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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칼럼/ 희망은 기다림이 아니라 결심이다
작성일 : 2026.01.05 12:43
희망은 기다림이 아니라 결심이다
/윤일현 시인·
한 해의 끝자락, 다사다난했던 2025년의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세계는 올 한 해 거센 격랑 속에 있었다. 총성과 포화가 대륙을 갈랐고, 강대국의 욕망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일부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어떤 분쟁 지역에서는 식량이 총보다 귀했다. 세계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불황의 그림자는 질기게 달라붙었다. 그 어둠은 국경을 넘어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장바구니는 날로 가벼워졌고, 청년의 미래는 안개 속에서 흔들렸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때나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물가는 치솟고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인건비, 임대료, 원가까지 올라 곳곳에 셔터를 내린 점포가 늘어났다. 그때마다 거리의 체온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플루타르코스는 “도시는 사람의 숨으로 살아 움직인다.”라고 했다. 올해 우리의 도시는 숨이 가빴고, 가늘어졌다. 농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정쟁의 불장난에 손을 떼지 못했다. 민생이 무너지고 삶의 바닥이 흔들리는데도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돌 던지기에 몰두했다. 위기 앞에 머리를 맞대지 않았다. 진영 싸움과 책임 공방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곳곳에서 신음하는 무수한 삶을 보면서도 책임은 늘 상대의 몫이었다. 상가의 불은 꺼지고, 가계부를 펼치기가 두려운 동안, 정치의 언어는 거칠고 험하고 비겁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현실을 구하는 기술이어야지, 현실을 소모하는 기술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 말을 너무도 태연하게, 철저히 외면한 한 해를 보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혹독한 한기는 추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무감각한 체온 때문이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시민들은 한 해를 묵묵히 버텨냈다. 버틴다는 일은 때로 화려한 희망보다 더 고귀하다.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균열 속에서도 가게 문을 열고 일터로 향하며, 삶의 자리를 지켰다. 작지만 배려가 담긴 친절, 미약하지만 단단한 연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 한마디가 한해를 떠받쳤다. 공자는 ‘논어’에서 “어진 이는 곤궁해도 무너지지 않는다(仁者不憂)”라고 했다. 끝까지 남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삶을 실제로 견인하는 것은 조용한 실천의 힘이다.
연말의 풍경은 차갑지만, 차가움이 곧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둠이 깊다는 것은 빛이 가깝다는 신호다. 헬렌 켈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진정한 낙관주의자다”라고 말했다. 희망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며, 우리가 부르기를 기다린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곧게 세운다면, 어느 날 그 고요한 숨결이 우리의 등을 밀어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새해가 밝는다고 세상이 단숨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고, 경제 회복의 길도 험난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제자리를 맴돌며 민생을 외면한다면, 어둠은 더 짙어질 것이다. 정치권의 각성과 책임을 촉구한다.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를 흔드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라고 했다. 희망은 누군가가 내려주는 선물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켜야 할 마음의 등불이다.
세밑의 어둠은 한 매듭의 신호일 뿐, 시작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다. 이 겨울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새로운 시간의 발자국은 이미 우리 곁에 닿아 있다. 우리가 그 소리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들 때, 내일은 열린다. 어둠은 언제나 빛을 시험하기 위해 존재한다. 희망은 기다림이 아니라, 매일 새로 다져야 할 결심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끝내 눈을 들어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이 되려는 용기다.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