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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부산의 시인들> 14.이해웅

작성일 : 2026.01.05 12:35

부산의 시인

 

14. 이해웅

이해웅 시인(1940-2015)은 부산 기장군 출신이다. 지금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당시에는 경남 동래군으로 한 때는 경남 양산군으로 지금은 부산 기장군으로 지자체의 소재지가 시시때때로 변했던 곳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동해남부선 기차 통학을 했고, 부산교대를 다닐 때는 아마 부산에서 자치나 하숙을 했던 모양이다. 최상윤 교수께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다. 한번은 교대를 같이 다니던 이해웅 시인 하숙집에 가게 되었는데 마침 식사 시간이라 그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푸짐하게 나온 상차림 때문에 무슨 날이냐고 이시인께 물었더니 오늘이 이시인 생일이더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최교수님도 그날이 생일이었던 것이다. 생년월일이 똑같은 관계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생일도 모르고 다니던 처지가 서러워 눈물밥으로 남의 생일상을 함께 받게 되었던 이야기다.

이해웅 시인은 필자와도 교대 선후배 관계여서 일찍 대학원 때부터 여러 격려와 지원을 받은 사이였다. 그런데 둘 사이에 금이 가는 사건이 하나 생겼다. 당시 필자가 한국어문교육학회라는 학회의 출판이사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 그해 말 나오는 학회지의 출판을 위해 정해진 인쇄소에 들락거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학회지 출판은 전문 출판사보다는 주로 인쇄소에 그대로 맡기는 편이었다. 그런데 마침 새로 뽑힌 학회장인 이해웅 시인이 학회지를 다른 출판사로 옮긴다는 거였다. 본인과 관계가 있는 출판사였다. 그래서 필자가 다음 호 때부터는 옮기더라도 이번만은 원고도 일부 넘어간 상태라 안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옮겨야 된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 인쇄소에 사정을 말하고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필자도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몇 개월 뒤, 중앙동 이상개 시인이 운영하는 주점에서 필자와 몇몇이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다. 마침 그때 이해웅 시인을 비롯한 정진채, 임수생, 류명선 등 문인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잔하고 2차로 필자가 있는 주점으로 들어왔다. 필자는 다 아는 이들이라 일어서 모두를 보고 한 번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우리들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러자 바로 이해웅 시인의 큰소리가 들렸다.

박홍배! 내한테 감정있어? 왜 나에게는 인사 안하는 거야! 사람이 그러면 못써!”

평소에 하대도 잘 하지 않았는데 술김에 내뱉는 감정 섞인 말씀이 거칠었다. 참 난감한 순간이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기분 나쁜 듯 얼굴 붉히며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해웅 시인은 1973년 시집 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시인이다. 그리고 1977년에 나온 두 번째 시집 반란하는 바다에서는 시인이 바다 가까이 살면서 겪었던 여러 체험을 상징화시킨 그의 시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표제작 반란하는 바다밤마다 들려오는 / 천식을 앓는 저 바다의 기침소리에서 알 수 있듯 강렬한 현실 비판의 이미지를 통해 부조리한 물질문명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염색공장 下水口를 빠져나오는 시커면 피가 / 바다의 血管 속으로 흐르고 있다라는 구절은 오늘날 환경생태적 인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받기도 했다. ‘초기의 모더니즘적 이해웅의 시들이 후기에는 리얼리즘적 인식에 의해 현실세계의 여러 부정성을 비판하는 참여시적 경향의 작품을 보이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삶에 대한 인식이 밑바탕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준오 교수는 분석하고 있다.

이후로도 씨족마을(1983), 먹고 사는 일(1986), 겨레의 한(1989), 눈짓으로오는 소리(1991), 잠들 수 없는 언어(1993), 습관성 연구(1995) 등 꾸준하게 시집을 발간하면서 부산 시단의 튼튼한 주춧돌로 자리매김 되고 있었다. 특히 1982년 창립된 시와 자유동인에 이어 전망동인에 이르기까지 동인지를 통한 부산의 시운동에도 누구보다 적극 참여한다. 그 정정하시던 이해웅 시인이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다. 일반인들이라면 수술로 치료될 수 있었는데 평소 복용하던 아스피린 때문에 지혈이 되지 않아 수술을 할 수 없었단다. 참 안타까운 죽음이다. 부음을 들었을 때 필자의 마음도 쓰렸다. 아마 출판사 건으로 생겼던 갈등 때문에 더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얼마 전 가보았던 이해웅 시인의 고향 동네 좌천 바닷가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가을 지나고 / 조금씩 어두워 오는 계단을 지나 / 칠흑의 어둠 속으로 내려가면 / 칼날에 귀 떨어진 사람 많이 보이고 / 파도 소리 은은한 절벽 위에 / 등불 들고 마중 나온 천사들” (이해웅, 동백꽃전문)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