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광복80주년에 보는 등대 역사
작성일 : 2026.01.26 02:40
19. 부산도등(釜山導燈 , 제6등급 부동 적색등)
김민철 (공학박사, 등대전공),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개축 이유
본 도등의 위치는 한국 남안 부산항 초량에 있으며, 항구 옆으로 있는 암초를 피하기 위하여 1905년 8월 중(메이지 37년 8월 중)에 임시로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등명기계 같은 것을 선박용의 "램프"를 임시 응용하기위해 그 광력이 충분할 수 없고 동시에 고등(高燈) 및 저등(低燈)의 위치는 모두가 적당하지 않으므로 이에 개축의 필요를 인정 본년 9월 1일을 기하여 기공하고 준공은 1907년 1월이 예상된다.
설계 개요
본 도등은 철조 원주형으로 등화의 중심은 만조 평균 수면에서 높은 고등은 177척, 저등은 106척이며, 기초에서 등화에 이르는 높이는 고등은 15척, 저등은 20척으로서 영국 "챤스브러드스“ 제조회사의 제작에 관계되며 원주를 세우고 그 상부에는 내경 3척 높이 4척의 철동벽을 쒸우고 지붕은 동판을 가지고 이음하고 유연(油煙)이 빠지는 구명을 만들고 저부(底部)에는 튼튼한 주철제로서 파리판대를 겸하여 3개의 공기공을 설치하고 전면 180°에는 두터운 유리 3매를 붙여 세우고 후면 180°는 철판을 붙이고 2개소의 입구 문짝을 설치하고 외부는 고, 저 양문 똑같이 백색 페인트 도장임
등실(燈室)은 동벽의 하부에서 2.5척의 장소에 외경 7척의 망이 붙은 철판을 가지고 붙이고 주위에는 손잡이를 설치 실네에는 승강 할 수 있도록 철제 사다리를 붙이고또 지름 1인치 볼트 3개를 가지고 철판과 지반 사이를 연결하여 원주의 기초는 "콘크리트" 조로 하고 높이는 지반 이상의 세자로 마무리하고 부피 4.5자, 폭과 길이는 공히 4자 각으로서, 1인치 4분의 1 지름의 철 "볼트"를 가지고 4개소에 조이고 붙인다.
등기는 제6등 부동홍색으로서 중앙부절사파리(굴절 유리)의 양측에 직립 절사파리를 붙이고 중앙에는 이중심등기를 비치하여 모두 등화는 홍색으로서 동색의 화사(火舎)를 사용함.
불은 붉은색이며 같은 색깔의 화사를 사용한다. 부속 영조물은 직원 휴게소 1동과 물품 보관소 1동으로 고등(高燈)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건축하며, 모두 외부 양풍 가로 깃털 쥐색 "페인트"를 칠한다.
부속 영조물은 이원퇴식소 1동 및 물품창고 1동으로서 高燈最寄(높은동 근처)에 건축하고 모두 외부는 서양풍 판목판으로 쥐색 페인트 도장함.
물품 창고 한면의 중심은 도등 고저 두등이 전망되는 중심에 해당되는것으로서 이것을 "페인트" 백색 도장으로하고 주간의 목표로 함
지붕은 이원퇴식소는 아연도철 평판, 물품 창고는 양철판을 가지고 이음을 하고 모두 "페인트" 는 쥐색을 도장. .
이원퇴식소 내부는 화풍(和風)으로 방한을 위해 건구는 대부분 양식으로 6조(畳) 1실, 3조 1실 취사장이 붙어있고, 이것을 감수원의 방에 붙이고 4조 반 1칸은 본국(本局) 직원이 각지에 출장할 때 일시 숙박소로 충당하는 외에, 3조 소사(小使)실에는 같은 부속 취사장 및 욕실을 구비함.
물품창고는 석유고는 1평 5합, 저납소는 1평 5합, 신탄(薪炭) 저장소는 1평 5합을 설치함
퇴식소 부지는 고등 부지보다 높기로는 4.5척으로서, 돌담을 시공하거 돌계단을 가지고 승강의 편리를 공여하고 또한, 고등 북동부에는 돌담을 축조하고 부근에는 잔디를 가지고 흙막이의 공법으로 시행하고 주위에는 독크식 배수도랑을 만들고 또 고등, 저등 모두 필요한 개소에는 6척마다 목재의 기둥을 세워 박고 가시철선을 치고 모두 구문을 설치, 저등은 구문을 폐문하고 상시 감수원을 두지 않고 또한 고등 감수원으로서 까치여(鵜ノ瀬, 제뢰) 입표를 감시하게 함
주) 부산도등은 1887. 4. 9. 설치된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등대로서, 부산해관에서 조선 주재 각국 공관에 등대의 위치와 등대 기능 등을 항해고시로 통보하였다. 1907년 일본은 당시 이미 설치된 도등을 개축을 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