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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12.29 08:33
Ep 10. 등대의 이삿짐 운반
등대장 곽춘만
부도 등대에 근무하다가 1968년 5월1일 선미도 등대장으로 발령을 받고 등대 사무 인수인계를 하고 이삿짐을 등대 보급선에 싣기 위해 연평도 동네로 운반하였으나, 풍랑이 심하여 표지 보급선이 연평도에 들어오지 못하여 부두에서 배가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느라 밤새 잠 한숨 못 자고날을 지재웠다.
다음 날 날이 밝았으나 일기는 여전하여 연평도 부두에 보급선의 접안이 어려워. 소형 어선으로 이삿짐을 등대 보급선까지 운반하기로 하고, 부락에 부탁을 하여 선박 2척을 빌려서 이삿짐을 배에다 싣고 등대 보급선까지 나아가는데 파도가 심해 가는 도중에 짐짝이 몇 번이나 물에 떨어져서, 짐짝을 다시 물에서 건져 올리면서 어렵게 이삿짐을 표지선까지 무리하게 가서 적재하였다.
등대 보급선에 이삿짐을 내려 놓은 이후에도 풍랑은 점점 더 심각해져 이삿짐은 배 안으로 넣고, 닭 30마리는 배 위 갑판에 놓고 사방으로 단단히 묶어 놓았으며, 가족들이 배멀미가 심하여 사람만 다시 육지로 내리게 하고, 다음 날 5시에 소청도로 출항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새벽 5시에 기상이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연평도항을 출항하여 약 20분간 항해하던 중에 갑작스런 돌풍을 만나 배 위에 적재된 소소한 살림살이가 날아가고, 닭장도 부서져 30마리의 닭이 분산되니 바다 위에는 갈매기가 앉은 것처럼 흩어져 있었다.
등대 보급선은 바다 위에 흩어진 갈매기 아닌 닭을 건지려고 하였으나 워낙 심한 파도 속에서 건져내지 못하고 겨우 3마리를 건져내 배에 실었으나 1마리는 배에서 볶아먹고 2마리만 겨우 살렸다.
그러는 중에도 배는 소청도를 향하여 가고 있으며 거센 파도에 휩쓸려 배에 탄 사람들이 거의 다 멀미를 하는데, 나는 가족들이 멀미가 심하여 안타깝게 지켜보며 파도가 거세어 선원들도 갑판을 다니지 못하는 파도 속에서 긴 항해를 견디어 내고 연평도를 떠난 지 12시간 만에 소청도에 당도했으나 선창에는 성난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 전마선을 대지 못하고 후면 북서방향의 지점에 정박하고 사람만 소청도에 상륙하여 등대에 올랐다.
소청도 등대장의 숙소에서 유숙하고 다음 날 날씨가 좋아져서 소청도에 기름 및 기타 보급품을 보급하여 주고, 인천에 갈 물품을 싣고 소청도 항에서 하루를 더 정박한 후 다음 날 일찍이 가족들과 함께 승선하여 05:00경 소청도를 출발하여 선미도 등대 쪽으로 향해 가는데 일기가 좋아서 바다는 명경 바다같이 잔잔하여 멀미하는 사람도 하나 없이 모두 갑판에 나와서 수평선 위 그려진 먼바다를 구경하며 오순도순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바다가 조용하기만 하다. 들리는 소리는 배에 엔진 소리뿐. 바다 위 갈매기가 때 지어 ‘끼륵끼륵’ 인사를 하여 주는 듯 배가 가는 앞으로, 뒤로 나르며 길을 인도하는 듯하였다. 등대원은 평상시에도 갈매기와 벗을 삼으나 잔잔한 망망대해 위에서도 잡힐 듯이 가까이 날으니 한층 이색적인 기분을 나타내어 준다
소청도 항에서 약 7시간 항해하니 섬이 보이는데 아련히 보이는 것은 잃어버린 땅, 북한 땅이 아니드냐. 하는 애틋한 감정을 지니며 계속 항해를 하여 소청도를 떠난지 10시간 50분 만에 선미도 등대 앞 까지 도착하였다.
하지만, 섬 주변에는 큼직한 파도가 밀려왔다 빠졌다하여 전마선을 댈 수가 없으니, 선장도 선미도에 내려야하는 우리 가족과 어린아이들을 보아 선박을 부두에 직접 접안하여 등대에 상륙시켜 줄 노력을 부단히 하며 애를 썼으나 결국 대지 못하고 덕적도 쪽으로 피항을 가기로 하고 항로를 돌렸다.
바람이 남서풍으로 계속 3일을 불어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덕적도 여관에서 가족과 함께 3박을 하던 차에 다시 날씨가 온화하여져서 선장이 선원을 보내어 배가 출항한다고 연락을 하여왔다.
여관비를 계산하고 가족들을 동반하여 다시 등대보급선에 승선하여 덕적도 북리항을 출항 약 1시간 항해하여 선미도 등대 선창에 도착하여, 소형 전마선으로 등대 보급물품과 이삿짐을 풀기 시작하여 긴 시간을 거쳐 하륙시키고 등대 보급선은 다시 목덕도 등대쪽으로 출발하였다.
오랫동안 파도에 시달리다 고생 고생하여 등대에 상륙하여 가족들을 등대에 올려보내고 직원들과 함께 하륙 된 보급품 및 이삿짐을 정리 정돈 하던 중 선미도 부락민 4명이 와서 인사하고 함께 중간 창고까지 날라준다. 등대에 올라 와서 등대 구내와 주변을 순시하고, 등대 점등 후 부락민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부락민들에게 “미안하지만 내일도 이삿짐 운반을 좀 하여 달라”고 부탁한 후 잠자리에 들어 오랜 여독에 피로가 한꺼번에 겹쳐와 곤한 잠에 빠졌다.
다음날 눈을 뜨니 늦잠을 잔거 같아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동녘 하늘에 해가 솟으려고 붉으스레 하였다.
등대에서 일출 광경을 바라보니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지는데 아침을 먹고 사무 정리를 하던 중에 부락민들이 등대에 와서 직원들과 함께 아삿짐을 날라다 정리하는데 생존해 있던 암탉 2마리가 여전히 살아있었다.
모이를 주었더니 아직도 건강한 상태로 모이를 잘 먹었다.
완전히 이삿짐 정리도 끝나고 등대 업무에 착수하여 가며 닭 2마리를 잘 먹여 알을 까는 닭 1마리를 더 사서 관리를 잘하여 약 80마리의 닭이 되어 다음 해부터는 계란을 생산시켜서 학생 2명에 대한 학비를 해결하여 주었다.
선미도 등대는 광복 후(1945년 9월∼1948년 3월) 약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등대이다. 일명 악험도라 하여 해안가의 절벽으로 사람의 접근이 어렵고, 등대가 높은 산 위에 설치되어 선창에서 등대까지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등대를 오르는 산 중턱에는 텃밭을 가꿀 곳이 많은 등대이기도 하며, 고기도 농어, 우럭을 잡으러 다니기만 하면 반찬은 충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