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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2> Ep 13. 마지막 근무지 소청도등대 근무를 마치면서

작성일 : 2026.01.20 05:47

 

Ep 13. 마지막 근무지 소청도등대 근무를 마치면서

등대장 곽춘만

 

1975년 서해 최북단 소청도 등대에 발령이 나서 부임하였다.

 

소청도 등대에 근무하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등대 생활을 회상하고 나의 공직 및 사생활을 기술해 본다.

 

지난 35년이란 세월 절해고도에서 지내온 발자취를 회상하면 희비 고절이야 말할 수 없고 어느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서투른 글솜씨나마 생각나는 대로 대략적인 과거를 펼쳐 보겠다.

 

소청도등대는 북위 37° 455동경 124 °440에 위치하, 19081월에 점등하였으며, 등탑 백색 원형 콘크리트조 10m, 평균 수면상 83.3m, 3등급 후레날식 프리즘 렌즈 중추 회전식으로 석유 백열등으로 불을 밝힌다.

 

등질은 연섬 백광 매 20초 간격, 20초간 4 섬광, 6만 촉광, 광달거리 23.5 마일이며, 무신호 40초 간격 5초 취명하며, 음달 거리 9km이며, 인천과의 거리는 112마일 정도 되며, 인천과의 교통수단으로는 여객선 황진호와 송림호가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의 3개 섬을 왕래하고 있다.

 

교통 수단이래야 겨우 여객선 두 척이 다니고 있으며 북괴에서 자기들의 영해권이라고 주장한 후로는 여객선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어 1개월에 3 ~ 4회 정도 밖에 다니지 못하는 이곳 섬 주민들의 육지 왕래란 더욱 많은 고통이 있으며, 특히 생필품을 육지에서 가져다 쓰는 섬 주민이기에 적지 않은 고충을 겪고 생활해 나가고 있다.

 

이곳 소청도 등대는 등대장 곽춘만(58), 부인 정인순과 슬하에 61녀의 가장이며, 장남은 육군에서 월남까지 다녀와 제대하고 2남은 공군 제대, 3남은 현역 해병, 4남은 전투 경찰대원으로 육··공군·경찰이 한집에 있으니 어디서든지 일단 유사시면 보람 있게 적과 대항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나의 자랑과 긍지로 삼고 있다.

 

 

직원 박중식(32) 부인 노상녀 부부이며, 직원 김형주(25) 부인 오씨 부부이며 직원 이인환(32) 부인 김춘자 슬하에 11녀에 학력 아동은 없으며, 직원 3인이 나와 함께 등대를 지키고 있다.

 

일과 업무로서는 무선표지 발사, 발동 발전기 운전, 무신호기 운전, 등명기 렌즈 소제와 회전 장치 및 중추 상태 점검 등 가동 기계를 소용에 따라 운영하고 주· 야간을 통하여 당직을 하면서 소청도 등대 통과 선박의 감시와 기상 관측 (1910년부터 시행), 구내 시설물과 환경 정리를 하고 있다.

 

등대에서 생활하였지만, 나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고, 쓰고 싶어 적어 보면 5번째 자식까지는 고등교육까지 졸업시키고 앞으로 남은 두 아들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등교육까지 시키겠다는 각오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등대원들은 자식 교육이란 측면에서는 어려운 조건이 대단히 많다.

 

내가 인천지방해운국 등대 자녀 합숙소에서 두 아이를 입소시켜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정말로 저학년(7 ~ 8)의 어린 것들을 부모들이 인천에 데리고 나가서 입학시키고, 혼자서 애지중지하였던 어린 것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어린 것들을 떼어 놓고 돌아서기란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도 떠나려는 뱃머리까지 쫒아 나와 뱃머리를 움켜잡고 엄마 아빠 어데 가나 ?” 하면서 같이 출항하는 배를 따라오면서 우는 어린 것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떼어놓고 들어온 부모들의 심정, 며칠이고 눈물로 그리운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밤에 잠도 못 이루고 뜬눈으로 밤세우며,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 역겨운 심정이야····

모든 등대원들은 같은 고충일 것이라 생각한다.

겨우 방학이 되어 등대에 들어오면 그리웠던 어린 자식들을 부둥켜안고 그렇게 아쉬었던 온정을 쏟아 놓는다.

 

이렇게 하여 즐겁게 지내다 보면 어느덧 개학이 되어, 또 보내기 싫은 어린 자식들을 보내는 향학열의 심정, 내가 왜 고도의 섬 등대에서 살게 되었을까? 하고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등대에서 그나마 보람 된일이라 생각한다면 이렇게 모든 것이 불우한 위치에 처해 있음도 불문하고 오직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외로움도 서글픔도 일소에 붙이고 등댓불을 생명으로 삼고 밤마다 뱃길을 밝혀 줄 뿐이다.

