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부산의 시인들
작성일 : 2025.10.31 03:16
부산의 시인
5. 박철석
박철석 교수님이 서울 세종대학 박사과정을 다닐 때다. 강의가 있는 날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길에서 쓰러진다. 하늘은 노랗고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더란다. 마침 지나가는 여학생이 있어 도움을 청하자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병원에서 링그를 맞고 정신을 차려 겨우 부산을 올 수 있었다는데 하마터면 저승 갈 뻔했다는 그 상황을 무용담처럼 들려주시던 생각이 난다. 허약한 몸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 다닌 게 원인이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한번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연구실에 들렀더니 물을 갓 부은 컵라면을 드시고 있었다. 약간 불은 뒤에 드셔야지 아직 불지도 않았는데 드시면 탈 난다고 말씀드리자 나는 먹는 것 하고 거리가 멀다면서 그래서 몸이 이렇게 부실하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하신 게 기억나기도 한다.
이렇게 허약한 체질을 갖고 계시면서도 시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않았다. 다른 대학에 재직하다 늦게 동아대 국문과에 오게 되면서 필자와 박사과정의 사제지간이 되었는데 당시는 인터넷을 거의 쓰지 않던 시절이라 필자의 박사논문 자료를 구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논문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대뜸 ‘그건 이 책을 보면 도움이 되겠다’고 서재의 그 많은 책 중 한 권을 뽑아 필자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그 책은 큰 도움이 되곤 했다. 그때 교수님 댁에서 빌린 몇 권의 책은 돌려드리지 못하고 그냥 내 서가의 책이 되어버린 것도 있다. 아무튼 박철석 교수님과는 학교에서나 댁에서 자주 만났던 제자로서 여러 가지 이야기거리가 있다. 그중 그분께 정말 미안했던 일 하나만 이야기 하자.
교수님과 담소를 나누던 중 한창국 시인 이야기가 나왔다. “한창국이 옛날에는 그렇게 개망나니였는데 장가가고 아이 낳고 하더니 지금은 예의도 알고 사람 되었더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한시인을 잘 아는 필자도 잘 보셨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얼마 후 한시인과의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박철석 교수님 하시던 말씀을 좀 순화시켜 전했다. 이틀인가 사흘 후 한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철석이 내 앞에서 무릎 꿇었다. 어디 함부로 나를 평가해, 죽을라고!” 갑자기 눈앞이 캄캄했다. 그날 바로 한시인이 박교수님을 다방으로 불러내 온갖 행패를 다 부린 모양이었다. 한시인의 성정으로 그가 어떻게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그 한참 뒤 교수님이 나를 용서해 준다고 만난 자리에서 “그 사람들 많은 다방에서 나를 꼼작 못하게 하고 윽박지르는데 결국 내가 빌었다. 그렇게 당한 건 내 평생에 처음이다”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한창국 시인을 그가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
박철석 시인 (1930-2016)은 비교적 일찍 부산 문단에서 활약한 분이다. 1955년 7월호 『現代文學』에 「까마귀」가 1회 추천되고 1958년 8월 『自由文學』에 평론 「純粹詩批評論」이 당선되면서 시인과 비평가를 겸하게 된다. 경남 거제 출신으로 해방 직후부터 해동고등학교와 동아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한 후 부산여전을 거쳐 동아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는 주로 시론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시 창작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박철석 시인의 시는 이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시는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정감의 서정화 바로 그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나의 시는 대체로 체험의 산물이다. 더러는 민족시가 어떻고 통일시가 어떻고 하는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 이런 유의 시는 집단주의 성격을 띤 것으로 ‘내’가 없다. 내가 없는 시는 죽은 시다. 우리는 그러한 시를 일제 강점기에도, 해방 직후에도 보아왔다. 일종의 사회주의의 유령이다. 그렇다고 시가 역사를 등질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정서에 녹아들어 재구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 이것이 시의 제 얼굴이다.” (박철석, 나의 체험적 시론)
그리고 제자들에게 치열하게 시를 쓰는 자세가 으뜸이라고 말하면서 본인 역시 그런 삶을 사신 분이다. “나는 사람들하고 어울릴 줄도 모르고 술도 못 마시고 멋진 취미도 없고 단지 시나 학문하고만 같이 지낼 뿐이다”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어쩌다 부동산 투자에 성공해서 돈은 좀 있는데 시나 알지 돈 쓸 줄 모르는 꽁생원이다”란 말씀도 기억난다. 그래서 우리들 말로 ‘박교수님한테 차 한 잔이라도 얻어 마신 사람은 천연기념물’이란 우스개도 있다. 그런 분이지만 우리는 박철석 교수님과 더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그분의 시와 학문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박홍배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