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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2>Ep 9. 부도등대에서 등대장 곽춘만

작성일 : 2025.12.22 10:35

 

Ep 9. 부도등대에서

등대장 곽춘만

 

다음날 보급선에서는 부도등대에 이삿짐을 풀어 내리고 표지선은 다시 전임 등대장(장천홍)을 승선시키고 선미도 등대로 향하였다.

 

사물을 정리하여 놓고는 채소가 없어서 근처 승봉도에 연락하여 호박씨, 무우씨, 배추씨, 고추씨, 와 꽃씨 등을 구입하여, 밭에다 무, 배추, 호박, 고추 등을 심어놓고 계속 등대 내에 화단을 3개 만들어 꽃을 심고 매일 같이 정성 들여 가꾸니 육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훌륭한 화단이 되었다.

 

화단은 등대 입구 정면에 1개소, 구내 중간지점에 1개소, 등대 사무실과 동력실 사이 정면에 1개소에 꾸며 놓아 등대 구내 전역이 환한 꽃이 만발하였으니 , 등대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등대에 오게 되면 가장 인상깊게 눈길을 끈다고 하였다. 마치 꽃들이 인사하는 듯 반갑다는 것이다.

 

꽃의 정원, 등대에 오면 신선놀음 별장 같다고 하는 인사도 많이 받았으며, 한편 등대 환경 정리와 시설 건물 청소 영조물의 유리창도 먼지 하나 없이 닦아 놓으면 윤이 반짝반짝, 번들번들하고 선창 도로도 포장하고 산에 나무는 해방 즉시부터 식목에 노력하여 도로변에는 여름이 오면 양쪽으로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나 경치도 훌륭하여 환경이 매우 좋은 등대이다.

 

언젠가 승봉도 주민 한 사람이 낚시를 왔다가 선창 도로로부터 신발을 벗어들고 오는 사람을 보고 왜 버선발로 오느냐고 물으니, 신발에서 흙이라도 떨어질 우려가 있어 신을 벗고 온다고 대답한다.

 

이런 분들이 등대에 와서는 첫 인사가 신선이 노는 곳이다,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미혼으로 있는 직원이 있다면 딸을 주려고 일부러 왔노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하였다.

 

등대의 미혼 직원이 있으면, 또 쌍방이 좋아하는 기세면 중매도 하여 주어 그 분들은 대부분이 재미있고 즐겁게 생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도등대에서의 기억은 좋은 기억만이 아니라, 196341일 부도등대에 두 번째 발령을 받아 부임하였을 때는, 부도등대에서 연이어 계속되는 사람의 사망사고로 좋지 못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5년 전부터 첫해에는 이정근 씨가 죽고 다음 해에는 직원 23세 청년 백봉준 군이 죽고 다음 해에는 직원 정상식 군이 죽고 그다음 해는 직원 이만복 씨 부인이 병이 나 인천에 나가서 죽고 그다음 해는 역시 7살 난 직원 이만복씨 장녀가 죽어 계속 5년간 사람이 죽은 등대라 그래서 그런지 그 등대는 가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도깨비가 나온다고 해서 서산에 해가 저물면 등댓불만 켜 놓고는 방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소변을 보기 위해서도 부부간에 손을 붙잡고 숙소 내에 화장실이 있어도 같이 다니는 등, 좋지 못한 소문이 횡행하였다.

 

나는 그런 곳이라면 더욱 용감성을 가지고 더 마음을 튼튼히 가지는 사나이라 자부하며, 부도등대로 지원을 하여 196341일 부도 등대장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을 하였다.

 

등대 보급선에 이삿짐을 싣고, 부도등대 앞에 선박을 정박시키고 소형 전마선으로 적재된 사물을 등대 선착장에 하역하였다.

 

등대 보급선은 장안서 등표 점검 정리하고 인천항으로 귀항 항로에 올랐다. 나는 등대에 상륙하여 사무 인수인계를 확인하고 직원과 함께 하역된 사물을 등대로 운반하였다.

 

선미도에서 키우던 닭은 120마리를 손색없이 잘 가지고 왔으며, 역시 닭은 합숙소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학비에 많은 도움을주었다.

 

이 부도 등대는 등대원을 마지막 하는 해(1977) 까지 4번에 걸쳐 근무한 나에게는 다른 등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등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