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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11.23 11:13
부산의 시인
8. 김상훈1
1995년 초 문협 회장 선거는 김상훈 시조시인과 정진채 아동문학가의 일전이었다. 필자와 함께 동인 활동을 하던 ‘문학지평’ 팀은 거의 정진채 편이었다. 그런데 정진채 작가는 또 고배를 마셨다. 우리 동인들은 우울한 기분으로 소주잔을 기울인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날 총회에서 김상훈 당선자는 사무국장으로 우리 동인이었던 강영환 시인을 지명했다. 아마 사전에 내정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후 임종찬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무국장을 맡아 달라는 거였다. 강영환 시인은 정순영 시인이 새로 발간하는 문예지의 일을 갑자기 맡게 되어 사무국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 연락이 왔지만 나는 한사코 거부했다. 문협 사무국장을 하기에는 문단 경력도 부족하고 내 성격하고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쯤 후 대학 지도교수였던 최상윤 교수님이 댁에서 아침식사를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일찍 댁을 방문했더니 다짜고짜 문협 사무국장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초지종 몇 번 거절했는데 결국 그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김상훈 회장과의 오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모든 회원이 의아해할 일이지만 김상훈 회장은 회장 재임 기간 동안 문협 사무실에는 임기가 시작하는 날과 마치는 날 정확히 두 번 방문했다. 본인이 직접 처리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모든 결재는 필자가 직접 부산일보 상무실, 전무실, 사장실을 방문해 받곤 했다. 대학에 근무하던 필자는 오후 시간에는 문협과 학교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재를 받기 위해 방문하면 대기하는 방문객이 워낙 많아 한두 시간은 예사로 비서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정말 고역이었다. 들리는 말들은 ‘부산에서 제일 바쁜 사람’,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분’ 등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회장 방을 방문하겠는가. 상무, 전무 때는 그래도 나았는데 사장 때는 그 정도가 정말 심했다. 그것도 당시 전국 4대 일간지 중 하나였던 부산일보 사장을 십 년씩이나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렇게 김상훈 회장은 몸이 두 개 있어도 부족한 잘 나가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는 분이 뭔가 빈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늘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꼭 필요에 의해 만나야 될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인사나 하기 위해 아니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술자리 마련용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긴한 사업을 위한 자리도 별로 없고 가까운 가족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장 재임시에만 오래전 이혼한 부인이 함께 있으면서 여러모로 사모님 노릇을 했지만 가끔 심부름으로 가보는 회장 댁은 늘 아무도 없이 쓸쓸했다. 그러니 집에 바로 퇴근하는 일은 거의 없고 반드시 술자리를 만들어 거나한 상태에서 집으로 들어갔다. 자연히 많은 술집에 외상이 쌓이게 되고 자녀들 유학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다 매일 저녁의 술값까지 집안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비서에게서 듣고 다소 황망하기도 했다. 사실 그 빚들로 인해 부산일보 퇴임 후에도 오랫동안 대학 초빙교수로 들어오는 조그만 수입이 모두 은행 이자로 나가게 되고 어려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몇 년 전 파산신청을 하고서야 겨우 부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상 살펴본 바가 김상훈 회장의 겉과 속이다. 화려한 생활 뒤에 숨은 외로움과 어려운 사정들을 일찍 눈치챈 필자는 늘 고만고만한 심정으로 회장과 가까이 지냈다. 그래서 필자와 가끔 둘이서 갖는 주석에서는 당신의 사정을 털어놓는 데 동정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회장 임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서는 함께 몽골을 여행하기도 했는데 그 초원의 별밤에 쓸쓸하게 부르던 동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평소 주석에서도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가곡과 동요는 그 수준이 전문가 이상이라는 술자리 참석자들의 평이다.
필자가 학교를 퇴직하고 얼마 후 전라도 어느 산에 등산을 하고 있는데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몸도 아프고 생활이 힘든데 나를 좀 도와줄 수 없겠냐, 지금 내 주변에 사람이 없다. 믿을 사람은 당신뿐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아득했지만 조만간 사무실을 찾아뵙겠다고 했다. 며칠 후 서면 로터리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무실에는 회장과 회장을 돌보는 명여사가 같이 있었다. 회장님 몸 쓰는 것이 이상해 물었더니 파킨슨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회장의 말씀은 사무실에는 십만여 권의 책과 그림 약 5백 점이 있는데 그걸 좀 팔아서 생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였다. 필자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김상훈 회장과의 거의 매일 만나는 동거가 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