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고위 공직자 간 문자 메시지는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민간단체의 장을 추천해 달라는 국회의원의 요청을 받은 청와대 비서관이 그 내용을 윗선에 보고하겠다며 비서실장과 부속실장을 ‘형’, ‘누나’라 부른 것이다. 국정을 다루는 핵심부가 사적인 친분 체계로 엮인 듯한 이 장면은 공직사회에 사적 관계가 공적 업무의 통로로 여전히 쓰이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메시지는 짧지만, 함의는 절대 가볍지 않다. 국가 인사에 준하는 사안을 공식 절차 아닌 개인 부탁처럼 다루고, 대상자에게도 직함 대신 친밀한 호칭을 썼다. 이는 행정조직 내 사적 연결망이 가진 구조적 취약성을 집약한다. 이러한 언어의 선택은 단순한 친분 표현이 아니라, 공적 권한의 경계를 흐리는 상징적 행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계가 단순한 친분을 넘어 공적 권한 행사 과정까지 스며든다는 점이다. 정식 인사 절차는 제도적 검증과 숙의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 “형이나 누나에게 말해보겠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시스템은 곧바로 흔들린다. 공식 권한이 없는 인물이 영향력의 통로처럼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공식구조 밖에서 비공식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실세’ 논란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조직이 공식 절차보다 사적 관계망으로 움직이는 순간, 책임의 주체는 흐려지고 견제 장치는 약화한다.
이번 사안의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대상이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단체였다는 점에 있다. 공무원도, 여당 정치인도 법적 권한이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이를 당연한 청탁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태도 속에는 “힘 있는 사람이 말하면 된다.”라는 보이지 않는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민간단체조차 이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공공기관이나 정부 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다. 한국 사회에 남은 연고주의와 줄 세우기 문화가 왜 뿌리 깊게 지속되는지를 이 사건이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행태는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공정 경쟁 질서를 훼손하는 구조적 악습으로 기능한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공적 시스템을 사적 관계로 대체해 왔는가에 있다. 학연·지연·사조직의 유착 문화가 공직과 기업을 잠식하면 견제는 느슨해지고 책임은 분산되며 권력은 불투명해진다. 국민은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게 되고 국가는 미래 경쟁력을 잃는다. ‘누구 사람’이냐가 능력보다 중요한 기준이 되는 곳에서 혁신과 창의는 자라지 못한다. 사적 연결망은 구성원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는 독소다.
이제 우리는 이런 풍토를 단호히 끊어내야 한다. 공직자는 공사 구분을 분명히 하고, 어떤 인사 결정도 제도적 절차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사적 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입할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곧 시스템 붕괴의 출발점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오랫동안 관습처럼 지속되어 온 관계 중심 문화가 여전히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명확한 신호다. 국민 신뢰는 투명한 절차에서 나오고, 국가는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발전한다. 공정한 질서가 곧 경쟁력이다. 이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은 지금이 아니면 더 늦을지도 모른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