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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2>Ep 2. 광복 이후 첫 근무 격열비도 등대장

작성일 : 2025.10.31 03:20 수정일 : 2025.10.31 04:00

 

Ep 2. 광복 이후 첫 근무 격열비도 등대장

/ 곽춘만(등대장)

 

광복 이후 등대의 관리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등대 관리 인력과 표지 보급선 운영이었다. 일본 강점기 시대 한국인으로서 등대장으로 근무하였던 사람은 선미도 등대장으로 계셨던 한승철과 옹도등대장으로 계셨던 방종철 두 분이었다.

 

해방이 되자 방종철와 한승철씨는 각자 함경북도와 평안북도의 고향에 갔다가 3개월 만에 돌아와 함께 일하게 되어 방종철씨(1921년 청진등대 보원: 10원 입직)는 옹도등대장으로, 한승철씨(1923년 옹도등대: 10원 입직)는 선미도 등대장으로 부임하여 등대에만 근무하던 분들을, 미 군정처에서 전국적인 등대의 체계적 운영을 위하여 연세 많은 한승철씨를 미군정청 해사국 표지과 과장으로, 방종철씨는 인천항로표지관리소 소장 겸 항로표지 요원 양성소 소장으로 겸하도록 임명하였다.

 

항로표지 업무가 과도 정부 통위부 조선해안경비대로 이관되자, 각 등대의 운영을 체계적이고도 정상적으로 하기 위하여, 먼저 등대장들을 양성시키는 단계로 1946년 항로표지 요원 강습소 1기생을 모집하여 인천 해군사령부에서 장교(간부) 훈련을 시켜, 인천 항로표지 관내 등 전국 각 등대에 배치케 하였는데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팔미도등대장에 정태성, 선미도등대장 배병교, 목덕도등대장 김능두, 격렬비도 등대장 곽춘만, 옹도등대장 이정근, 부도등대장 김건태, 소청도등대장에 남만포로 임명하고 등대 근무 직원은 해군 대원을 1개 등대에 3~4인씩 배치하였으며, 등대장들은 병조장급 이상으로 배치하여 표지 운영을 시작하였다.

 

본부 소관에서 인천 기지사령부 위탁으로 배치 시킨 내용이다.

 

8.15 광복 이후 2년 반만이니, 그간의 등대에서 근무하였던 직원들의 고통과 심려는 얼마나 안타까워던가

 

교통의 불편한 시련으로 식량이 떨어져 둥글레(식물뿌리)로 대신하여 끼니를 이어갈 때 아기 엄마는 영양실조로 젖이 안나 철없는 아기는 배고파 울고 등대 비상약품은 떨어져 병이 나면 천우신조에 맡길 때의 안타까움····

그 와중에 외로움이란 어찌 말로 다 표현 하리요····

 

그러나 19483월 내가 격열비도등대 등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지금까지의 시련은 놓았다.

 

격열비도 등대는 인천에서 남서 간 82해리 떨어진 격열비열도 군도의 한섬으로 충남 서산군 근흥면 가이도리 이다. 우리나라 최서단에 위치하는 등대는 서해 조업 어선과 중국 항로와 인천항, 목포항을 오가는 선박의 육지 초인 표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19096월 신설 점등하였다.

 

등탑 구조는 백색(페인트 칠) 하부 6각형 상부 원형 철조 9.4m이며, 등명기는 제3등급(영국에서 제작) 후레넬식 프리즘렌즈 중추 회전식이다. 석유 백열등의 백색 불을 18초를 격하여 12초에 3섬광으로 밝히고 광달거리는 26마일이다. 등고는 평균수면에서 106.1m이다. 등탑은 2층에 중추를 감는 중추실(12회 중추를 감아 주면 중추가 풀리면서 등명기가 회전)이 있으며, 주물로 제작된 나선형 계단으로 3층의 등롱실을 오르내린다.

 

대원 3명과 여기에 부임하니, 태평양전쟁 때 건물은 전부 파괴되고 말았으므로 천막을 치고 우선 아세치렌통으로 항해하는 선박에 불을 밝히고 부식은 육지에서 가져다 먹기가 곤란하여 근무시간 외에는 대원들을 데리고 낚시질을 하였다.

 

낚시질이 처음인 대원들은 고기를 잡지 못하여 내가 잡은 물고기로 만족하게 부식을 하였으며, 몇 일 지나자, 등대장 이상으로 고기를 잘 잡아내는 것을 볼 때 사람에게는 실전경험이 필요함을 흐뭇하게 느끼며 어느 날은 부시리, 농어, 우럭 등이 걸려들어 4명이 약 2시간 동안 잡은 것이 지게로 세 번이나 운반하게 되는 큰 수확을 얻기도 하였다.

 

낚시질의 취미는 고상한 것, 아쉬움과 걸렸던 고기가 도망가면 다시 물고 늘어져 끌어 올리는 그 순간이 기분은 천하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분····

 

여보 슈 고기 양반 내 자신이 양반을 잡는 것이 아니라 양반 자신이 욕심을 너무 내어 낚시를 준거요 내가 입에다 넣어 준거요하고 즐거움에 찬 농담을 하며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상한 취미에 내 마음이 끌려갈 때 물론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어느 날 대원끼리 낚시질을 갔다가 조금 후 금방 올라오며, 급한 음성으로 등대장님하고 불러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얼른 대답하고 밖으로 나가 보니 일은 다시 벌어졌다.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 그것은 대원 3명이 부시리 50여 마리를 잡아 부근 해안가가 희긋 희긋하게 되어 있으며, 대원들끼리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따사로운 햇볕 속에 나의 눈을 둥글게 만든다.

 

그러나 단번에 먹지는 못하는 것, 연일 계속되는 날씨로 안개와 비가 8일간씩이나 계속되어 말리는 고기는 햇볕을 받지 못하여, 그 많은 고기가 아깝게도 썩어갈 때의 아쉬움이 잡았던 기쁨과 맡서는 듯하여 오히려 마음이 허전하기까지 하였다.

 

Ep2. 사진 1. 한승철.

일제 강점기 항로표지 전습생 출신으로 1923년 옹도등대에 첫 부임 하여 광복 이후까지 항로표지에근무(우리나라초대표지과장역임)

 

사진2.방종철

일제 강점기 항로표지 전습생 출신으로 1921년 청진 등대에 첫 부임 하여 광복 이후까지 항로표지에 근무(인천항로표지관리소장 겸 항로표지 요원 강습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