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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19. 임명수

작성일 : 2026.02.09 08:43

부산의 시인들

 

 

19. 임명수

90년대 초 필자는 중앙동 빛남출판사에 자주 들렀다. 당시 빛남은 문인들 특히 시인들의 아지트였다.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그냥 할 일이 없이, 아니면 술 한잔하기 위해 모이는 시인들로 인해 빛남은 늘 북적거렸다. 그런 그곳에 거의 매일 구석 자리에 죽치고 앉아 고스톱을 즐기던 시인들 일명 고시회의 주요 멤버들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종종 재미있게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대개 무직의 별 할 일 없는 가난한 시인들이었다. 점에 백 원짜리 고스톱을 오후 내내 즐기다 저녁 시간이면 모은 돈으로 술 한잔하러 이집 저집을 기울이는 룸펜들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분이 임명수 시인(1940-2019)이다.

임명수 시인은 일본에서 태어나 45년 해방과 함께 부산에 정착하게 된다. 좀 감상적인 편이던 임시인은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부산대 국문과에 입학하는데, 부산대 재학 중이던 1963년 제1회 부대문학상에 입상하면서 시인으로서 큰 뜻을 품게 된다. 그리고 1978년 문덕수 신동집 시인 추천으로 시문학에 추천 완료되기도 했다. 이후 임명수 시인은 문단의 여러 활동을 거치는데 부산시인협회가 펴낸 남부의 시창간 당시 주간을 지내기도 했고, <목마>, <신서정시그룹>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런데 대개의 문인들에게 임명수 시인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도리구찌 모자의 양산박 주인 모습이다. 한때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주위 언론계나 문인들의 협조로 차려진 포장마차 수준의 양산박은 다시 윤진상 소설가가 운영하는 윤산박과 임시인이 운영하는 임산박으로 나누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주점 운영에 임시인은 별로 관여치 않고 부인 역할을 했던 마오여사가 주로 맡아 운영했는데 임시인의 성격에 술집 운영이 맞지도 않거니와 모든 경제권을 뺏긴 임시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마오여사란 말은 갋지마오의 뒷글자로 부르는 별칭인데 글자 뜻대로 임시인이 갋지 못하고 순응하고 사는 부인이기도 했다. 사실 임시인에게는 일찍 결혼한 부인이 있었다.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의 미모에 좋은 학벌까지 나무랄 데 없는 부인이었다는데 임시인의 무능력으로 헤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필자에게도 자주 그 부인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아마 늘 그리워하고 있었던 옛 부인이다. 마침 그 부인과의 사이에 난 헤어진 딸이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 부인의 청에 의해 결혼식장에서 딸 손을 잡고 입장했는데 그 감격을 두고두고 술자리에서 되새기곤 했다. 참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임명수 시인은 남의 말을 잘 경청하고 감성적이다. 대화술도 뛰어나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가끔 한 번씩은 이전 어깨 적 그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인지 필자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남포동 중앙동 일대의 주먹들과 친분이 많았다는 잘 아는 분의 귀뜸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누가 임시인에게 불쾌하게 대할 때는 평소 임시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일면이 드러난다. ‘회칼’, ‘새끼’, ‘죽어볼래?’ 등의 용어뿐만 아니라 나이 맞지 않게 뒷골목타령도 나온다. 아마 필자가 임시인의 그런 모습을 서너 번 이상은 본 것 같다. 정진채 회장의 당선 축하 자리에서 포항의 김후동 시인과 시비가 붙어 한판 뜨자는 것을 필자가 겨우 말렸고, 심지어 광복동 어느 일식집에서 유도부 대학생과 한판 붙자는 것도 필자가 말린 기억이 있다. 그때 아마 필자가 말리지 않았다면 임시인은 뼈도 추리지 못했을 거라는 농담을 우리끼리 하곤 했다.

임명수 시인의 시는 그의 성격대로 감성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만큼 시가 서정적이다. <목마> 동인에 이어 <신서정시그룹>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남송우 교수도 임명수 시인을 분석하면서 그는 서정주의 시인으로 순수시의 세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미지를 중시한 시인으로 넓은 범주의 모더니즘 시인에 포함될 수 있다.”고 소개하는데 그 대표 시로 을 들기도 한다. 변종환 시인은 임명수 시인의 은 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안목으로 투시되는 따뜻한 애정이 주관적 시점이 아닌 객관화된 심정으로 표출된다,이 시는 임명수 시의 전형 중에서도 지적 요소가 가장 잘 활용된 작품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의 짐작으로 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안목은 그의 삶과 그렇게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내와/아이들이/採集된 나비처럼/잠의 핀에 꽂혀있다./오늘 밤/깊은 잠 속으로/물 오르는 소리 들리고/달개비꽃 피고 있다./오오/떠도는 목초지여, 작은 샘이여,/꿈은/물방울처럼/잠속으로 맑게 고이고/넘치는 것은/五色 구름 위의 時間/머리에 뿔 셋이나 달고/달려가는/별이 보인다> (전문)

임명수 시인이 가게를 정리하고 영덕으로 이사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포항, 울진, 영덕 같은 곳은 관광 겸해서 가보는 곳이므로 언젠가 한 번은 가서 회라도 한 접시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부음 소식을 먼저 듣고 말았다. 정말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다. 저승에서라도 좋은 아내 만나 멋진 가정을 이루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