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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부산의 시인들> 7. 유병근

작성일 : 2025.11.17 11:57

부산의 시인

 

7. 유병근

길을 가다가 김시인하고 부르면 두 명 중 한 명은 돌아본다는 우스개도 있다. 시인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지금 부산의 문인은 문협이나 작가회의에 등록된 숫자만 보더라도 2천 명이 훌쩍 넘는다. 그중 절반 이상이 시인이다. 필자가 문단에 나오던 40년 전에 비해 근 열 배나 된다. 인구가 그렇게 늘지 않았는데도 문인들의 수가 많아진 데는 그 요인이 있을 것이다. 아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부들이나 직장에서 퇴직한 연로한 분들이 젊은 시절 상상했던 문학도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쉽게 마련되어 너도나도 시인의 길로 접어든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고 본다.

사실 과거에 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과를 선택해서 공부한 후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아니면 독학으로 수없이 많은 시나 소설을 접한 후에 등단 절차를 밟아 문인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발표지로서의 문예지나 거기에 수반되는 많은 문예강좌를 이용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문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거기다 마치 이전 정규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처럼 문예강좌의 강사와 수강생은 사제지간 이상의 문단의 중요한 인맥으로 형성되어 각종 문학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디 문예지 출신, 어느 강좌 출신 등이 모여 이렇게 시인이 많은 시대가 되었다고 짐작된다.

그런데 그 문예강좌의 강사들은 대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지도해 본 경험이 있는 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간혹 학교 경험이 없이 그 장르의 문학에 대한 일가견으로 강의하는 강사들도 없지 않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수강생들에게 더 인정받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만큼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하는 성실성과 기존 학교 강의식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참신성의 결과인 듯하다. 그렇게 순수하게 문예강좌에서 명강의로 이름을 드러낸 문인들도 부산에서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분이 유병근 시인이다.

유병근 시인은 문예강좌에서는 수필가로 더 알려져 있다. 많은 수필가의 등단에 큰 역할을 함으로써 그쪽 인맥의 문인들에게는 대부 정도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만큼 강의 실력이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번은 현대백화점에서 진행하는 유시인의 강좌에 수강을 해보았다. 듣던 대로 꽤 괜찮은 강의였다. 그래서 필자가 근무하던 대학에 수필 쪽의 강사로 제의해 승낙을 받고 몇 학기 동안 같은 과 동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유시인에게 수강 받은 우리 과의 학생들은 대개 유병근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에 비해 말씀은 별로 없으신데 너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는 평으로 그 실력을 인정하곤 했다.

유병근 시인(1931-1921)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당시 대부분 시인들이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근무한 것과는 달리 특수한 계통의 공직에 종사하면서 시를 썼다는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유병근 시인에 대해서는 드러내놓고 알려진 이야기들이 별로 없다. 유 시인은 이미 50년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50년대 송영택, 천상병, 고석규 등이 참가해 만든 동인지 新作品6집에 조영서, 손경하, 하연승 등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꾸준히 부산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1970년에는 月刊文學에 본격적인 시인으로의 등단 절차를 거치기도 하고 이후 80년대에는 다양하게 생겨난 부산의 시 동인 활동에도 참여하는데 김성춘, 양왕용, 진경옥 등과 절대시동인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절대시1991년에 시와 언어로 문패를 다시 달고 나영자, 이병석, 정선기 등의 시인을 영입한다. 이즈음부터 유병근 시인은 수필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데 아울러 문예강좌의 명강사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필자는 유병근 시인의 시나 수필을 읽고는 참 담백하다’, ‘시나 수필의 정수를 아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남송우 교수도 유병근의 시에 대해 유병근의 시는 군말이 없다. 언어의 생리를 이해하는 그는 한 편의 시를 한 채의 집으로 생각하고 언어의 집짓기를 계속하는 시인이다. 투철한 장인의식으로 시를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