.> (이상개, 「만남을 위하여」 전문)
재부마산고동창회보 71호는 위의 시와 함께 이런 글이 표지를 장식했다. “시인은 가난했지만 마음은 항상 넉넉했다. 부산 시단의 거목 이상개(19기) 시인이 또 다른 「만남을 위하여」 어느 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쯤 천상에서 천상병(10기) 선배시인을 만나 막걸리 한잔으로 詩語를 나누고 있겠지.”
2022년 9월 19일 국제신문에 실린 이상개 시인 타계 소식을 간추려 본다. ‘부산 시단의 버팀목 송재 이상개 시인이 별세했다. 고인은 194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되자 고향인 경남 창원 봉림으로 돌아왔다. 그는 1964년 유자효, 오하룡, 박종해 등과 잉여촌 창간 동인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며 1965년 『시문학』 2회 추천을 받았다. 1988년부터는 『시와자유』 동인으로 시단을 풍성하게 가꾸었다. 고인은 1985년 5월 7일 창립한 5·7문학협의회에도 참여했다. 그는 빛남출판사를 운영하며 부산 문단의 어려운 일, 궂은일을 많이 떠맡았다. 의견 대립이 생기면 묵묵히 조정하는 일을 도맡았으며 부드럽고 평온한 성품으로 두루 신망을 얻었다. 그리고 동광동 소재의 주점 ’강나루‘ 이어 개칭한 ’한길‘을 말없이 지키면서 문단의 버팀목 구실을 했고 언제라도 찾아가 술을 나누어도 불편하지 않은 분이다. ’한길‘은 이상개 시인과 목경희 여사 부부가 운영해온 소탈한 주점으로 부산 원도심의 예술인 아지트 중 한 곳이다.’ 이상이 이상개 시인이 타계하자 국제신문 최승희 기자가 쓴 글을 간추려 보았는데 여기서 한두 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상개 시인이 부드럽고 평온한 성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너무 부드러워 여러모로 손해를 본다는 것과, 피아 구분이 잘 안되어 어떨 때는 문단 진영 간의 대립에서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옳고 그름도 잘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이 좋다는 식이다. 그래서 옳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자칫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거기다 중앙동 우유부단파의 대부로 주변을 답답하게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최영철 시인이 빛남에 근무할 때다.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이것저것 고르기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결국 점심도 못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최영철 시인 또한 그런 면에서 이상개 시인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런 이상개 시인의 성격을 목여사가 있어 잘 커버해주기도 한다. 목여사는 다행히 맺고 끊는 면이 있는 분이다. 천상병 시인에게 찻집을 운영하는 부인 목여사가 있었다면 이상개 시인에게는 그분에 못지않는 목여사가 계신 건 천만다행이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이상개 시인이지만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중언부언 말이 길어지면서 불뚝 성질을 내는 때가 종종 있다. 필자와는 이런 일도 있었다. 90년대 중반 문협 사무국장을 하고 있을 때다. 당시 문협이 부산시 문화예술과의 지원을 받는 관계여서 한 번씩 문화예술과 직원과 회식을 한다. 그때 이상개 시인이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술이 많이 취하자 그 흐트러진 말투로 “당신들은 왜 문협의 피를 빨아 먹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필자가 매우 곤란한 적이 있었다. 그 며칠 후 이상개 시인을 만나 그날 일을 모질게 따졌더니 ‘정말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상개 시인은 시를 잘 쓰는 분이다. 아마 부산 시단에서 필자와 가까왔지만 시로써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도 이상개 시인이라 늘 생각해 왔다. 이시인은 『영원한 평행』(1970), 『만남을 위하여』(1985), 『흐르는 마음 하나』(1989), 『김씨의 허리띠』(1999), 『소금을 뿌리며』(2001), 『파도꽃잎』(2006), 『강나루 하나』(2013) 등 15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는 평범한 우리 삶이나 문제점들을 풍자적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시인이다. 그러면서 우리 삶의 서정성 또한 그의 시에서 돋보인다. 김준오 교수도 “이상개는 관념적인 서정을 바탕으로 꾸준히 시의 정통성에 주력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세계와 대결하는 자아의 태도 문제를 다룬, 다소 고뇌와 격정에 사로잡힌 풍자적인 시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세계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서정론적 순수시관에 입각해 있다.”고 분석한다. 필자도 다른 시인의 시집이 오면 대충 볼 때가 많지만 이상개 시집은 정말 꼼꼼이 읽는다. 그만큼 재미있고 좋은 시들이기 때문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 일로 도쿄 게임쇼에 출장을 가 있는데 이상개 시인이 별세했다는 문자가 왔다. 건강이 많이 안 좋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 급하게 가시다니, 가슴이 시렸다. 출장이 며칠 걸리는 일이라 뒷날 ‘한길’에 가보기로 하고 그날은 그분과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일행들과 술 한잔을 했다. 일행 중 누군가 “위원장님 오늘 술 너무 많이 마십니다”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날 술로써 실수를 좀 했는데 이 글에서 밝히기는 어렵다. 아무튼 귀국 후 필자와 자주 만나던 그분의 절친 안기태 화백께 “우리 한길에 빨리 한번 갑시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한길’이 문 닫기까지 그만 못 가고 말았다. “형님, 저승에서라도 늘 행복하세요.”
<박홍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