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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2.03 12:49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 근무 일본인 등대원들의 이야기들
야모토 세이치시(山本 淸一)(전 목포신보 주간)
번역 정순종(전 등대장)
편집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김민철(등대 전공 공학박사)
Ep 2. 젊은 등대지기의 가엾은 순직(殉膱) 과 순애보
우여히 그는 해상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수색 의뢰가 들어왔던 연합 함대 해군 병사의 시체인 것 같다.
그날은 특히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이! 이거 좀 봐“
고지(幸二)는 이렇게 말하면서 아내 하루에(治江)에게 망원경을 건네 주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마루 위로 부는 바람이 새로운 바닷물 냄새를 실러와서는 하루에의 하얀 볼과 흐트러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루에는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봐, 보이지“
”무엇이“
”제비, 제비 말이야“
”어머 정말“
매일 같이 거센 파도 위를 날아가는 제비 떼를 보았다는 가벼운 놀라움이 젊은 아내의 마음을 명랑하게 했다.
‘이제 다시 초여름이군요”
안경을 낀 남편의 눈을 쳐다보던 하루에는 가슴 쪽으로 눈을 옮기면서 빙긋이 웃었다.
“제가 이 섬에 왔을 때도 마침 이 무렵이었지요”
“응, 그래”
등대 기계실의 난간에 서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기모노에 다시 강한 바람이 휘몰아 친다.
풍랑이 거칠어질 때면 밤새 바다를 지키는 등대지기는 하나의 이름 없는 의인이다. 니시모리 고지(西森 幸二), 그도 그런 의인의 한 사람이었다. 젊고 정숙하며 아름다운 하루에와 젊은 용무원, 모두 세 사람으로 인천 앞 바다 팔미도등대에서 날마다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어!”
수면을 무심코 바라보던 고지의 입에서 이상한 외침이 새어 나왔다.
그의 눈은 뚫어지게 바다의 한 부분을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거다!”
고지는 철로 만든 난간을 꽉 잡고 몸을 내밀면서 다시 외쳤다.
“하루에 당신한테도 저게 보여 저거 봐 파도 사이에 떠 있는 것이 ‥ ”
“예, 사람 아닌가요”
하루에는 대답해다.
’당신한테도 그렇게 보여, 저건 틀림없이 요전에 함대가 수사 의뢰해온 해군 병사의 시체야. 자, 내려가자. 서둘러 보트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조류가 빨라서 떠내려 가게 돼…“
고지는 아내를 재촉하여 게단을 내려 갔다.
그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고지는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에서 보트를 바다로 밀어내면서 날쎄게 올라 탔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노를 힘차게 저어 방향을 돌리더니 돌진 했다.
하늘을 향해 외치고 바다를 원망하는 하루에의 모습
사납게 부딪치는 큰 파도에 고지의 보트는 끝내 바닷속으로
하루에는 남편이 건겅한 팔로 보트를 저으며 파도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멀어져 가는 보트가 강풍으로 사나워진 파도에 출렁거리는 것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이 소나기가 내리기 전의 먹구름처럼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파도는 달려들 듯 바위에 부딪쳐 물보라 치며 하루에의 옷자락을 적셨다.
”아주머니 바다가 굉장히 거칠어 지는데요“
하루에의 남편이 걱정되어 어느새 바닷가에 내려온 용무원 박씨도 파도 색깔이 변해 가는 것을 보고 무의식중에 얼굴 표정이 어두워 졌다.
바람은 휘몰아치고 물결은 거칠어져 갔다. 보트의 모습은 이제 까만 점이 되고 아차 하는 사이에 물결 사이로 숨어버리기도 했다.
약 2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하루에 에게는 한나절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앗!“
갑자기 하루에가 비명을 질렀다. 큰 파도가 무너질 듯 부서지면서 사납게 더
덮치자 순 식간에 보트는 파도에 휩쓸렸고 다시는 물 위로 떠 오르지 않았다. 3초, 4초, 5초 … 하루에의 안색이 점점 변하고 있었다. 하루에는 숨을 죽여 신에게 기도했다.
아, 남펀! 보트! 생명! 죽음! 하루에는 바닷가에 가만히 서 있을수가 없었다.
”박씨 배를 내 주세요. 저를 태워. 저기까지…, 저기까지 데려다 주세요. 어서 태워 달라니까요.
‘아주머니 제발 그런 무리한 말씀 마세요. 주인어른 팔로 저어도 헤쳐 나갈수 없던 파도를 …“
됐어 자네는 목숨이 아까운 거지, 하지만 나에게 남편은 내 목숨 이상이야. 자네가 데려가 주지 않겠다면 나 혼자 갈 거야. 자, 어서 배를 준비해 줘.”
