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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16. 진경옥

작성일 : 2026.01.17 08:40

부산의 시인

 

16. 진경옥

최근에는 남자 시인들보다 여류시인들의 숫자가 훨씬 많지만 197-80년대에는 시인들 행사에는 남자 서너 명에 여류 한 명꼴로 여류시인들이 드물었다. 특히 문인 단체의 집행부는 주로 남자 문인들이었는데 구색을 맞추느라 한두 명의 여류를 집행부에 포함시키곤 했다. 필자가 문협 사무국장이었을 때 일곱 명의 부회장 중 두 명의 여류가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진경옥 시인이다. 처음 진경옥 시인을 뵈었을 때 느낌은 평범한 아주머니 타입의 큰누님 같은 인상이었다. 덩치도 크고 선한 얼굴에 시인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당시 여류시인은 대개 톡톡 튀는 새침떼기의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여겼는지 모른다. 그런 진경옥 시인이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등 교사로 봉직했고 시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모에서 느낀 이미지보다는 좀 더 인텔리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시인의 시인으로서 긍정적인 면모가 드러나곤 했다. 덩치만큼이나 말씀이나 행동에 무게가 있었다. 꼭 필요한 말만 적재적소에 조용히 하시면서 늘 웃는 편이었다. 그리고 한 번씩은 진심을 담아 필자에게 수고한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2000년 부산문인협회 야유회는 경남 남해, 필자의 고향 마을에서 1박으로 갖게 되었다. 고향 마을 뒷산이 구두산이다. 구두산의 평평한 구릉과 정상은 남해대교를 비롯해 주변 강진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정말 경치 좋은 곳이다. 그곳은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거의 해마다 빠지지 않고 소풍을 갔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우리 지역 출신 어느 사업가가 산장을 세워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우리 고향마을을 알리곤 했다. 그곳에 100여 명의 문협 회원이 관광버스를 이용해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첫날 오후 시간에는 행사 일정에 따라 한 시간 정도 필자의 고향 소개 중심의 간단한 특강이 있었다. 구두산 소개를 하고 필자의 어린 시절과 문학을 하게 된 사연 등 그런대로 특강을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에는 글자 그대로 음주가무의 정말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기억된다. 사실 그날 몇 명은 술 때문에 저지른 실수(?)가 너무 커 훗날 두고두고 회원들 눈치를 보아야 했다.

야유회를 다녀오고 몇 개월 뒤 진경옥 시인에게서 새로 나온 시집이 왔다. 제목은 길을 묻는다였다. 그런데 책갈피에 이런 내용의 쪽지가 들어 있었다. “시집에 나오는 눈물이란 시는 야유회 때 박교수님 특강하는 것 보고 지은 시입니다. 예쁘게 봐주세요.눈물을 읽어봤다. 필자가 그때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훔쳤단다. 그게 좀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그때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회상하면서 조금은 센티해졌지만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진경옥 시인이 고맙기까지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집을 찾아 눈물을 올려 보려 해도 시집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맺어진 진경옥 시인과의 인연이지만 그 뒤에는 오랜 기간 만날 일이 없이 언젠가 부음 소식만 전해 들었다. 필자가 정말 존경했던 우리 문인 중 한 분이다.

진경옥 시인의 자료를 찾아보려 했으나 좀체로 찾기 어려웠다. 인터넷을 뒤지고 AI를 동원해도 기껏 1939년 생인 것, 그리고 몇몇 시집 제목이나 간단한 시집에 대한 평들뿐이었다. 진경옥 시인의 시들은 우리 삶의 정체성, 존재에 대한 뿌리 찾기 등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묻고 있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그만큼 깊이 있는 시를 썼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시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언어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의문을 독자들과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경옥 시인은 시인다움의 표본일 수 있는 것이다. 남송우 교수도 진경옥 시인의 시에 대해 진경옥 시인은 절망을 통해 삶의 진정성에 가 닿으려는 언어의 몸짓을 그리움으로 주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꽃피는 눈부심과 지는 아픔을 다함께 사랑하며 가련다고 속삭인다>(꽃이 지면서). 꽃의 운명이 <피면서 바로 하얗게 바래이는>(찔레꽃) 모습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고통과 절망의 인식을 통해 영혼에 깃들 언어를 찾아내는 시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이는데 이런 모습은 불을 스쳐가는 작은 바람(1980), 풍경을 지우면서(1987), 또 다른 그리움으로(1991), 불빛처럼 간혹(1994), 길을 묻는다(2000)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문협 사무국장을 하던 때가 1995년 초부터 1998년 초까지였다. 그러니까 30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40대 초반의 팔팔하던 필자도 이제 70 나이를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난 지 한참 되었다. 당시 5,60대의 회장, 부회장들도 이 세상 사람 아닌 분이 많다. 사실 그때는 이사회 같은 회의에서 별것 아닌 문제들로 회장단이나 분과장들과의 논쟁이 제법 있었다. 그럴 때면 필자는, ‘정말 문인들은 말도 많고 다투기도 잘하는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었다. 필자도 한번은 어느 분과장과 다투고 난 뒤 그만두겠단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럴 때면 진경옥 시인은 아무 말도 없이 빙긋이 웃으며 앉아 있곤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세상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달은 진경옥 시인의 시인으로서 풍모가 생각 난다.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