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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2.15 07:32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 근무 일본인 등대원들의 이야기들
야모토 세이치시(山本 淸一)(전 목포신보 주간), 번역 정순종(전 등대장)
편집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김민철(등대 전공 공학박사)
Ep 4 렌즈 속에 사람이 서서 걸을 수 있는 칠발도(七發島)의 대등대(大燈臺)
민물을 얻는 데에 큰 고생
전라남도 목포 앞 바다에서 20해리 서해안에 위치하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에 설치된 칠발도 등대. 칠발도는 섬의 둘레가 약 2,000m 정도의 자그마한 섬으로 서해안을 운항하는 항로에 위치하고 있어 이 등대의 임무는 매우 중대하다. 따라서 10만 촉광이라는 대형등명기를 설치하여 한국 제일의 광력으로 26해리의 광달거리를 가진 대형 렌즈 안에는 사람이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안개가 짙을 때는 1907년 12월 설치한 무적(霧笛)의 소리로서 항해자에 등대 위치를 알리고 있으며, 1935년에는 무선나침국과 무선표지국 및 선박 통보 사무, 해상기상 관측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아무튼 절해고도에서 물을 구할 선편이 없기 때문에 등대 간수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관사 지붕에서 빗물을 모아서 한 방울이라도 남김없이 모아두는 시설이 있다.
이런 일에 정통한 사람들은 이것을 집수(集水) 장치 관사라고 부르고 있는데 모아진 빗물에 장구벌레가 자라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물을 한번만 쓰고 버린다는 일은 절대로 있을수가 없다. 쌀을 씻은 물은 야채를 씻고 그다음에는 걸레를 빤다는 식으로 간수들의 가족은 한 달에 두세 번 목욕하는 것이 고작이다.
일년내내 상수도 단수로 고생하는 목포나 부산 사람들은 며느리를 구하려면 이런 섬의 아가씨를 고를 것. 섬 부근은 항해사들이 마(魔)의 바다라고 두려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Ep 5 일손이 필요하지 않은 자동 명멸등(明滅燈), 단 결점은 광달거리가 짧다.
아가식 가사도(加士島) 등대
먼 옛날 항해자들은 오직 북두성(北斗星)에 의지하여 배를 운하였는데, 캄캄한 밤에는 불편했기 때문에 큰 도시에서는 햇불을 이용하거나 기름을 태워 길 안내를 했고 그것을 상야등(相夜燈)이라고 부른다.
등대의 시조는 영국에서 신(神)의 이름을 붙인 등대가 적지 않다.
등대는 상야등이어야 한다. 그 후 가스를 이용하여 1주일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나 주간에는 끌수가 없어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과학의 진보에 따라 일광변(日光辨)을 고안하게 되어 해가 뜨면 자동으로 꺼지고 해가 지면 점화하는 소위 ‘아가식’ 등명기가 발명되어 사람의 조작이 필요 없게 됨으로 절해의 외딴섬에서는 아주 편리한 등대가 되었다.
서남해안 장죽 수도 입구에 위치하며, 목포, 제주도, 서해안 남해안 방면의 분기되는 지점의 변침을 표시하는 가사도등대는 192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아가식‘ 등명기를 사용하는 등대로 목포 해사 출장소에서 한 달에 두 번 순찰하여 점검할 뿐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동으로 점멸하면서 그 중책을 다 하고 있다.
’아가식‘ 등명기의 불편한 점은 광달거리가 짧아 9 해리 ∼ 12해리의 광달거리가 요구되는 등대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는 점이다.
최근 미국 만국 평화상회에서 전기장치를 이용하여 자동으로 밤이되면 켜지는 등대가 발명되었다고 하는데 ’아가시‘과 마찬가지로 안개 신호 설비에 문제점이 있다는 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