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광복80주년에 보는 등대 역사
작성일 : 2025.12.22 10:41
14. 태종대등대(영도등대_의 신설이유와 설계 개요
김민철 (공학박사, 등대전공), 석영국(등대 역사전문가)
한국세관공사부등대국 제1년보에 기록된 세관공사 창립 이래 등대건설의 계획을 기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래 한국 연안의 연장은 약 1,800해리이며 서안 및 남안은 무수한 섬과 암초가 흩어져 있고, 동안은 지세가 비교적 평탄하며 현저한 산 정상이나 곶이 적다. 더하여 해조의 간만의 차이는 동양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차이가 있으며, 특히 해류가 급격하고 해무가 잦은 이유로 인해 늘 항해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곳이므로 왕왕 해난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한국을 일본제국의 보호하에 속하여 통상 무역의 발달에 따라 선박의 교통이 날로 빈번하게 되ㅇ여 가는고로 이에 안전을 계획하자면 아직도 장래 주요한 지역을 상대로 수 많은 등대를 건설하는 것은 가장 급한 사업이다.
이에 한국 전 연안에서 등대 건설이 예정되는 위치를 안분하면, 전 해안을 10개 항로로 나누어 그 건설의 완급을 계획하고 이중 가장 급하게 설치를 요하는 것을 제1기의 사업으로 하고, 기타의 것은 제2기 사업으로 하고. 전국 연안을 통하여 건설을 요하는 등대 기타 총수를 들면 등대 35기, 계등부표 5기, 입표 3개, 부표 50개, 무경호(안개 경보 장치) 11개소 및 가스 증조소 1개소로 총계 105개소이다.
메이지 39년(1906년)에 있어서는 부산 항로의 절영도, 부산 도등 개축, 원산 항로의 수원단, 여도, 장덕도 및 인천항로의 옹도(瓮島) 외 6개소의 등대와 군산항로에 입표 3기, 부표 5개소를, 원산항에 부표 2개소를 설치하기로 하고, 1906년부터 1907년에 이르러 계속사업으로서 한강, 대동강항로의 소청도 및 서안항로의 죽도 2개소를 건설하기로 하고 현재 착수 단계에 속한다.
이후 예정대로 그 공사가 순조롭게 진척되어 절영도 이하 6개 등대 및 군산 입표, 이어서 군산 및 원산의 각 부표 공사가 모두 금년 말에는 준공을 완료할 것이다.
메이지 39년(1906년)에는 등대 기타 신설한 것 및 동년부터 1907년까지 2개년간의 계속 시공에 관련된 것, 이제 그 신설 이유 및 설계의 개요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 절영도 등대 (제4등3연섬광등, 현재 영도등대)
1) 신설 이유
본 등대의 위치는 한국 경상남도에 속하는 부산항구 절영도의 남동단 입암각(立岩崎)의 남각에 있으며, 대마해협의 서수도에 면하고 26해리를 격하여 일본의 대마도와 상대(相對)한다.
부산항은 한국 유일의 양항으로서 또한 남문의 요지로서 이 연해는 항상 조류가 급격하게 심하며, 동시에 농무(濃霧)가 많고 때로는 부산항구의 좌측에 위치한 갑각(岬角)인 승두말(蠅頭末)과 해당 위치를 혼동하기가 쉬워 항해자가 가장 고심하는 곳이다.
이제는 한일의 교통이 빈번함으로서 일본 각 항 및 한국 제항(여러 항)부터 부산항에 출입하는 선박은 아주 많은 것으로서 이 지점에 등대와 무신호를 설치하고 본 항의 항구에 길잡이하먀 해당 위치에 떨어져았는 20해리의 권내에 내항하는 선박은 즉시 부산항의 방향을 인정하고 안전하게 입항할 수 있다.
따라서 본년(1906년) 5월 21일부터 신설 공사에 착수하여 동년(1906년) 11월 30일을 기하여 준공을 보게되었다.
2) 설계의 개요
본 등대는 콘크리트조(造) 방형으로 외부는 백색 도장으로 내부는 시멘트 몰탈로 도장을 하였다. 높이는 기초부터 등화에 이르는 7.87m(25尺)로서, 기초는 해면 상 높이 43.9m(145尺)로 절벽위에 굴착하였다.
건축 부지는 지극히 협소하고, 전후 양측에는 수m의 돌담을 축조하고 통로를 가지고 있으며, 한쪽은 무신호사가 있고 그 옆 한쪽은 등대의 기초면에서 높이 2.12m의 이원 퇴식소(등대직원 숙소) 부지가 옆에 있다..
탑의 높이는 콘크리트 6.06m(20척)로서 이것을 2분하여 3.03m(10척)마다 목재를 가지고 마루들보를 이루고, 제2층을 가지고 사무실 및 저납소에 충당하고 페인트 도장으로 벽장을 설비하고 등기와 기타의 예비품을 비치한다.
