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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12.01 07:54
‘객주’가 일깨워 준 삶의 격조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낙엽이 어지러이 흩날리는 만추의 시골길을 달렸다. 청송 ‘객주문학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차창을 스치는 갈잎들은 세월의 잔영처럼 아련했다. 이동하는 내내 떠나지 않는 물음이 있었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자기다운 삶’을 지켜낼 수 있는가.
우리가 지금 ‘객주’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격랑의 시대 속에서도 삶의 기준을 버리지 않은 인물 군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천봉삼은 난전의 장돌뱅이로 시작해 오직 자신의 판단과 상술로 세상을 헤쳐 나간다. 그는 국가가 제도화한 공인 체계에 예속되기보다 장터를 유랑하며 자신의 역량으로 세계를 시험한다. 봉삼의 여정은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권위와 제도적 억압에 맞서 자기다운 길을 걸으려는 ‘자유의 몸짓’이다. 혼돈이 가득했던 조선 말기의 장터에서 그가 지켜낸 원칙은 정당한 거래, 진심을 담은 상도(商道),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였다. 이 가치들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등불이자, 혼란 속에서 더욱 또렷해지는 의지의 표지였다.
작품 속 상인들은 장사라는 행위를 통해 자기 신념의 가치를 증명하는 존재들이다. 권력과 결탁해 부당 이익을 취하는 무리도 등장하지만, 작품은 ‘돈을 버는 것만으로 인간이 완성되는가?’라고 묻는다. 봉삼은 때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인간적인 정과 의리를 지키려 한다. 사람과 신뢰를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경쟁과 효율이 절대 규범이 된 오늘을 비추는 성찰의 거울이다. 그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의 의지가 결국 ‘어떤 인간적 가치를 지향하는가?’를 명징하게 묻기 때문이다.
이런 ‘객주의 정신’은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청송군과 경북일보가 주최·주관하는 제12회 ‘청송객주문학대전’ 시상식 후 주최 측에서는 훌륭한 숙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원로작가 김주영 선생(86세)은 매년 후배들을 위해 문학관 바깥에 따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다. 수상자에게 뒤풀이 찬조를 요구하는 일이 흔한 현실에서, 여흥 비용을 스스로 감당하는 그의 모습은 빛을 잃지 않는 그만의 품격이었다. 나는 심사 위원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노작가는 테이블을 오가며 후배들과 진솔한 대화를 했다. 나도 잠시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청송에 언제까지 계셨습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요.” “그렇다면 선생님 삶의 밑그림은 그때 대부분 완성됐겠네요.” “물론이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선생께서는 유년 시절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그는 아침 식사를 거르고 학교 가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술도가에서 얻어온 술지게미를 먹고 얼굴이 붉어진 채 등교했는데, 선생님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그를 마구 때렸다고 했다. “그 선생을 죽이고 싶었다.”라는 회고는 분노라기보다는, 왜 그것을 먹고 왔는지 헤아려 주지 않은 유년의 상처가 그의 세계관 형성과 작가적 뚝심에 어떤 자국을 남겼는지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선생께서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지나간 일 붙들고 있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도 걱정하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하며 삶을 향유해야 합니다.” 잔을 기울이며 덧붙였다. “이렇게 술 마시고 놀아도, 글을 쓸 땐 목숨 걸고 쓰세요. 나는 죽는 날까지 쓰다 갈 겁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장돌뱅이로서의 심지를 지켰던 천봉삼의 모습이 그의 현재와 겹쳐 보였다. 존경할 만한 사표(師表)를 찾기 어려운 시대에, 겨울 언덕의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서 있는 노작가는 인간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장터의 혼돈 속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았던 천봉삼처럼, 그는 자기다운 방식으로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진실로 아름다운 삶은 외면적 화려함이나 세속적 성공에 있지 않다.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믿는 가치를 끝까지 놓지 않는 데 있다. 객주문학관에서의 그 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유는, 소설 ‘객주’의 세계가 눈앞에서 조용히 다시 살아나는 듯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