 

황혼이 서산에 저물면 아니, 황혼이 서해에 빠져 들어가면, 옛날 사람들은 전설로 태양은 바다에서 나와 바다로 떨어진다고 했으니, 정말 동녘 하늘 바다와 맞닿은 사이에서 일출하여 서쪽 하늘과 바다 사이 경계선으로 해가 떨어지는 정경이야, 고요한 아침의 나라 지나간 날에 조선이라는 국호가 연상되기도 한다.

 

실로 이 아름다운 정경이란 어떻게 글로 묘사해야 좋을지 신비롭지만, 느껴보지 못하고는 자연에 대해 감탄한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햇살 저 태양처럼 온 누리를 밝혀주는 자연의 섭리 속에 우리는 아침에 떠오르는 저 태양에 희망을 걸고 밝은 온 세계를 향해 어떻게 보람된 일을 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도 해 본다.

 

때로는 장미꽃 빛으로 저녁노을이 온 하늘과 바다를 물 들여놓고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면 오늘은 내가 무슨 보람된 일을 했으며 잘못한 일은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지는 태양을 향해 맹세도 했다.

 

사방은 고요히 바다 위에 어둠의 장막이 내려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홀로 외롭게 보이는 것이란 깜박거리는 등댓불뿐, 이 불빛을 깜박거리게 하여 해상을 밝히기 위함이란 숨은 노력이 필요하다. 불빛이 돌아가며 해상을 비춰주는 시간은 40초가 한 바퀴로 20초는 어두웠다가 20초간 4회 불빛을 발광하여 소청도 등대라고 알린다.

 

빛이 발사되는 거리는 23.5마일(43km)이며, 이렇게 깜박거리는 등댓불이지만 주기적으로 매회 정확하게 돌아가며 비춰주는 섬광 시간이 정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불빛이 깜박거리는 시간의 정확성으로 항해하는 선박들이 보고 식별한다. 이 중에는 돌아가며 비춰주는 회전식 등명기와 제자리에서 돌지 않고 점등되고 소등되는 점멸식 등명기로 구분한다.

 

근거리에서는 돌아가는 것이 보이나 원거리에서는 돌아가는 것을 알 수가 없고 그대로 깜박거릴 뿐이다.

 

이렇게 각각 등대 불빛을 비추는 시간을 달리 함으로서 쉽게 식별하고 밤에 항해하는 선박들이 뱃길에 방향을 찾고 지리를 판단 한다. 등대의 사명은 등광, 형체, 도색, 음향, 수기신호의 항로표지로 항해 선박으로 하여금, 자선에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보다 능률적이고 경제적인 운항을 도모함에 있고 국가나 개인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함에 있다고 보겠다.

 

등광을 발휘하기 위하여 축전지, 발동 발전기, 등명기, 전구 등이 필요하며, 축전지는( 유리전조 2V 180 AH) 52개를 사용하고 취급에 세심한 주의력과 기술을 요하며, 만약 잘못 다루면 아주 못쓰게 되어 심지어는 등댓불조차 끄게 되는 일이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취급상으로 보면 언제나 정비 점검하여 과충전과 과방전하지 않고 규정 전류 이상 방전하지 않고 전해액 전량을 보충하여 주며, 비중 및 전압을 항상 측정하고 단락을 방지한다.

 

발동 발전기는 국산으로 마산에 있는 진일 공장에서 제작된 발동기(16마력) 2기 발전기(4Kw) 2, 적시 운행 중엔 오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항시 이상 유무를 파악하고 있다.

 

축전지는 2V52개이니 104V를 쓰며 발동 발전기(16마력, 4Kw)로 축전지를 충전해서 쓰고 있다. 발동 발전기를 동작하기 위하여 경유를 사용하며, 유류 보급은 국가 예산으로 인천지방해운국 등대 보급선 제1인성호와 제2인성호 이 두 척의 표지선이 순회하며 보급해 주고 있다.

 

보급받은 유류는 선창 유류 탱크에 저장하며, 등대원들의 인력으로 등대까지 지게로 운반한다.

 

노동자 중 기름 장수 지게꾼과 다름없으며 앞으로 상부 당국과 국가에서는 운반하는 대책을 세워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소위 국가공무원이란 허울 좋은 명색이지 지게를 지고 기름을 운반하기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책상 앞에서는 매일 펜이나 잡고 정신적인 고충은 별반 없다. 하지만 육체적인 노동은 노동자 중 상 노동자라고 생각된다.

 

국가기관이므로 국가 예산으로 모든 업무를 집행하여 나가고 있으니, 사리에 적합하도록 예산의 소비처가 헛됨이 없어야 하며 적절한 운영을 바란다.

