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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12. 차한수 2

작성일 : 2025.12.22 01:42

부산의 시인들

 

12. 차한수2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언어를 예술적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어야 문학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의 백미는 단연 시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에 대한 뛰어난 감각과 이해를 바탕으로 가능하다. 만약 시인이 언어를 다루는데 서툴다면 과연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필자는 차한수 시인에게서 시인에 대한 회의를 가져본 적이 있다. 강의나 평소 대화에서 언어의 선택 능력이 시인으로서는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았다. 시인이라면 적재적소에 가장 멋진 말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필자의 시에 대한 이해가 조금 성숙해서야 필자의 견해가 올바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시란 시인이 겉으로 내뱉는 말의 표현력이 아니라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사상, 철학, 사고 등 모든 것의 결집체임으로 강의나 대화의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송희복 평론가가 어느 자리에서 시단의 가장 친한 친구인 정일근과 최영철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난다. “정일근의 시를 나는 하루에 한 편씩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최영철의 시는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시다. 그것이 시의 무게다.” 정일근은 평소 대화에서 언어 선택에 재치가 있다. 그러나 최영철은 그 반대로 어눌하다. 그런데 일반 독자들에게 정일근 시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를 송희복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차한수 시인은 최영철 류다. 차시인이 간직하고 있던 내면의 세계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그의 세계일지 모른다.

차한수 시인(1936-2019)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은 주로 삼천포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필자에게도 자신은 통영 사람보다는 삼천포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차시인이 운전면허증을 따고 시운전으로 필자의 차를 몰고 삼천포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차시인이 어릴 때 살던 집 앞을 가보았다. 그때도 아주 초라한 집이었다. “여기서 우리 어머님이 반테기장사를 해서 우리를 먹여 살리셨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는데 박재삼 시인은 우리 집 옆에 같이 살면서 자기 어머니도 반테기장사를 했지만 그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차시인의 말씀에 조의홍 시인과 나는 웃기만 했다. 그리고 본인이 대학교수가 된 건 부모님 묘를 잘 써서 그렇다고 굳이 우리에게 보여주겠다면서 남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삼천포 바닷가의 정말 경치 좋은 부모님 선산도 안내했다.

1977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차한수 시인은 그해 시집 신들린 늑대를 발간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부산 시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그해 남부문학의 창간에 참여하는데 남부문학은 지방문단의 소외감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김용태가 편집인으로 그리고 훗날 대부분 부산지방의 대학교수가 된 강인수 이규정 정순영 최상윤 등이 참여한 문예지다. 이밖에 차한수 시인은 79년 박청륭 하현식 등과 함께 동인에도 적극 참여한다. 김준오 교수는 동인들은 공통적으로 시가 무엇보다도 언어예술임을 인식하고 사회역사적 상황의 구속으로부터 언어를 해방시켜 신서정의 순수시를 지향한 시인들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대개의 평자들이 차한수 시인은 모더니즘의 순수시 계열에 속하는 시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혹자는 그의 시를 지적인 신서정의 김춘수풍 순수시로 보기도 한다. 평소에도 필자나 주변 문학하는 제자들에게 시란 언어 그 자체로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론을 자주 말하기도 했다. 아래의 시를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언어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는지 짐작이 된다.

辭典 밖으로 쏟아진 單語들이 / 함성을 지르며 흩어지고 있다. / 假面을 벗어버린 무서움, 全裸/ 뼛속까지 물이 된 소리의 殘骸/ 쌓이고 있다’ (차한수, 함박눈)

함박눈이 내리는 상황을 단어들이 흩어지는 것으로 환치시킨 유추적 상상력이 여간 신선하지 않다. 필자가 찾은 몇몇 시들 가운데 가장 차한수 시인다운 시인 것 같다.

차한수 시인은 이제 하늘나라로 갔다. 몽골을 같이 여행한 박미산 시인은 그를 개똥벌레 천사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삼나무 숲이 있는, 찬란하게 오열하는 별빛 아래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는 어둠과 환희를 마시며 열병을 앓던 청년기를 지나노년기에 접어든 천사 같은 시인이었다. 얼마 전, 차한수 시인은 춤을 추며 저 먼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개똥벌레 천사가 되었다.” 그의 시 개똥벌레를 유추해 떠오른 이미지로 그를 추모하고 있다.

3,40년 전쯤 서로 간의 세대 차도 상관없이 차한수 시인(36년생)과 조의홍 시인(42년생) 그리고 필자(55년생)가 어느 주점에 앉아 돌아가는 세상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들을 술잔에 털어놓을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가을날 낙엽 지는 뜨락에서 / 너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면 / 술잔은 외로운 조각배 / 잔을 놓고 내려다보면 / 뱉어버린 수많은 말의 분노가 / 하얗게 불이 붙은 바다가 된다/ 하얗게 불이 붙은 파도가 된다 / 늘어선 술잔을 돌아보며 술을 마시면 / 술은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 다시 네가 마시는 술잔을 바라보면 / 흔들리는 네 인생의 조각배/ 텅빈 낙엽의 뜨락에 / 가을의 눈물이 / 모락모락 타고 있다’ (차한수, 가을날전문)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