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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부산의 시인들> 9. 김상훈 2

작성일 : 2025.12.01 01:15

부산의 시인들

 

9. 김상훈2

 

김상훈 회장의 서면 사무실은 부산일보 퇴임 후 재력가인 지인이 100여 평의 방을 무료로 대여해 준 곳인데, 한 층이 지금의 2층 높이인 엘리베이터 없는 옛날 건물의 5층이라 오르내리기가 정말 불편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회장과 명여사가 근 5년 넘게 거의 매일 출근을 한 곳이다. 사무실 안에는 어지간한 학교 도서관보다 더 규모 있게 빽빽이 들어찬 십만여 권의 책과 근 5백 점이 넘는 그림들, 각종 소장품들이 군데군데 쌓이고 흐트러져 있었다. 거기다 5십 년도 더 된 원고지나 연습용 A4용지들, 상패나 기념패, 각종 장부나 노트들이 수십 개의 상자에 들어차 있기도 했다. 필자가 맡은 일은 그 건물이 헐리는 몇 년 안에 그림들을 팔고 사무실에 있는 모든 물건을 치우는 일이었다.

미술품들은 그런대로 팔면 되지만 그 많은 책은 방법이 없었다. 기증을 하기 위해 대학이나 도서관, 지자체 등에 알아보았지만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고 겨우 몇 군데에 일이 천 권 정도만 기증할 수 있었다. 회장은 본인 나름으로 평생 모은 귀한 책들인데 안타깝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폐휴지 모으는 분들에게 부탁해 가져가라는 것이다. 서면 일대의 폐휴지 수집하는 노인들을 몇 명 불러 하루에 수십 번씩 근 일주일 동안이나 그 무거운 마대를 짊어지고 오르내리게 했는데, 정말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리던 그때 노인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그리고 한 시인에게 자존심처럼 그나마 남아 있던 모든 짐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정리되는 일은 필자에게도 큰 아픔과 교훈을 준 시간이었다. 그 이후 필자는 틈만 나면 서가의 책 비우는 일을 실천한 결과 제법 많던 책들이 이제는 다시 보고 싶은 조금의 책들만 서가에 꽂혀 있다. 그리고 비우면서 사는 삶을 조그만 생활신조로 삼고 있기도 하다.

미술품은 그런대로 팔리어 덕분에 돌아가시기까지 근 5년 동안 그 수입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생활할 수는 있었다. 사실 그림들은 필자가 관계하기 훨씬 전에 이미 유명 화랑이 다녀가면서 좋은 그림들은 대부분 가져가고 값나가는 그림들은 없었다. 남은 5백여 점은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회장은 그림값을 헐값에 팔 수 없다며 떼를 쓰는데 명여사와 필자는 속이 타기도 했다. 아마 회장은 그 그림을 구입할 때의 값을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근 절반 정도의 그림이 팔리고 나머지는 김천에 세울 기념관용으로 필자가 아는 장소에 보관하기로 했다.

회장이 태어난 원고향은 울릉도다. 회장의 부친이 교직에 계셨기에 울릉도에서 김천으로 근무지를 옮기자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은 김천에서 보내게 된다. 그래서 부산일보 재직시에는 김천향우회 회장을 맡았는데 그 인연으로 김천시에서는 시장의 특별한 배려로 김상훈 회장의 기념관을 세우기로 결정한다. 마침 회장의 부친이 교장으로 근무하였던 초등학교가 폐교하자 그곳을 기념관 장소로 정했다. 회장도 그 학교 사택에서 근 5년을 산 적이 있는 아주 의미 깊은 곳이다. 김천시에서도 처음에는 간단히 리모델링을 해서 형식적 기념관 정도로 생각했는데 갈수록 의미가 더해져 결국 거금 40여억 원을 들여 근 2년에 걸쳐 완전히 새 건물처럼 멋진 기념관을 완성하게 되었다. 명칭도 회장은 김상훈 문학관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김천시에서는 김천에 몇 개의 문학관이 있기 때문에 그냥 김상훈 기념관으로 하자고 해 그대로 정했다. 회장에게는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자 삶의 가장 큰 결실이 아닐 수 없었다. 기념관이 지어지고 완성되면서 회장이 느끼는 보람과 희열을 필자도 조금이나마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사실 기념관이 완성되는 데는 필자의 역할도 있었다. 김천시에서는 어떤 전시물이 전시될지 어떤 내용물이 기념관에 보관될지 몰라 우리 쪽 책임자를 정하라기에 어쩔 수 없이 필자가 맡게 되고 완성될 때까지 매달 거의 두서너 번씩 수십 번을 김천에 다녀와야 했다. 가끔 회장도 함께 갔지만 주로 혼자서 다녔는데 하루 가면 그곳 담당 공무원과 밤새 술 마신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난다. 어찌 보면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기념관을 개관하면서 서면 사무실에서 골라놓은 그림, 조각품, 기념될만한 자료들, 서적 등을 옮겨놓을 수 있었다. 큰 이삿짐 트럭 두 대로 짐을 옮겼는데 그 많은 양에 김천시 공무원들이 놀라기도 했다. 김상훈 회장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필자는 기회 될 때마다 지인들과 함께 기념관을 방문했는데 근래에는 도통 가보질 못했다. 기념관이 잘 운영되는지 궁금하다.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