제3층은 전과같이 마루로 하고 동벽의 외부는 마루소이드를 가지고 이응을 세우고 그 상부에 연철성 동벽을 설치하고 이것을 등실로하고 등롱의 외부의 사방에는 철제 손밥이를 설치하고 동벽에는 8개의 기둥을 세워 박고 여기에 두터운 유리를 가지고 전 둘레를 둘러싸고 지붕은 동판을 가지고 이응을 올리고 정부(윗부분)에는 유연발출구를 설치하고 풍향계 및 방위침을 설치하고 피뢰침을 부치고 퇴식소 저수지 하부에 도달하도록하고 동벽 및 등롱 모두 외부를 모두 백색 페인트 도장으로 한다.
등실 바닥은 초를 입힌 표목을 가지고 박아 부치고 동벽과 내부 판벼의 사이에는 석면을 빈틈없이 채워 넣어 방한 및 방화용으로 사용한다.
제1층부터 제3층에 이르기까지 철제 폭 0.6m(2척)의 사다리를 설치하고 층마다 창을 달고 각 창에는 유리문을 세워 넣고 외부에서 입구는 판자문을 양쪽에서 열도록 하고, 무신호실로 통하는 곳에는 허리에 유리로 된 문으로 양쪽으로 열리게 하였다..
등대에 사용하는 등롱, 등기구, 회전기 등은 영국 "찬스브러더스" 상회의 전매품인 제4등 백색 연섬등으로서 회전기의 중추는 끝까지 늘이면 깊이 7.2m(24척)이고 회전한 시간을 견디고, 점등유를 등화에 인도하기 위해 공기조, 유조의 2개를 비치하여 공기의 압력으로써 이를 이끌며, 전에 기술한 “찬스브러드스‘ 회사 전매의 화구 및 화사(초야)를 비치한다.
깃발대는 설치하지 않고 해시계는 추가로 비치할 예정이다.
물품창고는 목조 평가건물로서 퇴식소와의 거리는 약 2.4m(8척)로 떨어져있고, 같은 지반으로 하며 외부는 모두 양풍(양철패널)이고 옆 판벽판에는 페인트 백색 도색으로 하고 지붕에는 마루소이트로 이음으로 한다. 소사실 1칸, 유류창고 한칸 및 여러 기구실 한칸을 두고 외부에는 조제된 숯불 두는 곳을 비치한다.
이원퇴식소는 목조 평가건물로서 3명의 감수가 퇴식(근무 후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게 할 수 있도록 모두 화풍(일본식 방)의 4접반 2칸, 6첩 2칸, 3접 2칸을 갖추고 3개소의 벽장이 붙어있고 3개소에 방한을 위해 화로판을 두었다.
외부는 모두 양풍 높이 1.21m(4척)의 세로 판목판이 가로판목에는 백색 페인트 도장하고, 지붕에는 마루소이트 이응으로 되었다.
퇴식소 전후에 통로를 두고 거실에는 모두 2중 건구로서 방한의 대비를 하고 동소 부지는 편리상 1개소의 변소를 부설하였다.
퇴식소 건구는 외부는 유리문으로 하고 각 입구는 판자문이다..
저수지는 퇴식소에서 거리 13.7m(70간), 높이 9.1m(30척)의 위치에 1.5톤 들이에 콘크리트 저수지를 설치하고, 산 허리에서 유출되는 물을 저장하고 내경 6분(分)의 연관을 부설하고 퇴식소 취사장 가까운데에 저수통을 설치하고 동 저수통에서 무신호 및 욕실까지 같은 규격의 연관으로 인수하고 또 취사용수를 공급한다.
또 취사용수, 퇴식소 및 저납소를 건측하는 외에 대부분 통로라고 할 수 있는 부지에는 모두 퇴식소 및 저장소 건축하는 방한 모양으로 "콘크리트"를 시공하고 사방에는 우수를 배수시키고, 엄한 추위에 결빙될 염려가 있으므로 오수 등은 개개식(도랑식)으로 한다.
또 산허리에는 높이 약 2m (7척) 폭 1.5m(5척) 길이 27m(15간)의 돌담을 축조하고 강우 시에는 흘러내리는 토사를 방지하고 또한 산위(상상)에서 낙하하여 내리는 돌들을 막기 위하여 축조하였다.
또 부지 개간 때문에 산 허리 갈라 놓은 부분에서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곳에서는 높이 4.5m(15척)의 돌담을 쌓았다.
퇴식소 및 물품창고 부지의 동, 남, 북의 콘크리트 벽을 돌리고 방풍에 대비하고 부락에서 통로를 개설하고 또한 해안에서부터 쿤크리트로 보도를 개간하여 통행에,편리를 도모하였다.
무신호사는 등대의 옆에 있고 목조로서 외부는 가로의 판목판을 백색 페인트로 도장하고 지붕은 마루소이트 이응으로 하였으며, 기초 콘크리트의 깊이는 1.36m(4척 5촌) 위에 기계를 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