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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10.26 07:41
Ep 1. 광복과 일본인 등대원들
1945년 8월15일 희망과 꿈이 벅찬 해방의 기쁨과 동시, 등대에도 광명과 발전이 이루어질 대한의 자유 속에 인천항로표지관리소 관내 7개 유인 등대에 근무하던 일본인 등대원들은 모두 인천 전동 34번지 철도 관사(후에 등대 자녀 합숙소)로 철수시켰다.
격열비도등대 (1940년 5월 ∼1945년 9월 당시 일본인 등대원: 3명 및 용원: 1명 본인 근무) 등대장으로 있던 히리가와(平河 深)및 차석 요 시다(吉田 道治) 두 사람은 인천에 집과 신포 시장에 가게와 만석동에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가지고 갈 수도 없는 형편이라 가게와 공장을 나에게 주는 것을 사양하였다. 그 당시 나는 등대장 히라가와 밑에서 일하던 등대원으로 일본인 등대원들과 함께 인천으로 철수된 한국인이다.
해방의 기쁨과 바다의 봉사자로 돈과 현품을 탐냈다면, 인천의 갑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나 노력 없는 재물은 무용지물이라 그 저주는 재산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사양하여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이즈음 등대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해방의 기쁨을 따라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자취를 감추어 종 무소식이 되고 UN군이 인천에 상륙한다는 전문이 왔던 까닭에 등대수로 근무하였던 인본인들은 나에게 매달려 무슨 일이 든 시켜 달라고 애원하여 이와 다니 상 등 일본인들을 이용하여 아세틸렌 통을 보급선에 싣고 소월미도 등대, 팔미도등대, 북장자 등표, 백암 등표, 부도 등대, 장안서 등표, 안도 등대, 옹도등대, 선미도 등대등을 가까스로 점등할 수 있었다.
UN군이 들어 들어오는 날 나는 부도 등대에서 그 나라의 인사를 국제신호기로 신호를 해주며, OVG 감사 표시와 안전 항해를 축하하는 WAY 기를 게양대에 올리고 국제 인사를 문명국이나 똑같은 약식으로 인사를 표지하며, 대한민국 등대에 손색이 없게 하였다.
급히 등대를 점등하느라 시각을 지체하다가 UN군 함정에 인사 표시를 하고서야 다시 배를 타고 선미도 등대에 상륙하고 나도 그 등대에 내린 후 보급선은 인천항에 귀향시켰는데, 각 등대에는 일본인 등대수 3인씩 배치하고 나머지 인원 4명은 나와 함께 선미도 등대에 왔다.
1945년 9월 광복되면서 선미도 등대 등대장으로 부임하였다.
선미도 등대는 인천에서 서쪽으로 34마일 떨어진 덕적군도의 한 섬으로 산세가 험하고 해안의 절벽 같은 바위로 인해 ‘악험도’라 부르는 섬이며, 섬의 동쪽 해역은 수심이 낮고 천퇴로 항해상 위험한 개소(1934년 등부표 설치)이다. 선미도 서쪽으로 중국 항로와 북쪽으로 연평도, 백령도 등 북방 항로와 서해에서 조업하는 어선의 육지 초인 표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1940년 4월 신설 점등하였다.
등탑 구조는 백색(석회 칠) 원형 콘크리트조 9.5m이며, 등명기는 제3등급(일본에서 제작) 후레넬식 프리 즘렌즈 중추 회전식이다. 석유 백열등의 백색 불을 12초에 1섬광으로 밝히고 광달거리는 30마일이다. 등고는 평균수면에서 164.8m로 우리나라에 제일 높은 곳에 설치된 등대이다.
선미도등대는 목덕도 등대(상호 간 감시 역할)에서 불빛을 볼 수 있다. 등탑은 1층에 사무실과 중추를 감는 중추실(1일 2회 중추를 감아 주면 중추가 풀리면서 등명기가 회전한다.)이 있으며, 철재 주물로 제작된 나선형 계단으로 2층과 3층의 등롱실을 오르내린다.
다행히 선미도 등대(1945년 9월∼1948년 3월)에는 한국인 등대원 이영춘씨가 있어서 이야기를 하여보니 해방이 되자 등대를 적산물로 생각하고 덕적도 사람들이 몰려와 이영춘씨 혼자 있는 등대에서 시설물을 파괴하려는 것을 말리자, 등대에 사용하는 예비기기와 공구를 모두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나는 이영춘씨와 덕적도(선미도와 덕적도 거리는 해상로 약 700m)로 나가 공구 등을 가져간 사람들에게 빌다시피 하여 분실물을 찾기에 노력하였으나 내놓으려 하지 않았으며, 3차에 걸쳐 끈질긴 노력으로 잃었던 공구를 다시 찾아다 놓고 등대 관리와 운영에 만전을 기하던 중 일본인들의 심리를 알았다.
그들은 등대의 시설물에 대한 파괴를 자행하고 있어 그들을 다시 추방하기 위하여 거룻배를 타고 덕적도에 나가서 다시 어선을 타고 인천에 상륙하니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 없이 몇몇 일본인의 가족들만 찾아와 등대에 배치된 일본 사람들이 언제오냐고 질문하였다.
나는 그들의 물음에 곧 나온다는 대답으로 안심시키고 일본 배 마루보시 운반선을 가지고 등대에 배치하였던 일본인들을 전부 추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