 

동절기 때는 기관이 냉각되어 기동이 좀처럼 되지 않아 이른 새벽잠도 제대로 못자며, 물을 끓여다가 몇 번이고 부어 발동 발전기를 가동시켜 축전지를 충전해서 등댓불을 점등한다.

 

등댓불을 점등하는 등대 탑의 높이는 10m 내외이며, 탑 안에 등명기를 장치하고 통용 100V 500W 백열전구를 등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적은 와트를 가진 전구이지만 유리로 제작되어 렌즈 각도에 맞추어 렌즈 중앙으로 빛을 모아 발산하는 렌즈를 통하여 발광하게 되므로 원거리에서도 항해 선박이 발견할 수있다.

 

현재 소청도 등대는 신설 당시부터 프랑스에서 제작한 렌즈가 부착되어 있으며, 과거에 건립한 등대는 대부분 프랑스에서 제작된 렌즈를 사용하며, 현재 건립하는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조립한 제품을 쓰고 있다.

 

때로는 돌아가는 등명기가 고장이 나서 등탑 위에서 밤 새워가며, 손으로 등명기를 돌려 날이 새도록 뱃길을 밝히기도 한다. 발전기도 기계니까 고장이 나면 특별한 전문 분야 엔진 기술자가 아니고 취급자이기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어떻게든 발전기를 수리하여 충전해서 등댓불을 점등하고 뱃길을 밝혀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다.

 

등댓불을 끄게 되면 비와 눈에 장님이 되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견딜 수 없다. 그리고 무신호, 이것은 안개가 많이 끼어 배들이 앞이 보이지 않아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메일 때 공기압축기(콤프레샤)로 공기를 내어 공기저장탱크에 저장하며, 저장탱크 5개가 있는데 한 개 저장탱크에 10까지 넣어 5개에 50넣고 공기로 싸이렌을 돌려 소리를 발사해 준다.

 

콤프레샤(미국 CP사 제작 45마력) 2, 이것도 소리를 개성 있게 시간에 맞추어 소리를 조정하는 시간 계전기가 있다. 이곳 무신호 음향으로는 40초 동안 소리가 없이 5초 동안 소리를 낸다.

 

계속 반복되며, 음달 거리 9까지 나간다. 이것도 역시 등댓불과 마찬가지로 개성있게 각기 다른 등대가 달리함으로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알 수 있으므로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등대의 업무량은 다양하다. 축전지 취급 기술자, 내연기관 취급, 일반 전기, 항로표지 기능 등을 알아야 한다. 옛날에 아세찌린 가스통을 점등할 때와 현재 등대는 업무량이 많으며,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것으로 등대의 소개는 끝내고 여기 소청도, 2 제주도를 소개한다. 도박 없고 술먹지 않는 마을 언젠가 신문 지상에도 소개되었다. 도박 없고 금주의 마을이라고···

 

새마을사업이 잘된 곳이기도 하다. 지붕개량, 신식 주방 개량, 주택 정리, 마을 화단 가꾸기, 선착장 방파제 쌓기, 도로 정비 등 비교적 단계적으로 잘 정리 되어가고 있다. 제주도에만 해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소청도에 와서 해녀를 보게 되어서 제주도를 연상케 한다.

 

해녀가 소청도에 있냐고 의아스럽게 생각된다만 해삼, 전복, 성게, 미역, 소라 등을 잡고 따니까. 그리고 소형어선으로 까니리, 홍어, 조부락, 우럭등을 낚아오며, 고구마, 감자, 보리, 채소 등을 조금씩 심어 먹는다.

 

주업은 어업이니까 해산물은 풍부하나 교통수단이 없어 불편하며 교통수단이 좋지 못하니 판로가 없으며 여객선 2척이 왕래하는데 잘 다녀야 1개월에 3~4회 인천까지 왕래할 뿐 별다른 교통수단은 없다. 이로 인해, 이곳 주민들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에 쪼들리다 못해 심지어는 부녀자들이 해녀가 되어 보겠노라고 바닷속에 풍부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잠수하는 것이 지금은 거의 제주도 해녀 이상 가는 잠수를 한다.

 

연약한 여자, 채 피기도 전에 아리따운 처녀의 몸으로 바다에 함박 하나만을 남겨놓고 잠시 푸른 바닷속으로 해삼 전복을 잡기 위해 없어졌다. 다시 나와 못 내쉬는 휘파람 소리는 그 무엇인가? 여자로 못다 한 절규나 호소 하는 듯 사방이 고요한 바다에 적막을 깨뜨린다.

 

이렇게 잡아 오는 전복, 해삼, 성게, 미역이 돈벌이가 되어 가정생활에 조금씩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겨우 심심풀이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이곳 주민의 생활상태는 더욱 어려운 상태며, 때로는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지내는 섬 주민에게 불안과 위협을 주는 듯 북괴 함정들이 섬 주변에 나타나 공연히 섬 주민들을 흥분하게 한다.

