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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10.17 01:16 수정일 : 2025.10.17 01:20
부산의 시인
3. 구연식
지금 문단에 나오는 문인들의 출신 성분들 즉 직업이나 학력이나 전공들은 여러모로 다양하다. 그러나 196-70년 대만 하더라도 문인들은 대개 국문과나 영문과 출신 중 교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것도 시인들은 다수가 동아대 국문과 출신, 그리고 부산대 국문과 출신은 평론가들이 주를 이루었다. 아마 그런 학풍이 당시의 여러 요인들로 인해 형성되었던 것 같다. 그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역시 가르치는 교수들의 역량과 취향이었을 것이다. 동아대에서 시론 강의를 주로 맡았던 구연식 시인은 동아대 국문과의 그런 학풍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분이다. 국문과의 시 동아리 지도교수는 당연히 구연식 교수가 맡게 되고, 학교 행사의 축시는 구교수의 시가 걸리게 마련이다.
구연식(1925-2009)은 경남 사천 사남면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1952년 동아대 국문과를 졸업한다. 1954년 동아대 국문과 강사로 출강하는데 이때부터 국문과 교수였던 조향 시인의 영향 아래 시 동인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조향 시인의 감마 동인회에 가담하고 동인지 『Geiger』(정보탐지기란 뜻)에 시를 발표한다. 그러다가 1959년 조교수로 부임하게 되는데 조향 시인이 동아대를 떠난 후부터는 국문과의 유일한 시학 교수가 되어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등 모더니즘 계열의 시와 그 연구에 매진한다. 시인 교수가 없던 학교에 시인으로서 학생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7-80년대 이후 학교 내에서도 그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그런 영향으로 1985년에는 부산문인협회 회장으로 당선되어 또다른 그분의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구연식 교수를 아는 문인들이나 제자들에게 그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약주를 좋아하는 소탈한 성품으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군림하던 교수로서의 권위 때문에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것도 다소 후자 편이다. 석사과정 때였다. 우리 대학원생 세 명이 추석 명절이라 과일 한 상자를 들고 교수님 댁을 방문했다. 마침 교수님이 계시지 않아 사모님과 차를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후 강의 시간에 대뜸 “엊그제 우리 집에 과일 사갖고 온 사람이 누구냐?” 핀잔하듯이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갔다고 했더니, “아니 우리 집에는 식구가 없어 지하실에 과일이 썩어가는데 생각해 보면 모르냐, 차라리 정종이나 한 병 사오지. 대학원생 정도 되면 그 정도 눈치는 있어야지.” 라고 노골적으로 질책하는 것이다. 참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원 논문 심사를 마치고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회식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학생 중 교수 정도 나이 되는 분이 있었다. 학생들이 그 분에게 정말 수고했다는 덕담을 하고 있을 때 교수들 자리에 앉아 있던 구연식 교수님이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게 자랑이냐, 차라리 집에서 얘나 보지. 괜히 비싼 등록금 들여서∼” 아마 이야기의 중심이나 칭송에는 늘 본인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이가 주목을 받는 것이 거슬리어 하는 말투 같았다. 그러자 그 학생도 각오한 듯 큰소리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지”라는 말로 받아 버렸다. 이후의 상황 전개는 뻔하다. 우리는 그 학생이 졸업 못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졸업하고 몇 년 후 경성대 한문학과 교수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구연식 교수는 다른 사람 입장을 생각하기보다는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질러버리는 직설적인 분이었다.
아무튼 그분의 성격이나 기질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쌓아온 업적들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부산의 시단에서 초현실주의 문학을 선보이고 실천함으로써 부산 시단의 다양성을 보여준 것이나, 한 대학에서 40년 가까이 후진을 양성하고 특히 많은 시인을 배출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던 것은 그분의 업적이다. 필자의 학부 때도 은사지만 석사과정, 박사과정 재학 시 교수님과 많은 술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필자에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그래서 그분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도 저승에서 마음에 안든다고 다른 분들과 티격태격하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이다.
<박홍배 문학평론가>