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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2>Ep 4. 부도등대 앞 동수도를 통한 UN군의 인천 상륙작전

작성일 : 2025.11.17 01:36 수정일 : 2025.11.17 01:41

 

Ep 4. 부도등대 앞 동수도를 통한 UN군의 인천 상륙작전

/곽춘만 (등대장)

전쟁 발발 후 19509월 남쪽 먼 거리에 미군 함정 2척이 나타나 순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몹시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 국기로 인사를 하며, 국제신호기(당시 등대에서는 국제신호기로 통과 선박과 신호를 했다.) OVG (조난당했다. 구원을 바라며, 수로를 안내가 필요한가)를 게양하여 보았으나 당시의 부도 등대 부근은 적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회답도 없이 남쪽으로 항해한다.

 

그렇게 하기를 3일간 계속하였더니 4일째 되던 날은 우리에게 신호를 해준다.

그때 서야 직원들이나 피난민들도 사기 양양하여 상호 간 국제신호기를 잘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즉시 항해를 축하하는 WAY(구호를 바라며, 잠수부가 활동 중인가, 닻을 조작하여 안전 운항 바란다.)를 게양하자 미 함정은 팔미도 근해까지 접근하여 월미도를 폭격하는 것이다.

 

비록 정부는 남하하였으나, 우리가 대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하여 계속 국제신호기로 신호하여 주니 함정에서도 회답기 및 OVG로 감사의 표시를 하여준다. 우리는 한층 의기양양하여 등대는 불만 켜놓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군 함정과 국제신호기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함정을 향해 등대 운영을 위해 식량이 필요하다는 뜻의 요구사항을 국제신호기로 표시하면 혹시라도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국기 게양대에 국제신호기(TK)를 게양하였다.

 

머지않아, 미군 함대에서 소 함정(보트) 1척이 등대로 와서 소맥분과 통조림 및 과일 등 여러 가지 식료품을 보급해 주고, 등대 시설 전반을 둘러 본 이후, 등대 가족들과 어린이 등도 오라고 하여 과자도 주고 하여, 내가 넘버원이라고 손짓과 함께 서툰 영어로 감사 인사를 하였다.

 

미군들은 등대 시설과 관리 인원 등을 다시한번 점검하고 그 결과를 함정에 보고한 이후 보트를 타고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이후에 다시 미군의 감시 보트가 오기에 선창에 보트가 안전하게 닿을 수 있도록 안내하니, 접안 이후 장교 3명과 수명의 대원들이 상륙하여, 처음 등대에 온 선박에서 보급받은 물품을 알려달라고 한 이후, 그들이 가지고 온 보급품을 보여주면서, 대원들을 시켜 퇴식소까지 운반하도록 하였다.

 

상륙한 미군들이 등대의 시설물 전반과 개인 숙소(퇴식소)까지 관람하도록 요청하여 전체 시설물을 안내하고, 등대 근무자들과 그 가족까지 전체 인원에 대한 설명을 하니, 미군의 장교 대표는 등대직원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어린이들한테까지도 감사를 표시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성의에 고마움과 감격의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들이 보금품 전달과 등대 시설물을 둘러 본 이후 돌아 가겠다고 인사하는 것을 잠시 붙잡아 두고, 등대 운영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공문서로 작성하여 미군에게 주고, 인천기지 사령관한테 전달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돌아가는 미군들에게 고마움으로 눈물겨운 전송으로 보낸 3일 이후에 한국함정이 와서 부근에 있던 소형선박을 불러 등대에 연락하여 등대장을 오라고 하였다고 전달하여, 나는 직원과 함께 신분증을 가지고 연락해준 선박을 타고 함정으로 갔더니, 마치 함정에 있던 보급관이 통위부 해안경비대 시절에 나의 친구였다.

 

함정에서 친구인 보급관을 비롯한 많은 군인들이 전시 중에도 등대를 지키느라 수고와 함께 고생이 많겠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과 함께 식량과 부식물 등을 보급하여 주엇다.

 

보급받은 쌀로 밥을 짓고, 소고기로 국을 끓여 등대에 있던 모든 인원에게 육식을 골고루 먹게하여 영양실조로 온몸이 부어오른 사람들에게 영양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군 인천기지 사령부가 덕적도에 주둔하게 되자, 부도에서 피란 중이던 군인과 경찰관 들은 부근 정보부대로 올라가게되었다.

 

덕적도에 주둔하던 해군기지사령부의 파견 대장 박 대장이 요청하여 인천 상륙작전에 유리한 정보를 덕적도에 가서 하루 동안 함정마다 다니며 작전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여 주고 선미도 등대에 가보니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차석으로 있던 직원이 사상이 다른 놈이라 등대장도 죽고 말단직원 김수복 부부만이 남아서 식량이 떨어져, 초식으로 연명했다는데, 사람의 얼굴이 부어올라 말이 아니었다.

 

다시 덕적도에 돌아와서 해군에 보고하고 함장을 통하여 선미도 등대, 목덕도 등대에 식량을 보급하도록 요청하였다.

 

함장은 인천 상륙작전으로 당장은 어려우니 영흥면장과 등대장이 가서 일차 순회 해달라고 지시하였으나, 내가 직접 가기에는 등대기능 유지에 어려움이있어, 등대직원들과 영흥면장만을 함정으로 보내고 등대로 돌아왔다.

 

이날 밤 또다시 부도 등대 근처 영흥도 괴뢰군이 들어와 모든 사람을 창고에 가두고 불을 지르려 하였으나, 우리 쪽의 정보가 빨라 함포사격으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죽을 고비를 다시 겪게 되었다.