 

나에게 총이나 포가 있다면 당장 일발에 명중시켜 격침시키고 싶은 때가, 한두번 아니다. 어째서 남쪽 해상을 제멋대로 들어와 우리 어선에 공포감을 주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무서울 것은 조금도 없다.

우리의 철통같은 방어에 거창한 함정과 바다를 지키는 해군, 귀신 잡는 해병대가 보호 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197421510시 소청도 서방 30마일 지점 공해에서 양과 같이 순수하고 평화롭게 고기잡이하는 어선 (수원 32, 33)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심지어는 간첩선이라고 끌고 가는 그날 하느님께서도 보시고 노하셔 비가 내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고 지금도 그날의 분노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울분의 하루를 보냈다. 이 시간도 그 어부들은 간악한 북괴 괴수들에게 뼈를 도려내는 듯한 고문과 모략에 들뽁기고 있을 어부들을 생각하면 서글프고 무엇에다 이 원통함을 다 풀어 놓아야 할지····

 

숙연한 자세로 하느님께서도 살피고 계셨건만 어찌 추악한 악당들에게 천벌을 내리시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냈는지, 말 없는 침묵의 반문으로 울먹였다.

 

어쩌면 하루라도 속히 하느님의 은총이 내려지지 않을까? 기다리는 마음뿐이다. 그것도 밝은 세상 대낮에 공해상에서 조업하는 어선을 간첩선이라고 끌고 가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

 

뱃길을 밝히며 무사히 돌아오도록 안전 항해를 돕는 것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뿐이다. 육신이 어디 한군데 떨어져 나간 것마냥 음성은 떨리기만 했다. 죄 없는 내 남편을 돌려 보내다오! 불쌍한 우리 아빠 빨리 보내라 사랑하는 처자 부모들의 울부짖던 그때 온 겨레의 함성이 방방곡곡 천지를 진동하던 그날. 지금은 이렇다 할 일언방구 뉘우침도 없이 넘겨버리는 북괴.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야수적인 이리떼와 같은 무리들·····

언젠가는 선량한 양들에게 저질러 놓은 죄를 짊어지고 불바다 끓는 가마솥으로 들어 갈 날이 멀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등대를 지키며, 또는 수원 32.33호의 피납 때 어부들에게 당부한 것이란 개인의 영리와 국가 생산고를 올리기 위해서는 생사 불문하고 조업해야 하지만 위험하게 어로한계선 근처에 가서 조업하지 말고 좀 적게 잡더라도 한계선 남쪽에서 고기를 잡으라고 당부했다.

 

개인의 국방이 온 우리 대한민국의 국방이 되니까. 만일 개인이 잘못하여 북괴에 끌려갔다면 거기에 따르는 선원의 가족과 국가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분노에 찬 치욕적인 일인가?

앞으로 어선에 종사하는 여러분께 고하고 싶다면 개인의 안전은 개인이 참작해서 위험선까지 가서 조업하지 말고 각별 유의하여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게 당부하고 싶다.

그리하여 다 같이 자유스러운 테두리 안에서 평화롭게 자유를 누리며 지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것이 소망이다.

 

19776월 등대원으로 정년 퇴임하고 인천에 집을 짓고 살다가 197811월 의정부로 거주지를 옮겨 동네에 상수도 없어 약 4개월 만에 산에서 물을 끌어 준공하였다.

 

그해 사단법인 범골번영회 부회장에 선출되어 동네 살림에 많은 공을 들였다. 가정을 꾸리기 위해 젖소 목장도 운영하고 논농사를 짓기 위해 논 6백 평을 구입하고, 부리는 소도 일군을 두어 일당 3만원을 주고 키웠으며, 부업을 겸하여 하숙집을 하려고 5개월 계획으로 방 17개가 딸린 건물을 건축에 임하고, 부락 노인정을 반지하 슬라브 지붕(34)으로 건축하였다.

 

이와 같은 공적으로 1985년 지역조합에서 주는 모범 표창을 수령하는 등 등대 생활에서 몸 베었던 근면을 앞세워 퇴직 후 생활도 나 자신과 지역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이는 곧 선박 안전 운항으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였던 사명감을 잊지 않고 실천할 따름이다.

 

현재도 낙도 오지에서 외로움을 달래며, 근무하고 있는 등대원들은 이제 등대의 장비도 그리고 기술과 생활도 현대식으로 많이 변하고 등대원의 처우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하니 더한층 조국 발전과 선박 안녕을 위하여 분발하여 주기를 부탁하면서 지난날 조국이 어려웠을 때 우리 등대원들의 생활도 어려웠지만, 조국 근대화가 이루어져 뿌듯함을 느끼면서 지난날의 등대 생활을 회상하면서 남겨놓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두서없이 글을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