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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11.17 12:45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42 >
그의 백발을 정의할 수 없다
/박명호
인생은 때때로 느닷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같을 때가 있다.
늘 가는 동네 목욕탕의 이발사가 팍삭 늙어버렸다.
평소에 가위질 하던 손이 약간씩 떨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조금은 ‘늙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저렇게 팍삭 늙어버릴 수 있는지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만 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늙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같이 늙었을지 모른다. 내가 한 십 년이란 세월을 깜빡 잊어먹고 있었을 것 같다. 한 십 년이란 세월은 그렇게도 도둑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확인하려고 거울을 봤다. 다행히 내 머리카락은 백발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발이 아니어도 얼굴은 늙었는지 알 수 없었다. 거울을 자세히 보려니 목욕탕 더운 김이 잔뜩 서려 있었다.
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목욕탕 이발사만 늙었는지, 나만 빼고 그들만 늙었는지, 아니면 모두 늙고 내 머리카락만 유전적으로 백발이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목욕탕에는 이발사뿐이고 거울은 목욕탕 김이 서려 자세히 볼 수 없으니 나는 목욕탕 이발사의 백발에 대해 정의할 수 없었다.
답답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아빠, 머리 새치 봐라!”
“야! 조용해라. 아빠 잠깨실라...”
딸애와 아내의 말소리가 까마득히 먼 데서 들리는 것 같았다.
일요일 낮 거실 소파에서 바둑 텔레비전을 보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