 

Ep 4. 부도등대 앞 동수도를 통한 UN군의 인천 상륙작전

 

전쟁 발발 후 19509월 남쪽 먼 거리에 미군 함정 2척이 나타나 순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몹시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 국기로 인사를 하며, 국제신호기(당시 등대에서는 국제신호기로 통과 선박과 신호를 했다.) OVG (조난당했다. 구원을 바라며, 수로를 안내가 필요한가)를 게양하여 보았으나 당시의 부도 등대 부근은 적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회답도 없이 남쪽으로 항해한다.

 

그렇게 하기를 3일간 계속하였더니 4일째 되던 날은 우리에게 신호를 해준다.

그때 서야 직원들이나 피난민들도 사기 양양하여 상호 간 국제신호기를 잘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즉시 항해를 축하하는 WAY(구호를 바라며, 잠수부가 활동 중인가, 닻을 조작하여 안전 운항 바란다.)를 게양하자 미 함정은 팔미도 근해까지 접근하여 월미도를 폭격하는 것이다.

 

비록 정부는 남하하였으나, 우리가 대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하여 계속 국제신호기로 신호하여 주니 함정에서도 회답기 및 OVG로 감사의 표시를 하여준다. 우리는 한층 의기양양하여 등대는 불만 켜놓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군 함정과 국제신호기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함정을 향해 등대 운영을 위해 식량이 필요하다는 뜻의 요구사항을 국제신호기로 표시하면 혹시라도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국기 게양대에 국제신호기(TK)를 게양하였다.

 

머지않아, 미군 함대에서 소 함정(보트) 1척이 등대로 와서 소맥분과 통조림 및 과일 등 여러 가지 식료품을 보급해 주고, 등대 시설 전반을 둘러 본 이후, 등대 가족들과 어린이 등도 오라고 하여 과자도 주고 하여, 내가 넘버원이라고 손짓과 함께 서툰 영어로 감사 인사를 하였다.

 

미군들은 등대 시설과 관리 인원 등을 다시한번 점검하고 그 결과를 함정에 보고한 이후 보트를 타고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이후에 다시 미군의 감시 보트가 오기에 선창에 보트가 안전하게 닿을 수 있도록 안내하니, 접안 이후 장교 3명과 수명의 대원들이 상륙하여, 처음 등대에 온 선박에서 보급받은 물품을 알려달라고 한 이후, 그들이 가지고 온 보급품을 보여주면서, 대원들을 시켜 퇴식소까지 운반하도록 하였다.

 

상륙한 미군들이 등대의 시설물 전반과 개인 숙소(퇴식소)까지 관람하도록 요청하여 전체 시설물을 안내하고, 등대 근무자들과 그 가족까지 전체 인원에 대한 설명을 하니, 미군의 장교 대표는 등대직원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어린이들한테까지도 감사를 표시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성의에 고마움과 감격의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들이 보금품 전달과 등대 시설물을 둘러 본 이후 돌아 가겠다고 인사하는 것을 잠시 붙잡아 두고, 등대 운영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공문서로 작성하여 미군에게 주고, 인천기지 사령관한테 전달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돌아가는 미군들에게 고마움으로 눈물겨운 전송으로 보낸 3일 이후에 한국함정이 와서 부근에 있던 소형선박을 불러 등대에 연락하여 등대장을 오라고 하였다고 전달하여, 나는 직원과 함께 신분증을 가지고 연락해준 선박을 타고 함정으로 갔더니, 마치 함정에 있던 보급관이 통위부 해안경비대 시절에 나의 친구였다.

 

함정에서 친구인 보급관을 비롯한 많은 군인들이 전시 중에도 등대를 지키느라 수고와 함께 고생이 많겠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과 함께 식량과 부식물 등을 보급하여 주엇다.

 

보급받은 쌀로 밥을 짓고, 소고기로 국을 끓여 등대에 있던 모든 인원에게 육식을 골고루 먹게하여 영양실조로 온몸이 부어오른 사람들에게 영양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군 인천기지 사령부가 덕적도에 주둔하게 되자, 부도에서 피란 중이던 군인과 경찰관 들은 부근 정보부대로 올라가게되었다.

 

덕적도에 주둔하던 해군기지사령부의 파견 대장 박 대장이 요청하여 인천 상륙작전에 유리한 정보를 덕적도에 가서 하루 동안 함정마다 다니며 작전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여 주고 선미도 등대에 가보니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차석으로 있던 직원이 사상이 다른 놈이라 등대장도 죽고 말단직원 김수복 부부만이 남아서 식량이 떨어져, 초식으로 연명했다는데, 사람의 얼굴이 부어올라 말이 아니었다.

 

다시 덕적도에 돌아와서 해군에 보고하고 함장을 통하여 선미도 등대, 목덕도 등대에 식량을 보급하도록 요청하였다.

 

함장은 인천 상륙작전으로 당장은 어려우니 영흥면장과 등대장이 가서 일차 순회 해달라고 지시하였으나, 내가 직접 가기에는 등대기능 유지에 어려움이있어, 등대직원들과 영흥면장만을 함정으로 보내고 등대로 돌아왔다.

 

이날 밤 또다시 부도 등대 근처 영흥도 괴뢰군이 들어와 모든 사람을 창고에 가두고 불을 지르려 하였으나, 우리 쪽의 정보가 빨라 함포사격으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죽을 고비를 다시 겪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