위험에 처한 남편을 구해야 한다는 급박한 상황이 부인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어 버렸다. 하루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걱정하면서 바닷가에서 번민하기 보다는 차라리 남편을 삼켜버린 노도(怒濤) 속으로 돌진하여 죽고 싶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몇 번인가 바닷속으로 투신하려는 하루에를 박씨가 꼭 껴안으면서 말렷다.
파도를 향해 한탄하는 여자, 하늘을 향해 외치면서 바다를 원망하는 슬픈 모습. 하루에는 눈물이 완전히 말라 버린 후에도 물결이 밀려오는 해변을 끝내 떠나려 하지 않았다.
으스스하도록 넓은 하늘에 퍼진 먹구름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마성(魔性)의 저녁노을을 받으며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진 하루에의 두 볼에 눈물의 흔적이 쓸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인천항에서 온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참고 견디던 슬픔에 하루에는 눈물을 남김없이 흘렸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을 따라 바다로 투신
땅거미가 파도와 함께 물밀듯이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남편의 목숨도 이제는 절망적이다. 용무원이 두 팔로 하루에를 제지하는 사이에도 하루에는 절망한 나머지 바닷속으로 투신하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
‘이젠 희망도 없는 걸까 … ”
희망이 담긴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해면은 점점 어두워진다.
등불이다! 잊어서는 안 될 등대의 임무. 하루에는 결연히 바닷가를 떠났다.
타바 타박… 꼬불꼬불 구불어진 등대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 이런 것도 남편과 함께일 때는 쓸쓸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둡고 으스스한 꼬불꼬불 구버러진 계단, 텅 빈 등대의 동공(空洞) 속으로 이상한 바닷새의 울음소리가 요물처럼 메아리 친다. 저승으로 통하는 듯한 공포. 바위에 세게 부딪쳐 피투성이가 된 남편의 얼굴이 어둠 속에 떠 올랐다.…
마침내 등대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여름날 밤새도록 등불을 애타게 그리며 아침에는 죽어가는 벌레. 마치 그 벌레처럼 하루에는 그 날밤 좁은 등화실(燈火室)을 떠나지 않았다.
흰빛을 발하는 등대 불빛에 하얗게 밝아지는 물마루에 까만 것이 떠 오르면 혹시나 하고 눈을 반짝여 보았다.
날이 밝았다.
바다는 그러나 남편을 아내의 품으로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정오가 지나 다행이도 인천항에서 입항하는 배의 모습을 확인하자 어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신호를 보내고 수상경찰의 지원을 요청했다. 수상경찰의 배로부터 요청을 쾌히 수락한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그 다음날 하루 종일 해상을 수색한 경찰정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철수해 버렸다.
그리고 나흘째에는 경찰서장과 함께 함대 사령관의 감사장 전달 및 조문을 위하여 배가 팔미도 해안에 도착했다.
“여하튼 아시는 바와 같이 물결이 빨라 유해를 발견할 수가 없으므로…”
인천 해사 출장소장의 낮은 목소리는 동정심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보다도 이것은 남편이 실종된 이후 제가 작성한 등대일지와 보고서입니다. 주의가 미치지 못한 점이 많을 줄 압니다. 일단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는 등대 관리인으로서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해사 출장소장 앞에 놓았다. 그 남편에 그 부인, 두 사람 중 어느 한쪽도 뒤지지 않는 씩씩한 모습에 해사 출장소장의 가슴은 메워 터질 것 같았다.
인천항에서 온 사람들은 돌아갔다. 하루에는 지금까지 참아 온 슬픔을 남김없이 울음으로 터뜨리고 싶어 등대 위로 올라갔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는 나의 남편! 그 남편을 바다는 저 멀리 머나먼 곳으로 데리고 가 버렸다.
바다! 바다여!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잠든 바다여! 아아,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내가 갈 길은 단 하나 남편이 떠난 그 길이다!“
정숙한 아내 하루에는 등대 위에서 바위에 부서지는 대양의 물결 위로 몸을 던졌다.
높이 구슬처럼 튀는 물보라. 이것이 스물 다섯 살의 젊은 아내를 애도하는 이 세상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멀리 남펀의 뒤를 따라 영원히 저세상으로 갔는지, 하루에의 시체도 끝내 떠 오르지 않았다.
※ 편집자 주 : 이글은 아사이 신문 경성(서울)의 기자 A씨가 작성 내용으로 1928년 8월 4일 일본 아사이(朝日) 신문 기사)이다. 당시의 동기사는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