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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2.09 08:29
설 대목의 기억, 마음의 불을 지키다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설이 다가오고 있다. 예전에는 설을 앞두고 ‘설 대목’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웠다. 올해처럼 2월 중순에 설이 들면 새해의 시작보다 겨울 끝자락에서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먼저 찾아왔다. 설 대목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기가 아니었다. 한 해가 맺히고 풀리는 끝자락에서, 몸으로 계절의 숨결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 설 대목의 재래시장에는 인간의 체온이 가득했다. 좌판마다 하얗게 분을 바른 곶감과 말린 대추가 햇살에 빛났고, 어묵 국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손과 마음을 함께 녹였다. 갓 짜낸 고소한 참기름 냄새는 골목 끝까지 번졌으며,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겨울 공기를 경쾌하게 갈랐다. 가래떡을 뽑는 떡집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차례를 기다리는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은 떡이 나오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눈을 반짝였다. 골목 어귀의 뻥튀기 기계가 ‘펑’ 하고 터질 때마다 겨울 공기는 놀란 듯 움찔했고, 아이들은 좋아라 웃음을 터뜨렸다. 따뜻한 가래떡 한 가락을 손에 쥐고 후후 불어 먹던 기억은, 허기와 추위 속에서도 마음을 데워 주던 시절의 온기를 되살린다. 어른들은 봉투 속 세뱃돈 액수를 헤아리며 한숨과 웃음을 섞었고, 차례상에 빠진 음식이 없는지, 먼 곳의 친척에게 마음이 닿을지 곰곰이 점검했다. 설은 그렇게 기다림이었고, 서로를 향해 마음의 옷깃을 여미는 시간이었다.
그때의 설은 한 해 동안 애써 살아온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였고, 흩어졌던 가족이 그날만큼은 다시 모이겠다는 약속이었으며, 힘겨운 날들을 그래도 무사히 건너왔다는 안도의 순간을 자축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일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올해는 좀 어때요.” 하며 안부를 묻는 일이었다. 흥정 속에는 웃음이 있었고, 덤으로 얹어주는 나물 한 줌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정이 담겨 있었다. 생선 한 마리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설 대목의 소란 속에는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하는 온기가 있었다. 설은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품고 있었다.
요즘 ‘대목’이라는 말은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고(三高)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설은 더 이상 한결같은 명절이 아니다. 재래시장은 예전처럼 붐비지 않고, 상인들의 얼굴에는 기대보다 근심이 먼저 스친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격표 앞에서 오래 서성이다 몇 가지를 내려놓는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설렘 대신 계산이 앞서는 현실에서 설날이라는 이름은 유난히 무겁다.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달력 위의 날짜는 더디게 흐르는 듯 보이지만 봄은 어느새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다. 비록 예전 같은 대목의 풍경은 사라졌을지라도 사람들의 마음까지 메말랐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차린 음식이 소박해도 떡국 한 그릇의 따뜻함, 직접 찾아가지 못해도 “설 잘 쇠어라.” 하고 건네는 짧은 인사, 서로의 형편을 굳이 묻지 않아도 알아주는 침묵 속의 배려는 여전히 설의 의미를 감싸고 있다. 요란하지 않아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명절의 불빛을 다시 밝히고 있다.
형편이 어려워 고향으로 향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설은 오가는 길 위에서 완성되는 날이 아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옛 설을 생각하고, 떡집 앞에서 떡을 기다리던 기억을 떠올리며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마음은 이미 고향을 향해 걷고 있다. “올해도 무탈하게 잘 견디자”, “조금만 더 힘내자”라는 짧은 덕담 속에는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가 담겨 있다.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마음, 그 오래된 풍습만은 이어지길 바란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설을 밝히는 불씨만은 꺼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 불빛이 모여 다시 봄을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